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의 마을 취화당-박기호]

신앙은 하느님의 존재 섭리 능력 교섭을 믿는 것이고 신학은 하느님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학이 생각이라면 신앙은 삶입니다. 생각이 삶이 될수도 있고 삶이 생각으로 정리될 수도 있고 생각 따로 삶 따로 일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
(요한 6,41~51)

신은 어떤 존재인가? 고대 신앙에서 생각하는 신은 천둥 번개 홍수 등의 위대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았고, 원주민 신앙에서는 나와 온 만물의 생명을 주재하는 분으로, 농노를 지배하는 지배자들은 심판하시는 분으로, 강제와 압제의 시대에는 인간을 해방하시는 정의의 하느님,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여성들에게 평등을 가르치시는 분, 생태를 창조하고 복원시키시는 분 등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정리된 생각을 신관(神觀)이라고 합니다. 신의 속성이나 인간의 기질은 삶의 환경, 즉 기후나 풍토 사회 배경에서 생겨납니다. 가령 사막 광야 등 척박한 풍토에서 살아가던 유목민들은 방어가 중요하니까 전투적 능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살아남기 기질이 발달합니다.

몽골족 징기스칸의 기마 민족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금세기 전쟁으로 살아가고 있는 국가의 풍토와 기후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해답이 나옵니다. 오늘날 무슬림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도 유대교 이슬람교등 유일신을 신봉합니다. 최고로 강력한 챔피언 신, 유일신을 믿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인도 동남아 온대 몬순형 기후의 환경에서는 농업사회를 이루고 정주민으로 살아가니까 평화롭게 나누는 인정과 여유로운 기질이 발달하고 신들도 공존합니다. 다신론적이어서 토탬 샤머니즘 등이 발달합니다.

학문도 기후와 풍토를 따른다고 하지요. 중국 남부 양즈강의 곡창지대에서는 노자·장자 사상이 나온 반면에, 북방의 척박한 풍토에서는 공자·맹자 사상이 나왔습니다.지배이론이지요. 북방에는 춘추전국시대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 때문에 종교가 그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의 선교나 사목의 과제에 대한해답도 나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시대적 문화 배경마다 각기 다른 성격의 수도회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현대인의 삶이 단절되고 배척되고 소외되고 개별화 되고 이기주의와 물신의 우상이 극심한 시대이기 때문에 공동체 신관(神觀)이나 사상이나 이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신학도 하나의 징표입니다.

갈라진 시대의 하느님은 서로 하나되고 한 몸 됨을 원하실 것이고 거기에 참 삶의 길이 있다! 서로 한 몸으로 섬기면서 공존과 평화의 기술을 개발하고 훈련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공동체 이념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서로 갈라지게 했던 요소와 가치들을 부정하는 거지요. 소유의 욕망, 명예와 지배의 욕망, 인간 중심적 세계관, 자신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착각,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 자식교육이라는 생각... 돈을 가져야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 거기엔 죽음뿐임을 각성시켜주는 것이 공동체 영성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겠느냐? 아니면 만족함에서 행복을 얻겠느냐? 배불리 먹고도 썩어 없어질 만나를 숭배하려느냐? 영생의 빵을 얻겠느냐?

요한복음이 예수 사후 약 70년 정도가 지난 시대에 작성된 것이라고 하니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요한의 공동체는 세상의 물신풍조에 대한 강한 배척감도 갖고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은 당대의 공동체 이상향(理想鄕)을 추구하는 종말론적 구원공동체였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2012. 8. 12)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