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25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거리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에는 약 120명이 함께해 해고 노동자들과 성탄의 기쁨과 연대의 뜻을 나눴다.

이날 거리 미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빈민사목위원회·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해 부산·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남자수도회 장상협의회,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함께 준비했다. 미사는 여러 신부가 공동 집전했으며, 김시몬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가 주례를 맡았다.

세종호텔 앞 도로에는 약 20미터 높이의 지하차도 철제 구조물이 서 있다.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단행된 정리해고가 노조 활동을 해 온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부당 해고 철회를 요구해 왔다. 호텔 경영이 정상화된 뒤에도 해고는 철회되지 않았고, 복직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상에서 문제를 알릴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지난 2월 13일 구조물에 올랐다. 25일 기준으로 고공 농성은 316일째를 맞았다.

25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거리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가 봉헌됐다. ©장소현 기자<br>
25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거리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가 봉헌됐다. ©장소현 기자

김정대 신부(예수회, 장위1동 선교 본당 주임)는 강론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오신 자리는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이었다”며, 하느님은 처음부터 화려한 곳이 아니라 가장 누추한 자리를 선택해 찾아오셨다고 말했다.

그는 구유(요셉과 마리아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상징물) 옆에 고 지부장이 사다리 위에 앉아 구유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성탄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고 노동자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고자 하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구유 아래 적힌 ‘땅으로 오신 예수, 고공으로 올라간 노동자, 2025 성탄에는 함께 평등한 땅으로’라는 문구에 대해 그는 특히 “평등”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며, “한 사회는 그 사회에서 누가 배제되는지에 의해 정의된다”고 짚었다. 또한 오늘 사회는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차별과 배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탄은 하늘과 땅이 만난 화해의 사건”이라며, “약자들과의 사랑의 연대를 이어 가며 성탄을 일상에서 계속 기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호텔 앞 철제 구조물 옆에 마련한 구유. ©장소현 기자<br>
세종호텔 앞 철제 구조물 옆에 마련한 구유. ©장소현 기자
김시몬 신부(가운데)가 세종호텔 앞 거리 미사를 주례하고, 김정대 신부(오른쪽)가 강론 했다. ©장소현 기자
김시몬 신부(가운데)가 세종호텔 앞 거리 미사를 주례하고, 김정대 신부(오른쪽)가 강론 했다. ©장소현 기자
평화의 인사 중, 고진수 지부장이 인사에 응답하고 있다. ©장소현 기자<br>
평화의 인사 중, 고진수 지부장이 인사에 응답하고 있다. ©장소현 기자

고진수 지부장은 인사말에서 “코로나를 핑계로 세종호텔 일터에서 쫓겨난 지 4년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며, “코로나는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당하게 해고된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현재 세종호텔은 사상 최대의 객실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호텔이 세종대학교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수익 사업체로, “많은 학생이 학업을 마친 뒤 일하게 될 일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10년 전만 해도 28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대부분 정규직으로 일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정규직 20명과 비정규직·하청 노동자 40여 명을 모두 합해도 7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노동 여건은 오히려 악화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적은 인원에 과도한 노동 강도가 쌓이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라며, “밖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우리 또한 일상이 계속 파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지부장은 또 “함께해 주시는 많은 분의 연대의 힘으로 지금까지 싸워 올 수 있었다”며,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이 발걸음을 계속 이어 가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자들은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을 기억하며, “아기 예수의 탄생 기쁨이 추위 속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도 가득 채워지길” 기도했다.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수도자들이 성가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부르고 있다. ©장소현 기자<br>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수도자들이 성가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부르고 있다. ©장소현 기자
미사 뒤에는 따뜻한 떡국을 함께 나눴다. ©장소현 기자
미사 뒤에는 따뜻한 떡국을 함께 나눴다. ©장소현 기자

미사 뒤에 개별 취재에서 만난 참석자들은 거리 미사에서 느낀 평화와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장주성 씨(하바꾹, 가톨릭 엘라이 아르쿠스)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말하지만, 지금 땅에는 여전히 전쟁이 있고 고진수 지부장은 고공에 있다”며, “전쟁도 끝나고 고 지부장도 땅으로 내려오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보나 씨(보나, 우리신학연구소 신학하는 청년 모임)는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소서’라는 기도를 이 자리에서 드리니, 그 말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평화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투쟁하고 있는 당사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처럼 느껴졌다"며 "이 현실이 고통스럽기에 더 연대하고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정선애 씨(루시아, 가톨릭기후행동)는 “작년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한 미사에 이어, 오늘 미사도 특히 마음에 남는다”며, “사람들이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갖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그날이 올 때까지 어떤 방식이든 옆에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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