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평협 정기 총회에서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여성 회장 선출
[인터뷰] 한국 천주교회 첫 여성 교구 평협 회장, 조정실 소피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 하느님께 약속했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주님의 뜻대로, 당신의 도구로 살겠습니다’라고요. 부족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교회가 ‘함께 걷는 여정’을 이어 가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하 평협)를 이끄는 여성 회장이 탄생했다. 의정부교구 평협은 지난 1월 31일 신앙교육원에서 열린 제8회 정기 총회에서 제4대 회장으로 조정실 소피아(마두동 성당) 회장을 선출했다.
남성 중심의 한국 가톨릭교회 평신도 리더십 구조 속에서 ‘첫 여성 교구 평협 회장’이라는 직함은 그 자체로 변화의 상징이다. 총회를 앞두고 만난 조 신임 회장은 “여성과 남성의 구별보다는, 변화가 필요했다면 진작 있었어야 할 일”이라며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총회를 앞두고 마두동 성당에서 만난 그에게서 의정부교구 평협의 새로운 전망을 들어 보았다.
문 :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교구 평협 회장에 여성이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우리 교회가 평신도,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변화의 신호탄으로도 느껴진다. 의정부교구 평신도를 대표하는 자리에 서게 된 소감과,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 궁금하다.
답 : 개인의 기쁨이라기보다는 놀라움과 감사함이 컸다. 우리 사회가 발전한 만큼 교회 안에서도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저했다. 하지만 ‘살아 있기에 이런 제안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 전 뇌출혈과 패혈증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덤으로 얻은 삶을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리고 작년에도 뇌동맥류 수술을 받으며 또 한 번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가진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많은 분의 기도로 다시 살게 되었기에 감사함으로 순명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충실히 하는 것이라 믿는다.
문 : 의정부 평협은 2019년 사도직 단체뿐만 아니라 본당 사목회장단까지 포괄하며 ‘함께 걸어가는 교회(Synodalitas)’를 핵심 정신으로 출범했다. 지난 시간 본당에서 봉사하면서 교구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고 느낀 순간이나, 평협이 본당 신자들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가?
답 : 코로나19 대유형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본당에서는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교구에서 먼저 제안해 주었을 때 참 감사했다. 당시 교구에서 감염병으로 미사 참석조차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안부 문자를 보내자는 캠페인을 제안하셨는데, 저희 본당에서도 어르신들께 매일 문자를 보내드렸다. 어르신들이 따뜻한 문자에 ‘기억해 주어 고맙다’며 감동하신 모습이 생생하다. 이런 사례처럼 평협은 본당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피고 제안하며,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본당과 신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 : 의정부교구는 지난 2021년 여성 신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하는 등 여성들의 신앙 생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여성 회장으로서, 여성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좀 더 기쁘게 봉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
답 : 본당 미사 참례자와 봉사자의 70-80퍼센트가 여성이다. 하지만 정작 큰일이나 결정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여성들은 뒤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일들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의 장점은 섬세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섬세함 때문에 작은 것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모든 힘듦을 잊기도 한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본당의 ‘숨은 봉사자’들을 살피고 싶다. 거창한 정책보다도, ‘함께해서 기쁘다’는 마음이 들도록 서로의 노고를 알아주고 격려하는 따뜻한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여성 리더십이 할 수 있는 역할 아닐까.
문 : 교구에서 ‘경청 모임’이나 ‘시노달리타스 안내서’ 등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본당 현장에서는 소통이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신임 회장으로 본당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오해 없이 ‘잘 듣고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가?
답 : 소통의 기본은 ‘마음 열기’와 ‘신뢰’다. 그동안 우리는 사제나 수도자의 뜻을 단순히 따르는 수동적 자세에 익숙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는 서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제 시노드 여정이 ‘이행 단계’에 접어든 만큼, 연습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본당 사제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령 안의 대화’ 모임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로 보인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계급장을 내려놓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본당마다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 편차가 큰 점은 앞으로 평협이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문 : 끝으로, 2026년 새해를 맞아 함께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교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달라.
답 :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하늘에게 행복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감사함을 먼저 배우라 했다"는 말이다. 사랑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내가 먼저 감사할 때 더 큰 행복이 찾아온다. 저 스스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기에 오늘 하루가 더 감사하다. 우리 교구민들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걷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내고 ‘함께 걷는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장] 의정부 평협 정기 총회, “내실 있는 사랑의 충전소 되어야”
지난 1월 31일 오전, 교구청 신앙교육원에서 열린 의정부 평협 제8회 정기 총회는 각 본당 사목회장과 사도직 단체장 등 대의원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제4대 회장단 선출 ▲2025년 사업 보고 및 결산 ▲2026년 사업 계획 및 예산안 승인 등의 안건을 다뤘다.
총회 파견 미사를 주례한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는 강론에서 신임 회장단에 대한 기대와 함께 평신도 지도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교구 최초 여성 평협 회장 탄생을 축하하며, ‘홀어미 3년이면 은이 서 말’이라는 속담처럼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교구 살림을 알뜰하고 내실 있게 이끌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날 성 요한보스코 사제 기념일을 맞아 손 주교는 청소년 사목과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준비도 당부했다. 그는 “청소년들을 단순히 행사에 동원하거나 단체에 가입시키는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가야 한다”며 “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당을 ‘내 마음의 집’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주교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구현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분히 ‘충전’되어야 방전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협이 우리 교회를 ‘좋은 영적 충전소’로 만드는 데 협력해 달라”고 말했다.
미사 후 대의원들은 청년들과 함께 걷는 시노드 교회를 향한 의지를 다지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기도’로 총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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