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의 마을 취화당-박기호]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태 16.13~23)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정답을 말하자 든든한 마음으로 칭찬하셨습니다. “너는 반석이다. 너를 반석으로 삼아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이야기 꺼내자 베드로가 “맙소사, 말도 안돼요!” 저항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사탄아, 물러가라. 어찌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 더 크게 저항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변모의 경험 때에도 “우리 여기다 집 짓고 삽시다!”. 과감히 제안했고, 또 안되는 건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렸고, 동료들의 자리다툼에 대해 분노했고, 또 예수님이 체포되자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최고다 싶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급하고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한 성품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부활을 증거하면서 공동체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는데 그 때에 과거 자신이 예수님을 수행하던 시기의 쑥스럽고 미성숙했던 일화들을 공동체 입문자들에게까지 사실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초대 공동체가 웬만하면 지도자의 권위도 생각했었을텐데 복음서에까지 기록해 두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라!”고 자기 입으로 가르쳤기 때문이지요.

▲ 산 위의 마을 성당 ⓒ문양효숙 기자

사람은 육신을 기반으로 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육신의 느낌과 감각과 지각으로 판단하고 감정으로 반응합니다. 생리적이지요. 그러나 다음 순간 정신작용이 일어나고 반성으로 육신의 행각을 돌아봅니다. 그러므로 자기 감정, 인내, 분노, 판단과 표현에 대해 반성합니다. 그것을 ‘성찰’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것은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성찰이 없으면 정신 반응이 안되는 상태이므로 ‘정신없는 놈’ ‘넋 빠진 놈’이 됩니다. 제자들은 인간적 감정상으로는 누구와 똑같았지만 성찰의 능력을 가졌었고 그래서 자신들의 과거를 공동체에 증언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행이란 ‘자기성찰능력’ 입니다. 우리가 늘 하루생활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그래서 큰 수행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감정의 반응도 다르고 정도도 다른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성찰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하는둥 마는둥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쨋든 그 때까지 그를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반성이 시작되지 않았든지 아니면 진행중이든지 할 거니까요.

사람마다 수행의 출발점이 다릅니다. 저는 가족들의 눈살 찌푸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마다 주의나 훈계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성찰을 하면 하는대로 좋고 못하면 못하는대로 그 상태를 그의 최저 상태로 보고 수행의 출발점으로 삼고 기다립니다. 다음번 같은 경우의 반응에 주목합니다. 전보다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되는 겁니다. 전보다 나아진 점을 발견할 때가 큰 즐거움이고 기쁩니다. 물론 1년이 지나도 똑같은 가족도 있고 3년을 기다려 준 사람도 있습니다. 답답하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할 수 있습니다.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습니다. 원한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불평을 할 수도 있고요. 인내의 한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서면 정신과 의식이 작동되어 반성과 성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거고요.

성찰하기 전에는 타인의 문제점이 100%이고 자기는 깨끗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늘 피해자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은 늘 인내하고 손해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성찰이 없을 때, 수행력이 없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성찰이 되면 옳고 그름이 사라집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생각이거나, 그래도 감정을 나쁘게 드러내지 않고 지나갔다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런 생각뿐입니다. 평화의 훈련이 시작되는 겁니다. 왜 사람들은 잠시 후, 한 달 혹은 1년 후면 깨닫게 될 일을 가지고 그렇게 옳다고 난리를 치는지. 그게 인간이겠지요.

너는 반석이다! 너는 사탄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우리는 공동체의 주인도 되고 악마도 됩니다. 수행의 노력이 작동되는 순간은 우리가 공동체의 열쇠를 가진 반석인 것이고, 자존심을 챙기고 감정으로 반응하는 순간은 악마입니다. (2012. 8. 9)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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