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슐로모 산드의 제안

11개월이 지나도 가자 전쟁은 계속 격렬해지고 있으며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휴전 가능성도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생명 파괴와 손실은 이제 엄청난 규모에 이르렀다. 가자 지구의 60퍼센트가 넘는 지역에서 병원, 초중고, 대학을 포함한 모든 기본적인 기반 시설은 물론, 모스크나 교회와 같은 귀중한 역사적 문화 기념물이 폭격으로 황폐해져서, 앞으로도 수년간은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생계를 완전히 박탈당한 주민들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안전한’ 지역에서 다음 지역으로 소 떼처럼 계속 쫓겨나고 있으며, 언제든지 새로운 폭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전쟁으로 인한 비용은 이스라엘 측에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관광 부문은 완전히 망가졌고 경제 성장도 타격을 입었다. 2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인이 집과 마을을 떠나야 했다. 지금까지 발생한 전쟁 비용은 약 1200억 유로(약 178조 원)로 추산된다. 게다가 무력 충돌이 서안 지구와 레바논 헤즈볼라까지 확대되면서 로켓 발사와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자살폭탄테러 공격으로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위협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5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총장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을 신청한 네타냐후 총리 휘하의 이스라엘 정부는 적대 행위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ICC가 체포 영장을 신청한 하마스 지도자 세 명 중 두 명은 이스라엘 측의 국제법을 위반한 초법적 살해로 제거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야만에 맞서는 문명적 투쟁”과 “자위권”이라는 선동적이고 왜곡된 서사를 통해 자신들의 행동 방식을 확고히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군대가 “야만적인 하마스와 헤즈볼라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도록 또 ‘과잉금지의 원칙’을 무시하도록 허용한다.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는 “야만적인 테러리스트”와 동일시된다. 네타냐후가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도덕적인 군대”라고 부르는 이스라엘 군대가 “민간인을 방패 삼아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숨어 지낸다”며 민간 시설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소위 자유 서구 세계의 대표자들, 특히 미국과 독일이 이스라엘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고 이스라엘 정부가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대신 이스라엘을 재정적으로 또 무기 공급으로 계속 지원하는 한, 전쟁이 중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까? 이스라엘의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7월 19일에 나온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른바 ‘두 국가 해법’, 즉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포괄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창설안을 다시 상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가이자 텔아비브 대학교 명예교수인 슐로모 산드(1946-)가 대담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에 출간한 새 책에서 한편으로는 유대계 이스라엘인, 다른 한편으로는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위한 이중 국가 창설이 1948년부터 지속되어 온 양측의 폭력적 갈등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영문판은 9월에 "두 민족의 한 국가? 시온주의의 역사를 다시 읽다"(Two Peoples for One State? Rereading the History of Zionism)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스라엘 역사가이자 텔아비브 대학교 명예교수인 슐로모 산드 씨. (이미지 출처 = Flickr) 
이스라엘 역사가이자 텔아비브 대학교 명예교수인 슐로모 산드 씨. (이미지 출처 = Flickr) 

산드의 책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전에 출판되었지만, 다양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공격과 그에 이어진 가자 전쟁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고 간주했고, 그 사건 이후에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핵심 진술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국가도 홀로 고립된 채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연방 국가로든 연합 국가로든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함께 멸망할 것이다. 산드는 75년 동안 거의 끊이지 않고 계속된 군사적 충돌을 겪은 후에도 아랍 세계에서 유대 국가로 살아남으려는 이스라엘의 열망을 자살 행위로 간주한다. 그는 1948년 한나 아렌트가 “이중 국가를 창설하지 않으면 10년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것을 언급한다.

현재의 다급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산드는 시온주의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전념했으며, 먼저 마르틴 부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한나 아렌트와 같은 몇몇 초기 시온주의자들의 잊힌 텍스트들을 접했다. 이들은 먼저 오스만 제국에서, 그다음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Mandatory Palestine)에서 유대인과 아랍인들을 위한 단일한 이중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이 사상가들은 유럽 민족국가를 모델로 한 독점적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테오도르 헤르츨,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 벤 구리온을 중심으로 한 시온주의 주류 운동에 반대했다.

부버와 아인슈타인 등 이른바 “영적인” 시온주의 대표자들은 유대인의 윤리와 신앙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 사상가들에게는 주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이중 국가의 비전이 핵심이었다. 그들은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아랍 지역에 있는 서구의 전초 기지라기보다는 셈족의 거주지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오스만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을 창설하려는 1917년의 밸푸어 선언을 거부했다. 그들의 눈에 유대인들은 아랍인들과 동일한 셈족에 속해 있었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잃어버린 오리엔트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리엔트와 아랍인들 사이에 영적, 생물학적 측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1925년에 결성된 ‘브리트 샬롬’(평화의 언약) 그룹과 1942년에 마르틴 부버가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창설한 이후드(Ihud=Unity) 운동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평화주의적 시온주의의 또 다른 대표자인 유다 레온 마그네스는 1948년에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유대 국가 창설을 자제하라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작가이자 정치인인 우리 아브네리는 1956년에 셈족 액션(Semitic Action)을 설립했는데, 이는 가나안주의 사상, 즉 유대인이냐 아랍인이냐에 기반을 두지 않고 양국의 공존에 기반을 둔 국가라는 개념을 대표하는 그룹이다. 슐로모 산드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있는 이 시온주의 소수파의 정치 이론은 나중에 뒤로 밀려났고, 시온주의를 유대교의 종교적 문헌과 연결한 그들의 저작들만 보존되었다.

이스라엘과 점령 지역의 현재 상황과 관련하여 산드는 이 지역에서 전체 인구, 즉 유대계 이스라엘인, 아랍계 이스라엘인 및 팔레스타인인이 돌이킬 수 없게 얽혀 있다고 평가한다. 약 90만 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서안 지구에 살고 있다. 다문화 도시 하이파에서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비율이 20퍼센트다. 산드는 현실 상황이 법적인 상황으로, 즉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지니는 이중 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 객관적 상황에서부터 이끌어낸다. 그는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가 서로 다른 언어 공동체에 부여되는 ‘합의제 민주주의’의 효과적인 모델로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와 같은 국가를 꼽는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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