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깊이

10월 16일 서울시 교육감 보궐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진보 교육감이 50.17퍼센트를 얻어 당선됐다. 그런데 서울의 지역별 그것도 동별 표심을 보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같은 서울 지역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대표적인 학군지인 대치1동과 대치2동은 보수 후보에게 80.3퍼센트, 74.1퍼센트가 투표했다. 사실상 몰표를 던진 셈이다. 구별로도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와 용산에서 보수 후보가 진보 후보를 크게 앞섰다. 기타 지역도 학군지라고 불리거나 자사고가 있는 양천 목5동, 종로 삼청동, 구로 수궁동이 보수 교육감에 다수 지지를 보였다고 한다.

이를 교육감 선거가 아니라 진보, 보수 이념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는 상대적으로 정당 후보가 아니어서 교육 제도 측면이 강하게 반영된다. 투표율도 여타 정치적 선거보다 낮다. 그럼에도 이런 큰 지역별 편차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현재 한국의 초중고 교육 기반은 무상 교육이고 공교육이다. 그럼에도 실제로 균등한 교육이 아니라는 점, 평준화된 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 교육감 후보의 핵심 공약은 서열화를 추구하고 수월성 교육을 통해 엘리트를 양산하자는 게 요지다. 진보 교육감 또한 평등 교육을 절대 지지하는 수준에 있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진보 교육감은 고교평준화 기반하에 일부 혁신 교육이나 수월성 교육을 하자는 절충점을 가진 중도파다. 그럼에도 이런 지역별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결국 교육 현장이 이미 뿌리 깊은 차별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일부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전체적인 서열화 교육에 대한 열망이 특정 지역에서는 매우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는 교육 정책보다 더 큰 사회 정책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교육은 의료와 마찬가지로 필수 서비스다. 그리고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학령기 가족이 있는 거주민은 그 지역에 살 수가 없다. 다시 말해 교육은 필수재다. 그런데 이 필수재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갈린다면 균등하게 공급될 수가 없다. 또한 이미 선택적이고 차별적인 필수재 공급이 이런 선거 결과를 보여 준 것이기도 하다. 즉 엘리트를 길러내기 위한 서열 중심의 수월성 교육에 대한 대치동의 절대적 지지는 교육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의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지난 16일 열린 서울시 교육감 보궐 선거에서 정근식 후보가 당선됐다. ©왕기리 기자
지난 16일 열린 서울시 교육감 보궐 선거에서 정근식 후보가 당선됐다. ©왕기리 기자

의료 불평등

비슷한 필수재인 의료 공급도 지역 차별이 심각하다. 빅5로 대표하는 핵심 대형 병원은 서울에 있다. 흔히 수도권 의료 쏠림이 심하다고 말하는데, 맞는 말이다. 지방은 병원도 없고, 의사도 부족하다. 수도권에는 포화 수준 이상의 병상이 있다. 그런데 이 수도권도 자세히 뜯어보면 내부에 불균등 공급이 심각하다. 빅5 병원도 그중 세 병원이 강남 3구에 있다. 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은 물론, 강남세브란스병원도 이 지역에 있다. 2023년도 운영 흑자를 보고한 병원도 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다. 즉 병원 집중도 외에도 큰 수익을 보고 있는 게 이 지역 대형 병원들이다.

이 병원들이 전국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가까이 사는 지역 주민들이 응급 환자나 외래 환자로서 받는 의료 혜택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의료전달체계도 없어 높은 본인 부담금을 감수한다면 지역 주민들은 쉽게 여기서 진료받을 수 있다. 그 결과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같은 심뇌혈관 질환 치료율과 후유증 비율 그리고 외상 이후 치료 결과에서 이 지역이 타지역보다 결과가 좋다. 다시 말하면 강남3구에 살면 같은 응급 질환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여기다 이런 의료 불평등은 의료인과 의료 자원의 집중도 낳는다. 서울 타지역의 상급 종합병원의 응급진료 역량은 점점 떨어지지만, 강남3구의 진료 역량은 의료인 충원으로 상대적으로 호전된다. ‘응급실 뺑뺑이’도 대체로 서울에서도 타지역의 이야기다. 이렇게 되다 보니 이번 의료대란 속에서도 ‘강남 살아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이라는 보편적 건강보장 제도를 가지고 있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국가 책임이라는 이념을 공유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갑자기 벌어진 것은 아니다. 애초에 병의원 공급을 시장에 맡겨 두어 필수 서비스인 의료 공급을 지불 능력 중심의 불평등 구조로 만든 건 지금까지 집권한 정부였다. 오랜 민영의료공급 방치는 이제 겉잡을 수 없는 의료공급의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불평등을 교육 부분에서 보여 준 것이 교육감 선거 결과라면, 의료 부분에서 보여 준 것은 응급실 뺑뺑이 적은 강남3구일 것이다.

교육과 의료의 고리

교육 불평등과 의료 불평등은 결국 결합되고 있어 강남 3구 출신 의사들이 과다 양성되고 있다. 의과대학 입시도 기존 능력주의 선발 구조 속에서 성적순으로 적용된다. 그 결과 2024년 전체 의대 신입생의 13퍼센트가량이 강남 3구 출신이다. 특히 서울대 의대는 23.9퍼센트, 가톨릭 의대는 34.74퍼센트가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서울의 특정 지역 출신이 과표집되는 의사 집단 형성은 수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지역 의사 부족, 그리고 환자 경험 편중이 일어난다.

2000년에서 24년까지 활동 의사는 6만 명대에서 12만 명까지 2배가 늘었지만, 지방에서는 의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지방의 정주 여건 저하,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환자가 줄면서 의사들도 지방에 가지 못하는 환경이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최소한 지방 출신 의사가 많다면, 수도권 쏠림은 지금보단 완화되었을 수 있다. 특정 지역 출신 의사 과다는 지역 의료 문제를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다.

여기다 강남3구 출신이 아니더라도 의대 정시 합격생 반수를 배출한 학원은 대치동에 있다. 신규 의사 상당수가 대치동 사교육 시장을 거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여기서 능력주의 서열화에서 살아남은 의사들이 사회와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희생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와 국가는 이들의 교육과 선발을 모조리 시장에 맡겨 뒀고, 이제 의사들은 그 보상만을 노리게 된다.

결국 교육 불평등과 의료 불평등은 다시 교육 문제에서 악순환을 불러오고, 이는 선후 관계의 혼동을 가져온다. 그리고 교육과 의료 모두에서 경쟁을 늘리고, 서열화를 촉발하고, 불평등은 악화된다.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와 교육 모두에서 공공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성적 중심이 아니라 지역에서 일하겠다는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의대생으로 선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역 의료도 살고 사교육 시장도 축소되고, 강남3구의 과도한 교육 붐도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대학별 지역 균형 선발을 모든 전공에 확대한다면, 사람들이 지방에 살 이유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토대하에 병의원의 지방 설립도 촉진될 수 있다. 교육에서 시작된 선순환으로 지역 균형 발전의 기초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가 씁쓸한 이유는 단순히 교육 정책의 빈곤과 천박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다. 교육과 의료는 필수재로서 평등하고 균형 잡힌 공급이 절대적이다. 강남3구 문제는 부동산과 자산 불평등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불평등에도 기반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따라서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는 진정한 교육 개혁, 의료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해 준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재앙밖에 없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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