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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사랑 안에라야 참 기쁨이/부활 제5주간 목요일
늘벗 2019-05-23 06:42:50 | 조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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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에 나병에 걸린 아이가 있었다. 이를 안 아버지는 고민 끝에 그를 가족과 격리시키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소록도의 나환자촌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를 그곳에 두고 홀로 서울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아버지는 바삐 살면서 아이를 잇고 지냈다나. 4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이 보고 싶어 그곳으로 갔다. 아들은 아버지를 껴안으며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려고 40년이나 기도했는데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이 왔네요.”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식이 나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버리고,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터인데 왜 기다렸느냐?’라며 울부짖었다.

그러자 아들은 ‘저는 여기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뒤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도 감사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아버지는 속으로 다짐했단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 아들을 이렇게 변화시키신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그분을 받아들이겠다.” 어느 분의 ‘행복 편지’이다. 이는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무른 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 주는 실화이다. 그분 사랑은 비참함도 달리 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그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긴 소중한 기억을 세삼 떠올리게 만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무르듯,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에게 있고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참조)’

주님께서는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신다. 그 사랑은 용서일 게다. 끊임없는 베푸심이다. 그러니 ‘겁주는 하느님’은 잘못된 생각이리라. 사랑은 많은 것을 묻지 않는다. 서로 잘되기만을 바라는 관계이다. 늘 기쁨으로 만나기를 바라는 사이이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어두웠기에’ 신앙생활도 어두웠던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신다. 사랑의 관계를 기억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리라.

그러나 믿음의 길에는 꽃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막과 가시밭도 있다. 교만과 방심에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초리를 든 것일 게다. 이게 신앙생활에서 가끔은 실패와 좌절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어떻게 주님의 찐한 사랑을 기억할 수 있을지? 주님은 포도나무며 우리는 가지이다. 잘 못사는 것처럼 느껴져도, ‘나무에 달린’ 가지임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자. 믿음의 결론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늘 기쁨을 주시고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삶의 행복’도 깨달아질 게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고자 하는 이유가 내심 여기에 있다. 나의 평화가 그분께 다가가야 확실히 다가올 것 같기에. 이게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하는 진정한 이치일 게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면 결코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없다. ‘나’를 죽이고 철저히 그분을 우리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셔야만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 그러할 때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참기쁨이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예수님 사랑 법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아드님을 향한 사랑은 세상눈으로 볼 때 금수저 같은 사랑은 아니다. 자식에 대한 편애와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우리 시대의 부모들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께서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죄와 죽음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신 ‘참된 자유’를 그대로 받아 주신 것이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 사랑에 뿌리를 둔다. 사랑은 거짓 타협이 아닌 대화를 통한 공감이다. 교회의 사목이 공동체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면, 교회 또한 ‘사랑을 잃은 바리사이의 분신’이 되는 게 아닌지를 되돌아보면 참 좋겠다.

2019-05-23 06: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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