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오늘 주문해서 내일 받는 택배 문화다. 더구나 요즘은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배송되는 것도 많고, 새벽 배송되어 주문에서 배송까지 24시간이면 완료된다. 너무나 편리한 온라인 제품 구매에 이어 너도 나도 각종 빠른 배송 상품을 옵션으로 선택하도록 부추긴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로켓배송, 총알배송 등 서비스 명칭도 ‘빨리빨리’라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다.
배송 상품도 과거 공산품, 서적이 다수였다면 이제는 식료품과 주류(주로 전통주) 및 학생들의 준비물 등 모든 생필품을 망라한다. 이런 택배 천국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집 앞 배송이 일상화되고 비대면 온라인 상점이 활성화되면서 극대화 되었다. 주요 식당의 요리들도 택배로 배달되는데, 이 배달을 중계하는 중개 앱이 활성화된 영향이 크다. 이런 편리만을 추구하는 택배 천국은 어떠한 규제와 제한 없이 성장해 왔다.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2000년 2.4회에서 2023년 100.4회로 늘었다. 경제 활동 인구 1인당 2023년 평균 177.6회로, 이틀에 한 번꼴로 택배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무한 폭증하는 택배 성장 이면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과 과로가 있다.
플랫폼 노동의 덫
야간 노동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2급(2A) 발암물질’이다. 야간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위해는 수많은 연구가 입증했다. 의학적으로 18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05퍼센트, 24시간 이상이면 0.1퍼센트와 같은 상태로 본다. 비수면 시간 유지 및 수면 패턴 변화는 대부분 야간 노동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이는 건강 위해에서 안전 문제로 전환된다.
마치 술을 마신 것과 같은 상태는 노동 현장에서 필연으로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졸음 운전과 산업 현장의 낙상 사고가 있다. 미국안전협회(NSC)는 2019년 미국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고 원인 중 10퍼센트 이상이 ‘노동자 피로’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 피로를 유발하는 대표 요소로 수면 문제가 단연 1위다. 수면 문제는 대부분 규칙적인 수면 시간이 망가지면서 일어난다. 개인 사고뿐 아니라 사회 재난과 대형 사고도 수면 부족과 연결된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챌린저호 폭발 사건, 엑슨 발데즈호 기름 유출 사건이 이에 해당된다. 이 사고들은 야간 노동이 미칠 사회적 재난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문제로 야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야간 전담 간호사는 월 야간 근무를 14일 안으로 제한하고 있고, 야간 근무를 2일 이상 할 경우 4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해 준다. 야간 근무 시간도 8시간으로 제한하며, 야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업무량도 줄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택배 노동은 어떠한가?
최근 과로사로 사망한 쿠팡 택배 노동자 고 정슬기 씨는 평소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하루 10시간 30분을 주 6일 근무했다. 야간 노동 관련 기준을 훨씬 웃돌아 일했는데 어떠한 규제도 없었다. 주당 노동 시간도 77시간에 달했고, 이틀 연속 야간 노동을 하도록 쿠팡이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 택배 노동자 개개인을 개인 사업자로 고용하는 플랫폼 노동이 이런 규제 없는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다. 거꾸로 보면 쿠팡은 사각지대를 이용해 성장해 왔다.
쿠팡은 정슬기 씨 사망에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이 쿠팡 직원이 아니라 쿠팡과 계약한 택배 회사인 ‘굿로지스’와 계약했다는 핑계다. 하지만 실제 쿠팡의 새벽 배송 업무 지시가 과도한 야간 노동과 과로사의 원인이다. 쿠팡이 택배 업체와 맺는 계약에는 ‘아침 7시까지 배송 완료를 지키지 못하면 지연 배송으로 계약 해지 혹은 구역을 회수당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배송 지연은 사실상 해고를 의미해 야간 노동을 방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쿠팡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던 이유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관리 감독은 없고, 모든 노동 책임은 개인이 지는 구조 때문이다.
과연 프레시(fresh)한가?
새벽 배송을 늘리는 데 기여한 쿠팡이 선전하는 ‘로켓프레시’도 기만적이다. 로켓프레시는 멤버십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신선 식품 로켓 배송 서비스다. 신선한 듯 보이는 보냉 가방을 최근 여러 곳에서 새벽에 많이 봤을 것이다. 그래서 서비스 이름에서도 ‘프레시’(신선)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진정한 신선 식품 배송 서비스가 아니다. 달걀이나 채소류도 있지만 가열 조리해야 하거나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냉동 식품으로 되어 있는 ‘초가공 식품’ 세트가 많다. 초가공 식품이란 식품 보존과 편의성 및 맛을 위해 공정을 거쳐 합성 성분과 감미료, 착향료 등을 가미한, 사실 가공 식품을 넘어서는 불량 식품류다.
이들 초가공 식품은 흔히 라면, 과자류, 탄산음료를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냉동 식품과 밀키트로 진화하고 있다. 냉동 혹은 밀폐 포장된 양념 고기류, 레토르트 식 국물류, 냉동 망고 같은 과일류도 해당한다. 2024년 영국의학저널 <BMJ>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초가공 식품 섭취량이 많으면, 심혈관계 질환 관련 사망 위험이 50퍼센트 이상 올라간다. 불안 및 정신 건강 장애 위험은 최대 48-53퍼센트, 제2형 당뇨병 위험도 12퍼센트 높아진다. 이외에도 비만, 수면 장애, 우울증도 모두 올라간다. 때문에 초가공 식품에 대한 담배와 같은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제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식품들을 새벽 배송으로 신선하다고 광고하면서 보내는 택배 서비스는 한국에서 유독 날로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신선하지도 않고 신선 식품도 아닌 초가공 식품류를 노동자들의 생명을 갈아넣어 새벽에 배송받는 것은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다.
새벽 배송 중단하고 부추기지 말아야
결국 새벽 배송 상당수는 긴급한 문서나 용품을 빨리 보내는 퀵서비스도 아니고, 말로만 신선하며 빠른 배송을 보장하려는 무한 배송 경쟁의 산물이다. 소비자는 빠른 배송이 편리하겠지만, 이를 위해 택배 노동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 야간 노동의 수레바퀴에 들어간다. 더더구나 결코 신선하지 않는 초가공 식품류를 받으려고 새벽 배송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결국 새벽 배송은 온라인 상점과 이들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이윤만을 위한 것이다. 소비자 편익은 눈속임이고, 실제는 배송 노동자들의 생명을 갈아먹어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만 부추긴다. 지역 시장이나 마트에서 신선 식품을 구매해 조리할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 초가공 식품은 건강을 훨씬 해친다. 앞서 말했듯이 담배나 술보다 더 위험한 새벽 배송 야간 노동은 이제 개인의 선택이란 명분으로도 플랫폼 노동이란 편법에서도 중단되어야 한다.
가공 식품류를 ‘신선식품’으로 속여 팔거나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행위도 규제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마치 현명한 소비로 환원한다면 우리 사회와 다음 세대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 부러워하는 택배 천국은 살인 배송과 건강 위험 속에서만 가능했다는 씁쓸한 현실을 이제 인정하자. 진정 악마의 맷돌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노동이 새벽 배송이다. 악마의 맷돌을 그만 멈춰야 한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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