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본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조절되지 않는 암성 통증에 시달리던 상연은 죽기 위해 친구 은중과 스위스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던 이휘재가 떠올랐다. 예전에 ‘TV 인생극장’이라는 프로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삶을 두 가지 버전으로 보여 주었다. 내가 드라마 작가라면 다른 전개를 해 보고 싶다.

스위스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말기 돌봄을 받는다

이 드라마에서는 암 환자의 통증을 '끔찍하고 조절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현실은 다르다. 통증이 너무 심했던 환자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으나, 호스피스 입원 후 통증이 조절되자 "아프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말기 암 환자의 통증은 대부분 조절할 수 있으며, 호스피스는 환자가 아프지 않고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상연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가 반드시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고 싶은 바람도 있었고, 상연에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외롭기도 했다. 그 때문에 스위스행을 결정했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사랑하는 친구 곁에서 생을 마감했으면 어땠을까.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미워한 친구와 화해하다

스위스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며 은중과 상연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참 나쁘다. 은중에게 큰 상처와 짐을 주고 떠나는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인은 그 장면을 화해로 해석했다. 그게 과연 화해라고 볼 수 있을까?

내 경험에서 본다면 호스피스에서도 가족이 화해하거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가족은 환자의 죽음이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용서, 화해를 이루고, 마지막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를 희망한다. 원하고 바라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환자와 가족마다 각양각색이었다.

한 번은 의식이 저하되고 죽음이 임박했다는 판단으로 임종실로 모신 환자가 일주일 가까이 가족들과 함께 임종실에 있었다. 훗날 가족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시간 동안 한 방에서 먹고 자며 서먹했던 다른 가족과의 관계가 자연스레 풀렸다고. 그렇다면 환자분은 떠나기 전, 가족들에게 '화해'라는 마지막 선물을 건네기 위해 생의 끈을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례는 치매에 걸린 암 환자와 남편의 이야기다. 남편분은 과거에 아내에게 잘못한 일들을 나에게 두루뭉술하게 얘기했다. 할아버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페티페이지의 노래를 두 분이 좋아하셨다는 걸 알게 되어, 그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깔아드렸고 화해를 권유했다. 두 분은 손을 잡았고 할머니는 약간 먼 곳을 지긋이 응시하는 눈빛이었는데, 음악 덕분인지 할아버지의 사과 덕분인지 할머니가 참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페티페이지의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 드리고, 화해의 손을 잡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머니가 편안해 보이셨다. ©오은선
페티페이지의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 드리고, 화해의 손을 잡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머니가 편안해 보이셨다. ©오은선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억지 개입해서 화해를 강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일로 나는 페티페이지를 알게 되어 그 노래를 한동안 열심히 들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환자가 아프지 않아서 만족스러웠지만 ‘그저 먹고 자고 했던 시간’으로 마지막을 기억하며, 환자와 하고 싶었던 화해를 하지 못한 걸 오래오래 아쉬워했다.

이런 상반된 경험을 가진 사별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사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얼마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살까?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과연 잘 알고 있을까? 혹시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일이 있는지 물어볼 용기와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대화가 아닌 이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색하고 쑥스럽기 마련이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더 힘들 수 있으니 미리미리 화해하며 사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빼빼로데이처럼 “화해의 날”을 만들면 어떨까? 12월 24일을 화해의 날로 만들면 좋겠다. 이 아이디어를 추진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추진하고 싶다. ^^

가족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로 연명 의료를 설명한다

드라마에서 상연의 친구 C는 6년 전 아버지의 연명 의료를 중단한 일로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상연의 스위스 동행 결정을 말린다. 죄책감은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마음에서 생길 수 있는데, 임종기에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를 신뢰가 형성된 의료인이 환자 가족의 마음을 공감하며, 가족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사별 가족들이 경험하는 죄책감은 생각보다 오래갈 수 있고, 이는 중환자실에서 연명 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가족뿐 아니라 호스피스에서 환자를 돌본 가족에게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정서적·영적 지지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대중매체가 죽음과 말기 돌봄에 대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긍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극심한 통증과 절망만이 아닌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함께하는 돌봄 안에서 환자와 가족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락사가 드라마의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마지막 회에서 안락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너무도 상세하게 담았다. 안락사와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데, 호스피스와 가정 간호를 하면서 생애 말기 돌봄을 경험했던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상연이 스위스행 대신 호스피스 혹은 재택 돌봄을 받으며 가장 믿을 만한 친구로서 동행을 요청했던 은중과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고, 통증 없는 상태에서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버전의 드라마를 상상해 봤다.

오은선

생애 말기, 돌봄, 가족, 생명 윤리의 문제에 관심을 두어 독립형 호스피스와 가정간호사로 현장을 경험했다. 현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초당대학교 간호학과에서 미래의 간호사들과 함께 간호란 무엇인지를 공부하며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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