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6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내용 요약

2025년 12월 8일 발표(실제는 12월 18일)된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교황은 평화를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나 세력 균형‘으로 보지 않았다. 교황은 평화를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비롯된 ‘가장 조용한 혁명’이자, 인간의 마음과 현실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으로 규정했다. 교황은 ‘무장하지 않는 평화’가 결코 수동적이거나 나약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교황에게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칼 사용을 거부하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을 때 보여 주신 것처럼 폭력의 논리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강력한 영적 투쟁을 의미했다. ‘무장을 해제하는 평화’는 상대방의 적대감을 무너트리는 힘을 뜻하였다. 이 평화는 강압이나 공포가 아닌 공감과 겸손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둘째, 교황은 이 담화에서 현대 사회의 ‘거짓 현실주의’와 군비 경쟁을 비판했다. 교황은 담화문에서 현대 정치와 미디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현실주의’라는 용어 왜곡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많은 이가 평화를 이르지 못할 유토피아로 치부하고, 전쟁과 무장을 현실적 선택이라 생각하는 태도도 경고했다. 교황은 평화를 ‘먼 이상’으로 대하게 되면 누구나 평화를 부정하는 상황에 분노하지 않게 되며,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자행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셋째, 교황은 기술 발전과 인공지능(AI)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했다. 교황은 과학 기술의 발전, 특히 인공지능을 군사 영역에 도입하는 것이 인류 공동체에 전례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인간의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기계에 ‘위임’함으로써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을 ‘인본주의 원칙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했다. 교황은 자율 살상 무기 체계가 전쟁의 비극성을 심화하고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문명을 보호하는 법적·철학적 토대를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종교의 무기화와 신성 모독을 경고했다. 교황은 신앙의 언어를 정치적 이해관계나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행태를 강력히 규탄했다. 특정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축복’하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니 신자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이러한 거짓 증언을 반박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대신 종교 지도자들은 생각과 말조차 무기화하려는 유혹에 맞서야 하고, 기도와 영성, 종교 간 대화를 통해 ‘만남의 언어’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 권고하였다.

2.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관과의 비교

레오 14세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과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신학적 배경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신학과 신중한 외교적 접근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

먼저, 전임 교황과의 연속성이다. 두 교황 모두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단순한 국지 분쟁이 아닌 전 지구적 연쇄 반응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파악한 점이 공통적이었다. 레오 14세는 전임 교황이 처음 사용한 ‘산발적인 제3차 세계 대전’이라는 표현을 인용하며, 이러한 어둠의 확산에 맞서 평화의 일꾼들이 ‘밤의 파수꾼’처럼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를 평화 실현의 방법론으로 제시하며,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대화와 경청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도 공유하였다.

레오 14세 교황의 고유성도 두드러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론이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즉각적인 ‘자비’와 ‘직접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레오 14세는 평화의 신학적 바탕인 ‘진리’와 ‘교회의 사회교리’를 평화의 토대로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 날개’(진리와 사랑)로 묘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레오 14세는 그 토대인 제대(신앙의 핵심)를 정화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때로 파격적 발언이나 행동으로 세상에 직접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면, 레오 14세는 오랜 기간 다져진 외교적 태도로 접근하려 했다. 그는 논쟁적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평화와 정의라는 근본 원칙은 고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3. 가톨릭 평화 교리에서 레오 14세 교황의 위치

가톨릭 평화교리 발전에서 레오 14세의 이번 담화문은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론’의 틀을 넘어 ‘복음적 비폭력’으로 반 발짝 더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대략 세 가지로 교황의 사회교리 발전사에서의 위치를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교황은 정당한 전쟁론 교리에서 정의로운 평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였다. 지금까지 교회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정립한 정당한 전쟁론을 교리로 여겨 왔다. 그런데 레오 14세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성인의 사상을 ‘방어적 폭력의 정당화’가 아닌 ‘평화를 향한 내면의 무장 해제’로 재해석했다. 교황은 현대 전쟁의 파괴력과 비인간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정당한 전쟁’ 교리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하며 절대적 평화주의로 반 발짝 더 나아갔다.

둘째, 교황은 순교 영성을 평화론에 통합하였다. 교황은 자신의 평화론을 전개할 때 알제리 티비린 수도원의 순교자들 같은 현대의 증인들을 교리의 중심 사례로 인용했다. 폭력에 맞서 무기를 드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가해자의 양심을 일깨운 순교 영성은 레오 14세 평화 교리의 한 토대로 보인다. 이는 평화가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영적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천명한 점에서 앞의 ‘정의로운 평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의 연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노동에서 평화로 이행하였다. 교황이 선출 당시 ‘레오’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것은 19세기 말 산업 혁명기의 노동 문제를 다룬 레오 13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를 통해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해결하려 했다면, 레오 14세는 인공지능과 전 지구적 갈등이라는 ‘새로운 사태’에서 ‘무장 해제된 평화’라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교황은 경제적 불의와 평화 파괴가 동전의 양면임을 강조하며, 통합적 인간 발전이 곧 평화의 길임을 보여 줌으로써 그가 앞으로 보여 줄 평화관의 일면을 드러냈다.

레오 14세 교황.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레오 14세 교황.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4. 교황 담화에 대한 교회 내 평가

진보 진영은 레오 14세의 이번 담화를 ‘가톨릭 평화주의의 새로운 정점’으로 평가하며, 구조적 폭력과 사회 불평등을 가톨릭 평화 교리에 통합한 점을 큰 진전으로 보았다.

 북미 : <National Catholic Reporter>(NCR) 등 진보 매체들은 교황 담화가 미국의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와 ‘대규모 강제 추방’ 정책 비판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이들은 교황이 이민자 보호와 평화를 동일한 윤리적 노선에 두었고, 비폭력을 단순한 이상이 아닌 구체적 정치 실천 방법으로 지위를 격상시켰다고 평가하였다.

 유럽 : 팍스 크리스티 인터내셔널은 ‘무장을 해제하는 평화’라는 개념이 군수 산업 로비를 타파할 예언자적 목소리라고 환영하였다. 유럽의 진보 주교들은 이 담화가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무조건적 비폭력’의 가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전쟁 패러다임을 해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 남미 : 교황이 ‘구조적 불의’와 ‘경제적 약탈’을 전쟁 원인으로 지목한 점에 공감하였다. 이들은 담화가 남미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생태적 평화’ 노선을 강화하는 지침이 될 것이라 평가하였다.

 아시아: 인공지능 기술의 윤리적 사용을 강조한 대목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들은 평화가 ‘신발을 벗는 행위(거룩한 존중)’와 종교 간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황의 관점이 아시아 맥락에서 매우 적절하다고 평가하였다.

보수 진영은 담화의 복음적 가치에는 동의하면서도, 정당방위 권리와 국가 안보의 실질적 필요성을 간과한 ‘이상적 평화론’이 될 위험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 북미 : <National Catholic Register> 등은 교황의 핵 억지력 비판이 현실 국제 정치에서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정당한 의무를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이들은 ‘정당한 전쟁’ 전통이 담화에서 지나치게 약화한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였다.

 유럽 : 보수 진영은 러시아의 침략에 직면한 동유럽 국가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조건적 비폭력 강조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도덕적 차이를 모호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

 남미 : 교황의 메시지가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하거나, 치안 부재 상황에서 범죄 조직에 대한 대응력을 약화할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였다.

 아프리카 : 일부 주교들은 테러와 내전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무장해제라는 이상적 담론이 아프리카의 구체적 안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5. 레오 14세 교황의 첫 번째 ‘평화의 날 담화’의 의미

이번 담화문에서 드러난 레오 14세의 사회교리는 ‘복음적 현실주의’와 ‘인간 중심 기술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큰 맥락의 연장에서 네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교황이 비폭력 원칙을 강조한 점이다. 교황은 비폭력을 단순한 전술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정당한 전쟁 교리가 그의 재임 시기에 다소 약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아닌가 보게 된다. 필자 입장에서 이 점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반보(半步)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고, 이 담화가 갖는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다.

둘째, 인문주의를 수호한 점이다. 교황은 모든 사회적, 기술적 선택 기준은 ‘인간 존엄성’과 ‘책임성’이어야 하며, 결정을 기계에 위임하는 것을 문명의 퇴보로 간주했다. 이 점은 교황이 가톨릭 사회교리 전통에 확고히 서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였다.

셋째, 구조적 불의에 대해 예언자적 고발을 한 점이다. 교황은 군비 지출과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직접 연계함으로써, 평화를 경제 정의와 분리할 수 없는 통합 과제로 설정했는데, 이 역시도 현대 가톨릭 평화교리 전통에 충실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과 교육을 강조한 점이다. 교황은 안보 위협을 조장하는 교육 대신,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고 타자를 환대하는 ‘기억의 문화’를 사회 재건의 기초로 삼도록 제안했다. 이 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형제들'에서 강조한 바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레오 14세 교황은 현대 가톨릭 평화 교리 노선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더 심화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반보(半步)를 더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교황이 앞으로 반포하게 될 사회 회칙의 내용과 방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교리를 계승하면서도 더 진전시킬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움직여 갈 것이라 기대를 갖게 한다.

이 글은 자료 조사와 1차 정리에 인공지능 구글 제미나이 3.0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힙니다.(2025년 12월 21일)

2026년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보기 : https://www.cbck.or.kr/Notice/20250606?gb=K1200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