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Haaretz) 기자이자 공동 편집인인 기드온 레비(Gideon Levy)는 지난 일 년 간 지속된 가자 전쟁이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성과 가치관에 초래한 근본적인 변화를 경악하며 지켜본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기타 무장 단체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12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전례 없는 군사 작전을 벌여 이에 대응했다. 이제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4만 명이 넘는다.

민간인 대량 학살과 표적 살해,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스라엘 측의 파괴 행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인 동의로 정당화된다. 첫째, 10월 7일 학살은 어떤 특정한 맥락이 없는, 순전히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피에 굶주린 타고난 잔혹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모든 팔레스타인인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저지르는 범죄에 연루되어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인 전체에게 집단적 책임이 있다. 셋째, 이 두 가지 동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이 참혹한 학살 이후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이를 막을 권리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자위권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며 팔레스타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레비의 견해로는, 이스라엘이 무제한의 폭력을 행사하고 국제법과 인권에 관한 모든 규범을 무시할 수 있도록 부여 받은 이런 권한은 이스라엘 군대의 행위 및 이스라엘의 사회정치적 담론 양쪽에서 야만주의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살인의 힘을 찬양하면서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표현이나 인류애의 흔적은 공공의 담론에서 모두 삭제되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도 그런 종류의 견해들은 감시를 당한다고 레비는 말한다. 이스라엘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당국에서 범죄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끔찍하고 비참한 비인도적 상황은 이스라엘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으며, 이들 언론은 오히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증오와 인종차별로 가득하다.

레비는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살해된 사건을 다룬 이스라엘 언론의 반응을 최악의 윤리적 수준으로 본다. 예를 들어, 인기 TV 채널의 기자는 생방송 중에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초콜릿을 나눠 줬고, 또 다른 기자는 X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스랄라가 그의 벙커에서 짓이겨져 도마뱀처럼 죽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최후다.” 이 보도에 대해 레비는 “나치는 유대인들을 쥐새끼라고 불렀는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인들의 눈에 ‘도마뱀’이었다”라고 평했다. 그 며칠 전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와 무전기 수백 개가 폭발해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을 때도 나스랄라 사망 때와 비슷한 도취적 반응이 있었다. 국제법상 국가 테러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이 행위는 오히려 이스라엘 비밀경호국의 천재적인 일격이라며 칭송 받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충격적일 정도로 비인도적인 발언은 언론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텔아비브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우지 라비(Uzy Rabi)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동 전문가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남부로 이동하라는 이스라엘 군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던 가자지구 북부 민간인들이 기아로 죽어 가는 상황을 당연한 귀결로 본다. TV 인터뷰에서 라비는 “그 지역에 머무르는 사람은 누구나 법에 따라 테러리스트로 간주돼 기아나 몰살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텔아비브 대학 부총장인 에얄 지세르(Eyal Zisser) 교수는 이스라엘 군이 이제 가자지구를 점령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벤구리온 대학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니 모리스(Benny Morris)는 이란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일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기까지 했다. 위에 언급한 이들은 현재 이스라엘 군 및 보안 기관의 책임자들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학자들은 잠재적인 전쟁 범죄 및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옹호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무슬림인들을 악마화하는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 강사 요나탄 멘델(Yonatan Mendel)은 이스라엘 학자들이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 군의 파괴적 행위를 옹호하는 대중의 지지를 모으려고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학자들은 효력이 있는 국제법을 무시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지 라비는 서방 세계에서 효력 있는 규칙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서구의 조건에 맞춰 중동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라비 및 같은 지향을 가진 동료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자유주의 서구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믿는다. 멘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다른 중동 국가들과 같은 방식을 택하기를 원한다. 이스라엘 역시 중동 지역의 권위주의적 질서를 택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인 라지 수라니(Raji Sourani)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가 ‘국제법의 무덤’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두려움을 표현했다. 수라니는 1995년 팔레스타인 인권센터를 설립했고, 2023년 12월 29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이스라엘을 대량 학살 혐의로 고발한 남아프리카 법률 전문가 팀의 일원이었다. 그는 2023년 10월까지 가자지구에 살았고, 이스라엘 당국이 그를 여섯 차례 구금했으며 테러리스트로 기소했다. 그달, 900킬로그램짜리 폭탄이 그가 살던 집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미국 좌파 텔레비전-라디오-인터넷 정치 잡지 <데모크라시 나우!> 설립자 에이미 굿맨의 인터뷰에 응한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다행히 그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무사히 탈출했지만, 이스라엘이 그의 집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했다고 확신한다.

그는 결코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살해당할 위험 때문에 카이로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권리 침해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임란 칸(Imran Khan) 현 검사의 전임이던 ICC 초대 검사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Luis Moreno Ocampo)와의 대화를 기억한다.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오캄포가 말했다는 것이다. 현직에 있는 임란 칸은 2024년 5월, 전쟁 수행 방식 및 민간인 표적 살해를 위해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굶주리게 한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 그리고 최근 해임된 당시 갈란트 국방 장관에 대해 체포 영장을 신청한 인물이지만, 수라니는 칸 역시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생각한다. 수라니는 ICC가 팔레스타인 보호를 위해 더 일찍 개입했다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공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신, 이스라엘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이스라엘은 건드릴 수 없고 어떠한 해명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인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네타냐후 정부는 이제 국제법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올해 10월, 가자지구의 유엔 기구에 직접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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