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취임한 레오 14세 교황이 신년을 맞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발표했다. 교황의 평화 메시지는 세계 도처에서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고 있고, 국제 질서가 급변하며 불안정성으로 인한 폭력의 위험이 커진 와중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의 평화 메시지
담화문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평화를 먼 이상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평화는 실재이고 여정이라고 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인용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깊이 평화를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평화의 빛나는 온기를 주변에 전파할 수 있도록, 평화와 떼어 낼 수 없는 우정을 맺으라고 촉구하였다.
교황은 현대 세계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군사력에 의한 억지론’을 비판하였다. “군사력의 억지력, 특히 핵 억지력이라는 발상은 법과 정의와 신뢰가 아니라 공포와 무력 지배 위에 세워진 국가 간 관계의 비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두려움에 기반한 평화는 모순적이며 지속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참된 평화는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로써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레오 14세 교황의 비폭력 담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에 따라 그냥 옳고 당위적인 얘기로 치부할 수도 있고, 또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현안에 대한 구체적 진단과 처방이 없다는 점에서 미흡하다 여길 수도 있다. 사실 교황의 담화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보편적 담론이다. 따라서 한반도 맥락에서 이를 받아들여 우리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평화는 인간의 생존과 번영, 행복의 토대이지만 항상 위태롭다. 더욱이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돼 전쟁을 치렀고, 현재도 휴전선을 경계로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폭력에서 자유로운 ‘소극적 평화’ 마저도 누리기가 쉽지 않다. 교황의 평화 메시지가 우리 입장에서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군비증강 경쟁의 격화
국제 질서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급속히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취임 뒤로 2차 대전 이후 유지돼 왔던 자유무역 질서를 하나둘 무너뜨리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주권 국가인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납치해 자국 법정에 세움으로써 전후 국제 질서의 핵인 유엔 체제마저 와해시켜 버렸다. 또한 군사력을 동원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까지 병합하겠다고 공언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까지 무력화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나토까지 없앤다면 전후 미국이 주도해 만들었던 안보 질서가 완벽히 해체되는 셈이다. 19세기에 만연했던 제국주의, 강대국 세력권 정치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 있다.
전후 국제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국제법이 휴지 쪽이 된 상황에서 세계 각국은 힘을 키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군비 증강 경쟁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2024년 전 세계 군비지출은 역대 최대 규모인 2조 7180억 달러로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퍼센트에 달한다. 특히 한반도는 그 정도가 심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4년 1월 기준 북한의 핵탄두 숫자를 50기로 추정했다. 1년 만에 20기가 늘어났다. 북한의 미사일 고도화 또한 빠르고 위협적이다. 핵, 미사일 등 전략 무기 외에 2023년 이후 재래식 무기도 눈에 띄게 증강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력 증강 또한 이에 못지않다. 2025년 한국의 국방비는 61조 2,469억 원으로서 북한 국민총소득(NI) 44조 4천억 원의 1.4 배에 이르는데, 액수도 액수지만 증가세가 가파르다. 2000년 14조 4,774억, 2010년 29조 5,616억, 2020년 50조 1,527억 원으로서 10년 단위로 2배씩 증가하는 추세다.
작년 10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국방비가 2035년까지 GDP 대비 3.5퍼센트가 되게 하려면, 향후 10년 동안 매년 8퍼센트씩 국방 예산을 늘려야 한다. 이미 한국은 제조업 강국으로서 방위 산업이 세계적 수준인데, 늘어난 예산을 바탕으로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까지 추진될 경우 한국은 재래식 군사 강국을 넘어 종합 군사 대국이 될 것이다.
군비 증강의 도도한 흐름을 정치가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레오 14세 교황의 진단처럼 “민족 국가 내부의 시민과 통치자의 관계에서 전쟁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고, 공격에 대응하지 않으며 폭력에 폭력으로 되갚지 않는 것은 결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학교 등 교육 기관과 언론 매체에는 “위기의식을 퍼뜨리고 무장 방어와 안보의 개념만 부추기는 조직적인 선동과 교육 프로그램”이 만연하다. 종교계에서도 “국수주의를 축복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과 무장 투쟁을 정당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 이러는 걸까? 레오 14세 교황은 “사람들이 끊임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비증강 경쟁은 불안과 공포에 토대를 두고 있다. 상대국에 대한 의심과 불안, 공포가 군비 증강의 원동력인데, 이는 상대국도 마찬가지여서 끝없는 군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무분별한 군비 증강은 안보를 강화하기는커녕 양측의 안보를 더 취약하게 하는 ‘안보 딜레마’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군비 경쟁과 전쟁 발발에는 강대국의 책임이 크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에 대한 공포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고 한다. 강자일수록 타인의 의도에 의심이 많고, 위협에 합리적 분석보다는 직감과 고정 관념으로 손쉬운 해결 방법에 의존한다고 한다. 국제 관계에서도 강대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더 불안이 많고 위협을 과장되게 상상해, 충동적 결정을 내려 전쟁을 더 쉽게 지지한다고 한다.
최소의 평화에서 출발하는 게 지혜
남북 간 도 넘은 군비 경쟁이 한반도를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한 좁은 지역에 대량 살상 무기가 밀집된 상황은 마치 바싹 마른 산야에 강풍이 불고 있는 봄날의 형국과 같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산불로 비화하듯 한반도에서는 우발적 군사 충돌 하나가 전쟁으로 쉽게 번질 수 있다. 한국은 밀집된 주택 구조와 주거 인근 가스·석유 저장소, 대도시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 등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 남북한 당국이 하루빨리 만나 대화해서 ‘9.19 남북군사합의’를 복원시켜야 한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 간에 우발적 군사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끔, 또 발생할 경우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게끔 하는 다양한 예방책을 담고 있다. 전쟁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최대의 평화를 추구하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례가 허다하다. 먼저 재앙을 막을 최소의 평화 대책을 마련한 후 그 실천 과정에서 대화,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항구적 평화를 일궈 나가야 한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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