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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믿음에 불치병도 치유되었는데/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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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벗
등록일
2020-01-10 05:41:03
조회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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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jpg (468970 Byte)

나병은 손상부가 다시 복구되지 않는 피부병이다. 손발가락이 떨어지고 눈썹이 빠지며, 코와 입이 문드러져 얼굴 형상이 보기 힘들 정도다. ‘나는 사람이 아닌 문둥이올시다. 원망 말라. 하늘이 내린 병이라는데 어쩌겠느냐?’라 했던 한하운 시인의 말대로다. 가족은 피붙이이지만, 동네에서 격리시켜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 것밖에. “주님! 당신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 나병 환자는 온몸으로 청한다. 다시 예수님 만날 기약이 없기에. 그 절박함을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안으신다. “그래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이 얼마나 기다렸던 음성인가? 감각이 없어지는 나병은 한 순간 살점이 떨어져 더욱 흉측한 모습이 된다. 이러니 육신보다 영혼이 병들어 가는 것이라나. 사실 나병 곧 한센병은 무서운 병이었다. 영혼도 아무 감각 없이 점점 더 본디의 깨끗함을 잃어 간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내면의 치유를 바라시는 당신의 마음일 게다. 그러기에 그분께 나서서 간절하게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만하면, 그는 분명 치유되리라. 말씀을 듣는 바로 그때에, 그는 바뀐 몸을 깨달으리라. 이렇게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이렇게 예수님 시대에도 나병은 끔찍했다. 가족과 이별하는 삶을 살았다. 있는 이든 없는 이든 누구나 벌벌 떨었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몸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그는 천국을 체험하고 감동받고 믿음의 자극을 얻는다. 간절히 청한다면 어찌 그분께서 외면하실 까닭이! 몸에 손을 대시면서, 자비를 베풀게다. 그분은 사랑이시기에.

사실 나병을 겪는 이의 마음에 머물러 보자. 세상의 손가락질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모습과 화해하는 일일게다. 나병 환자는 낫기를 바란다. 그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주님! 당신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자기 자신의 회복에 예수님의 마음을 초대한다. 지금 이 모습으로는 도대체 살아갈 자신도, 용기도 없는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마음에 의탁한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오냐, 내가 하고자 하니.” 예수님께서는 끌고 가시는 지도자가 아니라, 함께하시는 동반자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분께서는 당신 마음을 이야기하시기보다 우리 마음속 이야기를 먼저 들으신다. 이렇게 세상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제 이야기를 턴다. 상대를 알아보려는, 못된 눈치만 느는 세상살이가 된 것 같다.

유다사회도 사제를 중심으로, 공동체의 윤리와 법률에 어울리지 못한 이들에게는 거부와 차단이 거침없이 자행되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함께 살기를 바라신다. 이런 몰골, 어떤 나약함, 처절한 비참함마저 마치 자신이라는 존재로 여겨 존중해 주듯이. 그래서 다른 마음을 안아 주는 게 정말 따뜻한 공동체의 필수일 게다. 예수님의 마음은 함께하는 마음이라 늘 따뜻하다.

그런데도 확실한 평온은 오지 않는다. 믿음이 빠졌기에. 불안은 베풀어야만 사라지지 물질만 쌓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마디 말씀으로 치유하셨다. 주님의 능력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무서워하던 일이건만 예수님을 믿는 이에겐 두려울 게 없다.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데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분이 함께해야 평온할 게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쉽게 믿지 않는다. 불치병이라는 그 나병이 치유되었는데도.

작성일:2020-01-10 05:41:03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