93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 미사.. '십자가 나무'는 수도원으로 옮겨져
두물머리 생태학습장 조성 위한 민관협의체, 이번 주부터 협의 시작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9월 3일 오후 3시 400여 명이 모인 두물머리에서 마지막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며 최덕기 주교(수원교구 원로사목자)가 꺼낸 말이다. 최덕기 주교는 "생태공원을 어떻게 조성할지, 농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모른다"며 마무리가 잘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최덕기 주교는 2009년 11월 24일에 봉헌한 첫 번째 두물머리 생명평화 미사를 주례했다.

▲ (왼쪽부터) 서상진 신부, 최덕기 주교, 조해붕 신부 ⓒ문양효숙 기자

ⓒ문양효숙 기자

강론에서 서상진 신부(수원교구)는 감사를 표하며 "우리 모두는 함께 기도하며 서로 희망과 확신을 북돋웠고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줬다"며 "이곳 두물머리 미사에 단 한번이라도 참례하고 격려하고 기도하고 때로는 마음 졸여야 했던 많은 이들이 바로 '우리'"라고 강조했다. 서상진 신부는 두물머리에서의 첫 출발이 인간적 계산이나 성공의 여부에 상관없이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는 신앙의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서상진 신부는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1코린 2,3)라는 제1독서 말씀처럼 "우리는 악한 공권력에 눌려 그저 두렵기만 했지만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며 오늘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죽이는 현장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해치는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또 그 어느 곳에서 오늘처럼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 두물머리의 친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930번의 미사를 지켜 온 사제들, 농부들과 최덕기 주교, 방춘배 팔당공대위 사무국장, 매일 미사를 준비했던 신자들 ⓒ문양효숙 기자

유영훈 팔당공동대책위(이하 팔당공대위) 대표는 긴 시간 두물머리를 지켰던 신부들과 신자들에게 큰 절을 한 뒤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잘난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빈 몸으로 그저 버텼는데, 버티기는 신부님들이 한 수 위였다"면서 최덕기 주교를 비롯한 여러 신부들이 "어렵더라도 참고 끝까지 버텨 내라"고 격려해 주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유영훈 대표는 팔당 유기농지 보존 투쟁은 '가치관의 싸움'이었다며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쌓여 있는 많은 과제를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두물머리 농민 4명과 3년간 매일 물심양면으로 미사를 도운 이들이 나서 인사했다. 농민 서규섭 씨는 "이명박 정부는 정권 시작부터 끝까지 갈등과 분쟁을 늘 폭력적으로 해결해 왔고, 그 과정에서 죽는 사람, 쫓겨나는 사람이 생겼다"며 "서로가 한걸음씩 물러서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 두물머리의 사례가 다른 곳으로 전파되어서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생태학습장 조성을 위해 꾸려진 민관협의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4명, 천주교와 농민 측에서 추천한 4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됐다. 천주교 · 농민 측에서는 서상진 신부와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소장, 이상헌 한신대 교수,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가 참여하며 이번 주부터 협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또한, 팔당공대위와 밭전위원회 등은 지난 3년간 두물머리에서의 연대와 우정의 시간을 영상과 책으로 기록해 생명 살림 가치를 사회에 전할 계획이다. 오는 9월 14일 오전 9시 30분부터 남양주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호주 세레스의 교육 담당자 에릭 보톰리 씨와 영국 가든 오가닉의 마지 레나슨 연구소장 등이 참여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열린다. 이어 9월 20일 오후 7시 가톨릭회관에서 3년간의 팔당 유기농지 보존 투쟁을 총정리하는 마무리 행사를 열 예정이다.

▲ 두물머리 미사 터의 십자가 나무를 4명의 농부가 옮기고 있다. 십자가 나무는 인근 문호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문양효숙 기자

미사가 끝난 뒤 두물머리 미사의 상징인 '두물머리 십자가 나무'는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방춘배 팔당공동대책위 사무국장은 마지막 미사의 소회에 대해 "지금은 아무 생각이 안 든다"면서 "다만 이렇게 매일 두물머리에서 만나던 사람들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다"고 답했다. 그는 "미사는 '두물머리'라는 살아있는 존재의 한 부분이었다"면서 "미사도 마무리되고 '두물머리' 하면 떠오르던 많은 것이 사라져 가는 듯 하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방춘배 사무국장은 "농민 네 분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농민들이 오랜 기간을 싸워서 이 싸움이 일상이 됐다"며 "일상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하는 것도, 자기 손으로 철거를 해야 하는 것도 낯설고 적응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물머리 농민들은 새로운 땅을 찾고 있지만, 함께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땅을 근처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서규섭 씨는 처음 빈손으로 귀농할 때와 비슷한 상황, 비슷한 마음이라고 했다.

2010년 4월 여주 4대강 사업 현장에서 파헤쳐진 강을 보고 '재앙을 막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두물머리에 온 류은형 씨는 "8월 6일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있을 때에 두물머리를 지키며 정말 소중한 이곳이 사라질까봐 불안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열흘간 두물머리를 지키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시간을 더 주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류은형 씨는 지난 3년이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시간'이었다며 "생태학습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항상 지켜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3년간 카메라를 들고 두물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팔당뉴스 서동일 대표는 앞으로 1년 정도 편집해서 두물머리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 카메라를 들고 왔을 때는 1년이면 끝날 싸움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옆 마을 송촌리가 잘 싸우다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서인지 이렇게 타협안을 끌어낸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다큐멘터리의 결말을 정하지 않았다. '두물머리의 결말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 두물머리 미사의 상징인 십자가 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미사 참례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미사가 끝나고 미사 터가 정리된 뒤, 유영훈 대표가 제대를 바라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미사는 끝났다. 두물머리에 마음과 힘을 보냈던 이들은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는, 삶의 자리에는 숙제가 남았다. 그들은 목소리를 모아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과연 두물머리의 본래적 가치는 생태학습장 안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날까. 3년간 싸움을 자신의 일상으로 삼았던 4명의 농민은 다시 땅을 찾고 유기농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930일간 이곳 두물머리에 쌓인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염원은 어디로 흘러갈까. 어쩌면 지금까지의 930일보다 앞으로 더 많은 애정과 연대가 필요할지 모른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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