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지우는 제도, 모든 게 비밀이 된 입양인
이 글은 <가톨릭평론> 49호(2025년 가을,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주님은 고아의 아버지시요 과부의 대변자시니 주님이 버림받은 이들을 가정으로 이끄시고 갇힌 이들을 기쁨으로 내보내십니다."(시편 68,6)
한 아이의 탄생은 기적이다. 생명을 얻는 순간, 그는 처음으로 세상의 빛과 바람, 향기를 맞이하며 그 존재만으로 존귀하다. 종교 유무와 상관없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부모의 사랑은 물론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한다. 역사 속에서 부모를 잃거나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마을과 종교 공동체, 국가는 손을 내밀었고, 그 노력은 ‘입양’이라는 제도로 구체화되었다.
입양은 가정을 잃은 아이에게 새로운 가정을 제공하는 귀한 일이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 아이가 원래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정말 모든 노력을 다했는가?”
“그 아이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는가?”
뿌리를 지우는 제도의 그림자
한국의 입양사에는 빛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원가족 지우기’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6·25전쟁 직후 전쟁고아를 돕는 인도주의 명분으로 시작된 해외 입양은 곧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살아 있는 부모가 있어도 서류를 조작해 아이를 ‘고아’로 만들었고, 이름과 생년월일, 출생 기록까지 바꿨다. 조작된 ‘고아 호적’은 아이의 과거를 완전히 지웠다.
1970-80년대 한국은 세계 최대의 해외 입양 송출국이었다. 입양은 국가 외화벌이 수단이 되었고, 인권보다 경제 논리가 앞섰다. 그 결과 해외 입양은 ‘고아 수출’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해외 입양을 멈췄어야 했지만, 지금까지 2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최근까지도 한국은 콜롬비아와 인도에 이어 해외 입양 송출국 중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인이 된 해외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맞은 것은 환영이 아니라 ‘기록의 장벽’이었다. 입양기관은 ‘쉐도우 파일’이라는 비밀 기록을 만들어 진짜 부모 정보를 감추면서, 부모를 찾으려는 입양인에게 “정보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1 국가가 수십억 원을 들여 추진한 입양기록물 전산화 사업은 허점투성이였다. 아동권리보장원(전 중앙입양원)은 2013년부터 민간 입양 기관과 시설 등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입양기록물을 한데 모아 전산화 하는 사업을 10년간 추진했지만, 아직도 완료하지 못했다. 데이터 오류와 누락도 많았고 심지어 원본 자료가 담긴 외장 하드와 CD가 분실되는 의혹까지 불거졌다.2 최근에는 이러한 입양기록물을 냉동 창고에 보관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며 입양인들의 분노가 커졌다.3 많은 입양인이 “두 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 권리는 모든 인간이 가진 기본권이다. 이는 단순히 생부모의 이름을 아는 것을 넘어, 자신의 역사와 친인척 관계를 이해하고 안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필수다. 그리고 입양 기록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들과 이어져 있던 ‘탯줄’이자 정체성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 탯줄은 너무 쉽게 잘리고, 너무 함부로 다뤄졌다.
베이비박스와 보호출산제, 뿌리를 지우는 또 다른 방식
2012년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며 국가가 입양 절차에 개입하기 시작하자, 서류 조작에 의한 해외 입양은 줄었지만 뿌리를 지우는 관행이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바로 ‘베이비박스’였다. 법적 근거가 없는 이 시설은 부모의 신원 없이 아이를 유기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아동을 유기하는 것은 엄연히 범죄 행위지만 국가는 오랫동안 이를 묵인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한 주사랑공동체의 기록에 따르면 2010년 부터 2023년까지 2,200명 이상이 이곳에 맡겨졌다. 보건복지부 통계도 같은 시기 약 1,400명의 영아 유기가 있었다고 집계했다. 부모의 정보 없이 유기된 아이들은 시설로 보내지거나 입양되었는데, 마치 ‘아동 유기’라는 범죄가 제도처럼 굳어져 버린 셈이다.
2024년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출생통보제로 병원이 모든 출생을 국가에 보고하게 되어 출생 미등록의 누수를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보호출산제’라는 새로운 퇴로가 열렸다. 보호출산제는 친생부모의 신원을 합법적으로 가린 채 출산을 허용한다. 부모 정보는 영구히 봉인되고, 친인척과의 재결합 가능성도 사라진다. 이 제도로 익명 출산된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뿌리가 잘려 나간 채 살아가게 된다.
기록의 벽 앞에서 멈춘 사람들
입양인 조안 랭 씨는 26년간 친가족을 찾아 헤맸으나 기록의 벽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그의 이야기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한 ‘367명 해외 입양인들의 진실 찾기’의 일부로, 한국 정부에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4 2025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허위 고아 호적 작성, 신원 바꿔치기,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불법 기부금 수취 등 인권 침해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진실 규명 결정은 제한적이었고, 3기 위원회의 추가 조사가 시급하다.
5살에 덴마크로 입양된 박상조 씨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35년간 10차례 넘게 한국에 방문했지만, 입양기관이 친아버지 정보를 50년 동안이나 숨겨 친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평생 자신을 ‘버려진 고아’라 여겼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평생 그를 애타게 찾았다고 한다. 결국 가족을 찾아 박상조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5
미아 씨는 잘못된 정보로 친부모를 찾아 또다시 상처를 입었다. 미아 씨는 입양기관이 연결해 준 친아버지와 상봉해 3년간 가족으로 지냈고 아버지의 장례까지 치렀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파일이 다른 입양인과 바꿔치기 되어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이다.6
이들의 이야기는 뿌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상실과 고통을 남기는지 증언한다. 입양인들은 울분을 토했다.
“왜 모든 것이 비밀이어야 하는가? 왜 내 과거를 지워야 하는가?”
‘뿌리를 지우는 제도’ 때문에 수많은 입양인은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런 상실과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보호출산제의 시작으로 이러한 상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다.
‘완전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이 가능한 한 원가정에서 자라야 한다”고 명시한다. 부모와 자녀의 분리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물론 완전한 가족은 단순히 혈연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알고, 존엄과 사랑 속에서 안전하게 자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완전함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전형적 ‘정상 가족’을 이상형으로 여긴다. 이 신화는 원가정 보호보다 새로운 가족 만들기를 우선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다양한 가족 형태가 배제됐다.7 입양 제도 역시 이 틀 안에 놓였다. 해외 입양은 이러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였다. 친가족의 품에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아동을 다른 나라의 ‘정상 가족’에게 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입양인의 뿌리를 지우려는 관행도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해외 입양은 미혼모 차별, 한부모 지원 부족, 취약한 아동복지 제도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외면해 왔다.
이제는 해외 입양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미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프랑스, 핀란드 등 주요 입양 수령국이 한국의 과거 관행을 문제 삼아 국제 입양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입양인은 두 쌍의 부모를 가진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 길러 준 부모.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입양인을 온전히 존중하는 첫걸음이다. 어느 한쪽을 숨기거나 지우지 않고, 두 부모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입양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보면,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따로 있어요. 친생부모는 우리 아이를 밭에 뿌렸고, 저는 그 아이를 정성껏 거두고 있는 것이죠.”
씨를 뿌린 이는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수고가 없었다면 거두는 이도 결코 열매를 누릴 수 없다. 아이를 낳아 준 부모와 길러 준 부모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생명을 주었고, 누군가는 그 생명 을 지켰다. 그 두 사랑이 합쳐져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 두 부모의 존재를 잇는 일은 어쩌면 입양인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권리다. 입양 과정의 모든 절차에서 입양인은 주변인으로 밀려나지만, 단 한 순간만은 주체가 된다. 바로 뿌리를 찾는 순간이다. 그 재회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과 끊긴 기록, 지워진 이름을 되찾아 자기 안의 빈자리를 메우는 과정이다.
입양인이 자신의 두 부모를 모두 이해하고 연결될 때, ‘두 번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두 쌍의 부모가 나를 사랑했다’는 기억으로 바뀔 수 있다. 해외 입양의 시대를 끝내고, 모든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1) 미샤 블록, 유동익 옮김, "나는 해외 입양인입니다", 이더레인, 2025.
2) 신도경, '[국감] 아동권리보장원, 입양 기록물 백지에 예산 집행 지적', <뉴스핌>, 2024.10.21.
3) 정인지, '냉동창고에 배냇저고리, 친부모 편지... “입양기록물, 냉동식품 아냐” 무슨 일', <머니투데이>, 2025.7.23.
4) 조안 랭, '26년간 계속된 가족찾기, 과연 만날 수는 있을까요?', <프레시안>, 2023.12.10.
5) 정시환, '입양 기록의 혼란 ... ‘고아’라던 박상조 씨의 충격적인 가족 찾기 진실', <스페셜타임스>, 2025.1.13.
6) '사라진 입양기록: 나를 지운 나라', <MBC> PD수첩, 2025.1.14.
7)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7.
조소연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아동보호와 자립준비청년의 자립, 입양에 관해 연구 해왔고, 현재 입양인의 재회 가이드를 만드는 일과 아동양육시설 퇴소 생존인의 피해 사례를 채록하 는일을하고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