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소회의실에서 ‘제주비핵지대 조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민구 의원이 마련하고, 제주비핵지대를 위한 평화선언 준비모임과 천주교를 비롯한 도내외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강우일 제주교구 주교는 ‘제주의 비핵지대 선언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격려사를 전했다. 아래에 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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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제주의 비핵지대 선언을 위한 제언' 토론회 격려사를 하는 강우일 주교. (사진 제공 = 신강협)

노무현 정부는 2005년 1월27일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에 의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三無)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 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라고 되어 있다.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언하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제주도민이 4.3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상처를 딛고, 과거의 대립과 폭력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고, 제주도를 동북아와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평화의 기지로 만들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선언은 당시의 대한민국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 지도자들에게 잠시 머리를 스쳐 간 아름다운 일시적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같은 해 2005년 국회에서는 관련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국방부 주도의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이미 시행 단계에 진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보다 조금 전 2003년 10월 31일 제주를 방문하여, 제주 4.3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밝히며, 제주도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더욱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하겠습니다. 화해와 협력으로 이 땅에서 모든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제주도민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반이 제주 4.3에 대한 유감과 사과의 표현을 해준 데 대해 감사와 위안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 반세기 넘은 묵은 상처가 조금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세계평화의 섬 선언이 있은 다음, 불과 2년이 지난 2007년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제주도민 모두를 허탈과 경악에 휩싸이게 했다. 나도 그때 당시 이러한 정부의 갈 지 자 정책을 도저히 공감할 수 없어, 여러 통로를 통하여 정부에 평화의 섬인 제주에 대규모 군사기지 건설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토로하였다. 3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들의 억울한 희생을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희생은 무의미한 죽음이 되고 만다. 수많은 무고한 피에 물든 이 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은 그 희생자들의 무덤을 짓밟는 행위요, 그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누차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많은 이들의 제언과 반대 의사를 무시하고 기지 건설 계획을 강행함으로써, 평화롭게 살아오던 강정 마을 주민들을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로 양분하고, 대결과 불화에 휩싸이게 만들어 버렸다. 정치인들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구조의 틀 안에 자리매김할 때 평소의 소신이나 지향을 유지하지 못하고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자주 목격해 왔다. 특히 여러 국가의 이익이 상충하고 격돌하는 국제 사회의 갈등 구조 안에서 한 정치 지도자가 인류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이익과 공동선을 우선하고 선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과 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의 공동선과 평화를 실현하고 완성하기 위하여 국민의 공복에 지나지 않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그들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와 소명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제언하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과 불행을 안겨 준 것은 국가가 군대를 동원하여 저지른 전쟁이다. 시대가 흐르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쟁에 사용된 무력과 무기도 점점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가공할 파괴력을 갖춘 도구로 변화하다가 세계 2차대전 말에는 한 순간에 몇 십만의 생명을 말살하는 핵폭탄이라는 최악의 괴물이 탄생하였다. 첫 번째 핵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7만 명, 그다음 나가사키에서 4만 명이 즉사했고 그 후 5년에 걸쳐 25만 이상이 죽었다. 그 후로도 피폭당하고 생존한 희생자들은 방사능 피폭 후유증으로 각종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조선인들이 모국에 귀국하였으나, 그들도 원인 모를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건강 상태로 고통받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들의 2세대, 3세대 후손들까지도 오늘날까지 각종 질환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 핵무기란 전쟁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수많은 민간인들까지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악마의 도구인데, 오늘날까지 핵무기 사용을 입안하고 실행한 정치 군사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내린 결정으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을 고통 중에 살아온 이들에게 아무런 사죄나 배상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세계 10개 국가에서 1만 7천 개가 넘는 핵폭탄을 비축하고 있다.

지금 동북아의 국제 정세는 갈수록 서로가 상대를 위험한 국가로 인식하며 무력 증강 내지는 전쟁 수행 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금년 들어와서 20년 만에 새로운 ‘핵 정책 백서’를 펴내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핵 군비 증강 정책을 비판하며 “중국은 1964년부터 고수해 온 핵무기 선제불사용 원칙을 계속 지킬 것이고, 핵무기 미보유국이나 비핵지대에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은 지난해 500개에서 올해 600개로 20% 증가했다.

일본은 일본대로 아베 총리 이후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단계적으로 실행하며 미국의 요청에 응답한다는 구실로 몇 년 안에 방위비를 GDP 대비 1%에서 2%로 올리기 위해 구체적인 무력 증강의 수순을 밟고 있다. 최근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에는 자위대의 파견을 고려하겠다는 강경 발언을 내놓음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 아주 인접해 있는 오키나와 열도의 섬들에 자위대 기지를 강화하고 곳곳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탄두 소형화와 탄도 미사일의 수중 발사 실험을 과시하고 언제든지 핵무기 사용이 가능함을 위협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핵 추진 잠수함 건조를 거론하며 이에 맞설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발효된 지 50년이 지났으나 핵무기 개발과 보유 실태가 호전되지 않자, 유엔에서는 모든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보유·사용뿐 아니라, 핵보유국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핵우산’ 제공까지도 금지한 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이 채택되었다. 유엔 회원국 122개국 찬성으로 2017년 7월 채택된 후 95개국이 서명했고, 그중 74개국이 비준하여 조약이 발효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을 피폭한 국가인 일본이 가입하지 않았고 한국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두 나라 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기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자체의 힘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자는 목소리까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는 참으로 핵폭탄이 어떤 무기인지, 그 사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인식이 너무 결여된 몰지각의 극치라고 본다. 이는 인류의 멸망과 재앙을 서두르자는 위험천만의 발상이다.

38선에서 제일 먼 제주에서라도 먼저 비핵화지대를 선언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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