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깨어 있음, 관계로 신앙 살아내기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핵심, '마음'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종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누가, 어떤 목소리로 응답할 수 있는가. 장상연합회 그리스도인 일치와 종교간 대화 분과 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여성 종교인들이 함께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분과위원회는 15일 'AI 시대 프란치스코 교종의 제언: 마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다움의 의미를 종교적 관점에서 성찰했다. 이번 토론회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마지막 회칙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가 강조한 ‘마음’과 ‘마음의 일깨움’에서 출발했다.
교종은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고유한 자리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마음’이며, 이는 기술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분과위원회는 서로 다른 종교 전통 안에서 ‘마음’을 연구하고 살아온 여성 종교인들을 초청해, 경청과 대화를 통해 이 시대의 질문에 응답하고자 했다. 토론회에는 가톨릭·개신교·불교·원불교 소속 여성 종교인들이 각자의 경험과 신앙, 사유를 바탕으로 ‘마음’의 의미를 나눴으며, 약 70명이 참석했다.
최현민 수녀는 인간의 본래심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마음으로 풀어냈다. 그는 기술과 효율의 시대일수록 예수 성심에 머무는 삶이 사랑의 방향을 회복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숙 수녀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르는 결정적 지점으로 ‘마음’을 짚으며, 마음은 사랑에 응답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이은선 소장은 종교 개혁의 세 원리인 오직 믿음으로·오직 은총으로·오직 성서로를 ‘마음의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믿음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며, 은총은 판단하고 저항할 수 있는 사유의 능력, 성서는 각자가 책임 있게 응답하도록 초대하는 상상력의 장이라는 설명이다.
일중 스님은 짧은 명상과 함께 마음을 ‘알아차리는 작용’으로 풀어내며,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어 마음의 흐름을 관찰하는 수행이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전했다.
이주연 교무는 마음을 ‘관계 맺음’으로 정의하며, 마음 공부는 혼자 완성되는 수련이 아니라 타자, 사회,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본래심,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마음
최현민 수녀(사랑의 씨튼수녀회)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이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는 ‘우리의 본래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과 시장 논리에 휩쓸릴수록 인간은 스스로의 중심을 잃기 쉽다며, 종교의 역할은 인간을 다시 마음의 자리로 초대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심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마음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숨과 영을 받은 존재로, 하느님의 마음이 인간의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라며, “하느님의 마음에 가까이 갈 때 인간은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하느님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최 수녀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절정이며, 교회는 이를 ‘예수 성심’이라는 상징으로 전해 왔다고 설명했다. 예수 성심은 약함과 상처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표징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가르침을 인용해, “마음은 하느님 사랑에서 시작돼 타인에게로 흘러가는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음의 회복이 곧 사랑의 회복이라며, 예수 성심에 머무는 삶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수녀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빛과 사랑이 서로를 향해 이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다시 사랑이 흘러나오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전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나누는 인격적 대화
이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며, “이 지점에서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무엇인가”라고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르는 가장 분명한 지점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인간 존재 전체가 반응하고 결정하는 자리로, 생각과 감정, 의지와 책임이 모여 있는 중심이라는 설명이다.
이 수녀는 마음은 인간의 경험과 기억, 상처와 희망이 함께 머무는 자리로, 어떤 형태로도 알고리즘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인간의 마음처럼 사랑에 응답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이러한 ‘마음의 일깨움’을 보여 주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부유한 삶을 살던 프란치스코가 한센병 환자를 끌어안으며 삶의 전환을 맞이한 사건과 “무너져 가는 내 집을 고쳐라”는 부르심에 응답한 선택은 모두 계산이나 효율이 아닌 사랑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그는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여정은 인간의 마음이 결국 돌아가야 할 자리가 사랑임을 증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공지능 시대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조하는 핵심을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됨’으로 정리하며, “올바른 마음을 가질 때에만 인간은 인공지능과 바르게 공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존 헨리 뉴먼의 말, “마음이 마음에게 말한다”는 이를 잘 드러낸다며, 올바른 마음은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마음을 열고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놓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힘을 얻는 이 대화가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이끈다. 그는 이러한 마음을 지닐 때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과 사랑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직 믿음·은총·성서로', 다시 살아내는 신앙
이은선 소장(한국信연구소)은 개신교의 ‘마음’ 이해를 종교 개혁의 세 원리인 '오직 믿음으로·오직 은총으로·오직 성서로'를 중심으로 설명하며, 이를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할 신앙 언어로 풀어냈다.
그는 “믿음은 우선 마음의 일”이라며, 이 선언이 성별이나 신분, 제도와 같은 외적 조건을 넘어 마음으로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혁명적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인(仁)’, 곧 천지를 낳고 살리는 마음의 원리로 풀어내며, 믿음이란 사랑할 수 있는 힘이자 생명을 향하며, 거룩함이 모든 존재에게 열려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총'은 인간이 이미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주어진 조건이자, 생각하고 사유하며 저항할 수 있는 힘이다.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은총”이라며, 이러한 마음의 능력으로 인간은 서로 믿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직 성서로'는 “해석을 독점하라는 말이 아니라, 각자가 텍스트 앞에 직접 서라는 초대”로 풀어냈다. 그는 성서뿐 아니라 여성의 서사, 타종교의 경전, 과학의 언어까지 아우르는 ‘다양성’을 강조하며, “이 상상력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상상력은 선과 악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속에서도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길을 그리게 하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이 소장은 “이제는 누군가가 써 준 경을 읽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경을 쓰는 시대”라고 정리했다. 각자의 삶과 언어, 선택이 곧 신앙의 텍스트가 되는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마음을 일상과 말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고 전했다.
깨어 있음, 지금 이 순간을 판단 없이 알아차리기
일중 스님(동국대 강사)은 강의에 앞서 짧은 명상으로 청중을 이끌었다. “잠시 호흡에 마음을 두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찰해 봅시다.” 그는 불교가 ‘마음을 설명하는 종교’이기보다, 마음을 직접 보고 체험하도록 초대하는 수행의 전통임을 몸으로 보여 주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한 인도 왕의 일화를 통해 불교가 말하는 ‘마음’의 핵심을 전했다. 낮에는 왕이고 밤에는 노예가 되는 꿈에 혼란을 겪던 왕에게 한 은자가 “진정한 당신은 왕도 노예도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다. 일중 스님은 이 ‘알아차림’을 두고 “왕인 줄 알고, 노예인 줄 아는 그 아는 자가 바로 마음”이라며, 불교에서 마음은 어떤 역할이나 상태가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관찰하는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초기 불교, 특히 남방 불교 전통에서 마음 수행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로 정리된다. 사마타가 마음을 고요히 하는 수행이라면, 위빠사나는 “나는 누구인가, 마음은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대상을 아는 작용 그 자체”라며, 느끼고 인식하며 의도를 일으키고 알아차리는 모든 과정이 마음의 작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지금 이 순간, 판단 없이 관찰하는 것이 곧 수행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일중 스님은 명상의 핵심을 '깨어 있음'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했다. 그는 “눈을 뜨고 있어도 깨어 있지 못할 때가 많다”며, 마음 관찰 수행은 현재 이 순간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연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음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자각할수록 충동적인 반응에서 벗어나 보다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통은 다양하지만, 불교의 방향은 하나라며, 마음을 바로 보고 지혜로 이끄는 것이 불교 수행의 중심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모든 것이 은혜, 관계에서 이뤄지는 마음 공부
이주연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는 원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을 한마디로 '타자들과의 관계 맺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불교가 20세기 초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로 출발한 생활 종교라며, 마음은 이론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드러내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음을 교리가 아닌 ‘마음 공부’라는 실천으로 다룬다.
원불교의 마음 이해는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이 세계에 본래 부족하거나 결핍된 존재는 없으며,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마음 공부는 개인의 내면 수련에 머물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원불교의 수행은 관계가 맺어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무는 마음 공부의 핵심을 ‘혼자서는 불가능한 수행’이라고 표현했다.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듯, 타자는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며, 마음 공부는 곧 ‘관계 공부’라는 것이다. 그는 너와 나 모두에게 이로운 길을 찾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수행의 중심에 둔다며,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타자와 어떻게 관계 맺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마음 이해는 인간을 넘어 지구 공동체로 확장된다. 그는 원불교의 사은(四恩) 사상을 언급하며, 인간, 자연, 사회, 제도 모두가 서로 얽혀 존재한다는 인식 속에서 마음 공부는 생태 위기와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AI가 가질 수 없는 것은 관계를 자각하고 책임지는 마음”이라며, “마음 공부는 나와 너, 인간과 자연, 기술과 생명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공부”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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