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로 접어든 의료대란이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추석 전후로 응급실 대란은 현실이 되었다. 명절 인사가 ‘아프지 마라’일 정도로 의료 붕괴가 목전에 있다. 문제는 이런 파국적 의료 공급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주당 80시간 이상 일하던 전공의 노동 공백으로 중환자나 응급 진료를 전담하던 대형병원급의 의사 노동이 40퍼센트가량 줄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집단 사직 상황이 방치돼 내년 신규 전문의가 거의 없고, 연쇄로 일어난 의대생 동맹 휴업으로 의사도 거의 배출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정권과 의사의 극한적 대치가 야기한 전공의 집단 사직과 동맹 휴업 방치는 둘의 버티기 문제가 아니라 의료 체계 전반을 붕괴 수준으로 밀어넣는 파국을 의미한다. 만약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전공의가 이후 복귀해도 한국 의료는 이 충격을 해결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전공의는 이제 1년 쉬는 건 확정이고, 기피 진료과는 향후 복귀 여부가 불확실하다. 이 가운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과 환자들이 받고 있다. 의료는 정치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근본적으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서비스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기에 봉착했는데도, 정치적 명분을 우선하는 정부는 어떤 양보도 않고 요지부동이다.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가 명분 없고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을 보이더라도 국민의 목숨보다 이들 기득권 타파가 더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 사태를 8개월째 이어 간 현재 되돌아보면, 정부가 진정 의사를 늘리려고 2000명 의사증원안을 비타협적으로 강행한 건 아닌 게 명확하다. 아마도 증원보다는 의사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 집단을 진압하는 모습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다 외통수에 걸린 것 같다.

아무튼 정부의 무능 혹은 악의적 정치 쇼, 그리고 기괴한 고집이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난 현재 상태는, 앞으로 상황이 나빠진다는 점에서 진정 혼돈의 도가니다. 그런데 이런 난장판에서도 위기는 기회라고 외치며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덤비는 세력도 많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이들에게 한없이 인자하다. 다름 아닌 병원 자본, 제약, 바이오 자본, 보험 자본이 그들이다.

창조적 파괴와 의료민영화

우선 2월 정부가 말한 현 상황은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보건의료 재난 상황’이다. 그리고 보건위기 수준은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를 2월 23일부터 유지하고 있다. 감염병이나 천재지변도 아니고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일어난 대형병원 의사노동 결핍이 ‘재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재난’이라는 규정하에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대책 논의하고 있는데, 여기서 내용 상당수가 실질적 의료 공백 해소 방안보다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려는 불나방들의 잔치상이 되고 있다.

당장 시범 사업으로만 운영되던 비대면 진료를 병원급까지 전면 허용했다. 알다시피 비대면 진료는 응급, 중환자 진료에는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증 진료 부담을 줄여 중환자, 응급 진료에 투입될 의료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라도 관철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형 병원들은 외래 진료는 조금 줄이고 입원 진료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전공의 공백에 대응했다. 대형 병원 경증 진료를 줄이는 효과도 없었고, 비대면 진료 사업만 광범하게 팽창시켰다.

여기다 7월에는 KB보험 자회사가 비대면 진료 중계 회사를 인수했다. 민영 보험사가 진료 중계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는 현재 의료법도 개정되지 않아, 사회적 논의 없이 시범 사업만 확장되는 추이인데, 여기에는 사모펀드 같은 투기 자본도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를 재난 상황에 맞춰 공익적으로 도입하려면 애초에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이 공적 중계 앱을 운영하고, 공공 비대면 진료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 하지만 투기 자본 눈치를 보는 정부는 그런 시늉도 하나 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형 병원은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한다는 명분으로 연일 추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계획하는 상급 종합병원 전환 계획은 병상 줄이기와 인력 충원에 대한 대응이 모조리 보상(수가)을 강화하는 것으로만 되어 있다. 그래서 ‘가산수가’를 2-2.5배까지 인상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병실료를 50퍼센트 인상하는 안도 예정돼 있다. 이렇게 보상을 높이더라도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올린다면 환자들의 부담이 많지 않겠지만, 부담을 낮출 장치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도리어 경증 진료는 본인부담금을 90-100퍼센트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한다.

경증 환자가 대형 병원에 가지 않고 동네 병의원에서 치료받도록 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를 주치의 제도나 의료 전달 체계를 개선해 시행하지,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높여서 의료 이용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고안하진 않는다. 비용 부담 능력으로 이용 자제시키는 방법은 부자들을 제외한 서민들만 돈 걱정에 자제하는 불평등을 낳게 된다. 여기다 본인부담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보장성을 낮추면, 그만큼 국민들은 의료비 걱정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에 더 가입해야 된다. 이렇게 연결되니 기간의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병원 정책은 사실상 민간보험 활성화 정책과 일맥상통하다.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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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의료민영화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이런 상황을 ‘의료 개혁’으로 포장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실행 방안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내놓은 1차 실행 방안에는 민간의료보험의 권한을 미국식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계획과 같고, 나아가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만든 민영보험 활성화 대책과 동일한 큰 그림이다. 주된 내용은  '비급여 기준, 가격 심사'를 민영보험사에 위임해 사실상 의료기관과 민영보험사 간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민영보험이 건강보험과 동일한 지위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민영 의료보험은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외 부분을 보충하는 형태에서 경쟁형으로 진화할 수 있다.

여기다 비급여 가격도 민영보험와 의료기관이 협의, 설정하고, 진료비도 보험사에 직접 청구하는 직불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직불제는 민영보험사가 병원과 계약을 맺는 셈이어서 민영보험이 병원을 통제하는 통로가 된다. 결국 말로는 '비급여 적정 보장'으로 환자들 편의를 봐주는 양 말했지만 본질은 미국식 의료민영화이고,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삼성생명 보고서 내용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민영보험 활성화는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정책 방향인데, 작년에 통과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 의한 개인정보 집적화 기관도 2월 15일 이미 보험개발원으로 금융위원회가 결정했다. 보험개발원은 민간보험사의 보험요율과 손해율을 계산해 보험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보험회사 연합단체다. 추가로 이 난리통에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민영보험사에 개방하겠다는 계획도 금융위원회를 통해 계속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비급여를 대폭 늘릴 수 있고, 국민들을 '마루타'로 만드는 새로운 의료 기술에 대한 ‘선진입 후평가’도 구체적으로 고안되고 있다. 9월 26일 발표한 정부안에 따르면 앞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은 80일가량 안전성 평가한 이후에 즉각 시장에 시판되고, 시판 방식도 비급여로 허용된다. 빵이나 생수가 안전하지만 약으로 팔리면 안 되듯이 안전하다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기가 임상 시험도 무시하고 팔리도록 하는 건 국가 책임 포기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규제 완화가 바이오 산업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듯, 기업도 아니고 정부가 계획까지 세워 말하는 건 정부를 해체하는 게 나을 정도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해체하고 공공 의료 중심의 진짜 개혁안이 필요하다.

결국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대형 병원의 응급실, 중환자실은 의사가 없어 난리통인데, 한쪽에서는 일관된 민영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있다. 현재의 의료대란의 핵심인 응급진료에 대한 위기의식은 경증 환자 탓으로만 넘어가고, 병원을 찾지 못해 뺑뺑이 돌고 있는 국민은 잉여적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잔인한 정부가 뒤로는 미국식 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획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 의료기기 회사, 비대면 진료를 기반한 테크 기업, 투기 자본, 민영 의료보험, 바이오 제약 업체 등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자신의 이해만을 관철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의료개혁’으로 포장하는 건 제약바이오협회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다. 이 위원회 구성원 대다수가 의료산업화론자다. 그렇다면 결국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무엇일까? 그건 ‘개혁’ 덧칠을 한 사실상 의료민영화다. 이 계획에는 국민도 없고, 환자도 없고, 오로지 자본만 있다. 지역 의료, 일차 의료, 공공 의료는 완전히 빠져 있다. 말로는 ‘생명’과 ‘지역’, ‘필수 의료’를 떠들고 있지만, 그 내용은 대형 병원과 민영보험이 그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는 궤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제 의료민영화는 진짜 괴담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돈벌이를 위해서는 생명과 안전을 팔아먹을 수 있는 자본의 민낯을 이 의료대란 속에서 똑똑히 볼 수 있다. 모든 파괴적 행위는 창조적 발전의 여지를 만든다. 이젠 이 의료 파괴 상황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공 의료, 일차 의료, 공보험(건강보험)을 확대하는 진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난장판으로 다음세대가 끔찍한 의료 재난을 경험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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