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에서 25회 동계 올림픽이 한창인데, 호들갑 떠는 금메달 소식이 아직 들리지 않았다. 실시간 중계방송을 보기 어려워서 그런지, 심드렁한 이가 주위에 적지 않다. 독점 방송 과잉에 지쳤는지 모르는데, 언제부터인가? 승리가 절실할수록 중계방송을 피하고 싶다. 통계적으로 따지지 않았지만, 마음 졸이고 보면 꼭 지는 징크스가 있는 까닭이다. 나만 그런가? 듣자니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응원하는 팀이 승리해서 얻는 카타르시스보다 져서 생기는 우울함이 크다면 차라리 결과를 나중에 확인하는 게 낫다. 아슬아슬할수록 더하다.

사회적 관심이 큰 경기일수록 생중계를 보려면 특정 방송을 찾아 접속해야 한다.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는 뜻인데, 나이 탓인지 가입해도 소용없다. 어느 방송인지 아리송하니, 차라리 시청을 포기하고 만다. 무궁한 디지털 정보 기반의 상업 방송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에서 동작이 느리거나 기억력이 흐린 노인,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계층은 소외된다. 첨단으로 갈수록 접근 역량이 모자란 이에게 선택의 여지는 줄어든다.

이번 동계 올림픽 중계는 한 방송사가 독점한 모양이다. 밀린 원고에 몰두하는데, 우리 선수가 결선에 나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식구의 재촉으로 잠시 일을 놓았는데, 팀 맏형인 선수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금메달이 아니라 그런지, 결승선을 지나가자마자 요란한 화면이 이어지지 않았는데, 공연히 미안한 느낌이다.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건만, 허전했다. 올림픽 직전의 월드컵에서 같은 종목으로 우승한 ‘배추보이’는 한 차례의 실수로 아쉽게 메달권에서 밀린 모양인데, 그는 금메달을 희망한 적 있다. 예상과 달리 우리나라 400번째로 올림픽 메달을 받은 김상겸 선수는 시상식에서 관중을 향해 큰절 올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금메달이 아니라도 큰 만족을 보여 주어 마음이 놓였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받은 2010년, 미국의 한 호텔 로비에 있었다.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은 일행이 꿈결같이 우아한 연기를 가슴 조이며 바라보았고, 점수를 확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투숙객들이 박수로 호응해 고마웠는데, 과연 금메달일까? 모여 앉은 한국인은 최종 집계를 조마조마 기다리며 김연아 선수에 이어 연기한 선수가 실수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역시 빼어났어도 우리 선수의 점수가 높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 무렵 우리는 결과에 열광했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했는데, 이번 올림픽도 예외가 아니다.

남자 피겨는 공중에서 4바퀴를 돌아야 의미 있는 점수를 받을 수 있단다. 무려 4바퀴를 돌고 넘어지지 않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내려와 다음 연기에 몰입해야 한다는데, 그를 위해 선수는 얼마나 연습했을까? 혹독했을 텐데, 이번 대회의 최고 미남으로 선정된 차준환 선수가 단체전에서 실수했고,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누구도 탓한 건 아닌데, 기대가 큰 만큼 부담이 컸으리라. 중계방송을 시청하지 못했는데, 스포츠 뉴스가 간추린 화면을 보니 경탄할 만했고, 실수는 사소해 보였다. 선수의 일상이다. 시청자의 격려가 이어졌을 것인데, 그건 기회가 이어질 배추보이도 마찬가지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그림 생성 = 챗지피티)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세 번 연속 출전한다는 자체가 선수로서 대단한 명예일 게 틀림없다. 올림픽 뉴스가 보도한 차준환 선수의 역량은 세계적으로 빼어났지만, 간발의 차이를 만든 실수가 승부를 갈랐다. 위험해 보이는 스노보드는 한술 더 뜬다. 최종 승리한 선수는 실수 없었다는 안도감으로 기뻐하며 경쟁하던 선수와 허물없이 축하와 격려를 나눴다. 하지만 시상식은 금·은·동만 축하했고 메달권에서 밀려난 선수는 소외되었다. 선수들이 어떤 훈련을 감내했는지 시청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데, 승자 독식의 능력주의는 체육 분야만 두드러지는 게 아니다. 피아노 경연이 그렇고 흑백 요리가 그렇다. 학술 논문도 마찬가지이고 민주적인 6월 3일 지방 선거 과정이 그럴 것이다.

프로 야구 시즌이 다가온다. 지역을 대표하는 팀은 이 시간, 동계 훈련으로 능력을 키우며 체력을 연마할 테고 훈련 마치면 시범 경기에 나설 어린 선수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알리고 싶을 것이다. 실수는 그때 나온다. 실수가 반복되면 고된 훈련이 소용없게 될까 불안해질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훈련에 충실했다면 팀에 합류할 기회는 얼마든지 주어질 것이다. 야구도 배구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했다면 얼마든지 아름답다. 은퇴한 선배 선수를 보라. 야구 이외의 일로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은가. 승리를 향한 팬들의 극성? 그건 즐길 거리다.

혹독한 훈련을 요구하는 능력주의는 심각한 실수를 부른다. 야구 없는 요즘 이따금 배구를 보는데 스파이크 서부는 시원스럽지만, 실수가 잦다. 혹독하게 훈련했을 게 틀림없는데, 야구도 만만치 않으리라. 프로 무대에 나선 투수는 대개 수술 전력이 있다. 강속구를 연마하면서 부상이 왔을 것이다. 찰나의 승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능력주의가 빚은 부작용이 아닐까? 야구의 강속구와 배구의 강스파이크 경쟁만이 아니다. 올림픽이 정점이지만 올림픽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기록을 넘어야 역량을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훈련은 살벌했을 것이다.

잠깐 한가해 보자. 나이 든 이의 단체, ‘60+기후행동’의 신조는 “어슬렁”이다. 60 넘은 나이에 맞게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해 어슬렁거리자고 모였는데, 젊은 시절의 관성이 몸에 남았다. 어쩌다 서두르는데, 꼭 탈이 난다. 몸이 전 같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으므로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미래 세대에게 능력주의를 심은 과거의 실수를 되새기는 건데, 그래서일까? 이번 동계 올림픽은 도무지 흔쾌하지 않다.

3월이 오면 시작할 2026년 프로 야구도 느긋하게 봐야겠다. 과도한 역량을 요구하는 능력주의가 앞길 창창한 선수에 상처를 남기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파국을 예고하는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ㆍ60+기후행동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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