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를 지켰던 나무 십자가는 최요왕 농민의 작품
"밭에 거름 주는 것 만큼 밭전위원회 농꾼들과 막걸리 나누는 게 큰 낙"

"내 부모는 하늘 농사를 지었다."
어제 꿈에 보았던 영화, 혹은 읽었던 소설 첫머리다.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하늘에 농지를 띄우고 농사지으면 좋겠다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꿈이 된다.

고랭지 농사가 되겠지?
비행법에 걸리나?
천수답이라 불리한가?

지상에 안정적인 농지 한조각 없는 농사꾼의 비애 같은 건 없고 그냥 만화 보듯 재미있는 꿈이었음.
요런 내용도 국토부와 관련 있으려나?
(최요왕 농민의 페이스북에서)

▲ 두물머리 천년요왕, 최요왕 농민. ⓒ정현진 기자

두물머리 농민 최요왕. 그는 끊임없이 농사를 꿈꾼다. 농사를 지으러 귀농했고, 농사를 계속 짓게 해달라고 싸우는 것인데, 정작 풀만 재배하고 있다며 울상을 짓는다.

2004년 3월이었다. 직장 다니고 장사하다가 가족까지 딸린 몸이 모진 결심으로 귀농했다. 대학 때부터 꾸던 꿈이었다. 그 꿈에 동참했던 친구가 같은 학교, 다른 과 친구였던 임인환 농민이다.

양상추, 오이, 파프리카 등등 동네 형님들의 도움을 받아 신나게 농사를 배우고 지었다. 그에게 농사, 유기농은 ‘관계’였다. 땅과의 관계, 생명과의 관계, 도시 소비자들을 만나는 관계. 그런 의미에서 지난 3년간 최요왕 씨는 땅 농사 만큼의 '사람 농사'를 지었다.

두물머리에 찾아들어 함께 ‘불법 농사’를 짓는 청년들과 만나서 인연을 맺은 것이 그에겐 평생의 수확이라고 말한다. 밭에 거름을 주는 것 만큼이나 밭전위원회 농꾼들과 막걸리를 나누는 것이 큰 낙이다.

지난 3년, 사람 농사를 지었던 시간...
네 번째 싸움이 진짜 싸움... 4명의 농부, 다시 농사 시작할 것

▲ '생태공원 조성안'이 합의 소식을 듣고 큰절로 마음을 표했다.

그는 이제 시작된 ‘생태학습장 조성 합의안’ 실현이 두물머리 싸움의 4막 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서울 정동 서울국토관리청 앞에서 노상 단식 투쟁을 벌이고, 2010년 재의 수요일부터 매일 미사와 함께 시작된 두 번째 국면, 최근 행정대집행이라는 최대 고비, 그리고 합의안 실행을 위한 네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8월 14일, 국토해양부와 ‘생태학습장 조성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들은 그동안 두물머리를 함께 지켰던 지킴이들과 함께 맞절을 했다. 고맙고 고마워서였다.

최요왕 농민은 당시 심정을 묻자 한참을 생각하다 “그때도 지금도 오히려 덤덤하다”고 말했다. 농작물과 비닐하우스가 강제로 철거되고 그야말로 “쫒겨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끝까지 비폭력으로 저항할 것을 결심했던 그들이었다.

그 시간 동안 최요왕 농민은 “행정대집행이 막상 코 앞으로 다가오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고,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는 심경이어서, 심장이 요동치곤 했다”고 하면서, “그러다가 합의가 됐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점점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고, 제대로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전했다.

▲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최요왕 농민.

최요왕 농민은 “다만 한 가지 정말 다행인 것은 가족들이 안심하고 웃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귀농부터 두물머리 싸움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이 힘들어할 때였다. 행정대집행이 시작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차압이 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서야 아내에게 했다. 그때 많이 울고 원망하던 아내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제 ‘생태학습장 조성’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두물머리 4명의 농민은 짓던 농토를 정리하고 다른 농토를 찾아 떠나야 한다. 두물머리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옮겨가 유기농사를 계속 지을 것이고 당연히 4명의 농부가 함께 할 생각이다.

그동안 돌볼 틈이 없어 작물보다 풀이 더 무성한 비닐하우스지만, 지난 9년의 손길과 땀이 배인 곳을 정리할 일이 남았다. 스스로 해야 하는데 아프지 않을 것 같냐고 물으니, “강제철거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남들이 함부로 짓밟는 것보다 내 손으로 천천히 하는 것이 백 번 낫다”고 말한다.

두물머리 싸움 통해 깨달은 '연대'의 힘
모두 같이, 물 흐르듯 가야지...

“이 싸움을 하면서 그 전에는 잘 몰랐던 일들이 눈에 들어옵디다. 우리가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수확물을 가지고 홍대 미화원 어머니들에게 찾아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쌍용차 미사도 찾아가고, 명동 재개발 철거 때는 김치도 담아 보내고... 가지 못하는 곳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요”

ⓒ정현진 기자

최요왕 농민은 ‘연대’의 힘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두물머리를 바라보고 찾아 준 많은 사람들의 힘”이라고 하면서, “외부세력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됐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도 찾아다니게 됐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다
아닌 건 아니다
아는가? 그대들.. 권력을 손에 쥔 인간들...
우린 당신들에게 우리들의 감정을
우리들의 의지를 충분히 알려줄
의무와 권리가 겁나게 겁나게 충분히 왕창 충분히 있다.

물 흐르듯이 가야지.
언젠가부터 제 입에서 아무 생각없이 내뱉게 된 말인데(아무 생각없이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물 흐르듯이 가야지.
산에 막히면 돌아가고, 보를 만나면 고이고 고이다가 넘어가든 넘어뜨리든...

모두 같이.
(최요왕 농민이 단식투쟁 중에 쓴 글)

최요왕 농민의 마지막 소원은 “어서 빨리 농사를 제대로 짓는 것”이다. 밭 꼴을 본다면 누가 자신더러 농부라 하겠냐며 머쓱하게 웃는다.

“제발 농사 좀 짓자.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제대로…….” 최요왕 농민의 마지막 소원이다.

▲ 두물머리를 지켰던 나무 십자가는 최요왕 농민의 작품이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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