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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절제하는 이 만이 참 행복을/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늘벗 2019-09-11 07:22:57 | 조회: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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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하느님과의 만남으로만 누릴 수 있단다. 그분 모시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음이 가난한 이란 삶의 빈자리를 하느님께서 조건 없이 꼭 채워 주시리라고 믿는 이다. 그는 그분께서 반드시 주시는 걸 믿기에 어떤 이기심이나 탐욕에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 행복은 본시 인간 것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것일 게다. 그분께서 주셔야만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주님의 힘과 함께해야만 불안이 사라진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게 많다고 쉽게 나누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많이 가질수록 더 갖고 싶다나. 소유가 많고 적음은 단지 인간 사회의 구분이다. 주님 앞에서는 그 구분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분께는 있는 이나 없는 이가 다 같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죽을 땐 두고 가야하니까. 평범한 이것을 외면하면, 정말 불행한 이가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며 이르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0-23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박해받는 이들은 행복하고, 부유하고 배부르고 지금 웃고 칭찬받는 이들은 불행하단다.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얻으려면, 이 세상의 행복을 희생으로 지불해야만 할게다. 이렇게 예수님이 행복한 이들이라고 여기시는 이는 하늘 나라를 향해 희망을 안고 사는 이들일 게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그분께 더더욱 마음을 두는 이들이리라. 주님 계명을 따라 새롭게 살려면 세상 것에 고착되지 않는 마음이어야 하리라.

그러나 예수님 말씀에서 다른 곳이 아닌, 바로 평범한 일상에서 참 행복을 체험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각과 관점의 작은 방향 전환을 통해 일상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뀔게다. 하지만 말씀을 깊게 묵상하면, 지금 웃는 이가 불행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이 세상이 복음을 거스르고 있기에.

다시 말해 세상이 바른말 하는 이를 자기와 다르다고 박해하고, 더욱이 복음을 선포하는 이를 증오하여 모욕하면, 이는 진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은 채 눈앞의 편안함만을 찾는 것이기에 정녕 위험한 일이리라. 이들은 저 위에 있는 것을 떠나서, 현세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두고 머물려는 안이한 이들이다. 오직 저 위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더 높은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는 이는, 세상이 손가락질하면서 거부하거나 박해를 하더라도, 그래서 때로는 울고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정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기필코 아는 이리라.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행복은 놀랍게도 부족함을 느끼는 데 있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에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재물을 미워해야 한단다. 돈도 좋고 예수님도 좋다는 식의 생각이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만드니까. 넉넉하고 넘치는 게 결코 행복해 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재물을 많이 소유한 이는 그게 다 행복해지는 게 아니니까 비워야만 할게다. 이렇게 욕망 앞에서 절제하는 이 만이, 진정한 참 행복을 느낄 수가 있으리라.

2019-09-11 07: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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