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에 반대하며 미국에서 확산한 학생 시위가 올봄에는 독일로도 퍼져 나갔다. 5월 초 베를린 학생연합(SCB) 회원들은 베를린 자유대학교 캠퍼스에 친(親) 팔레스타인 투쟁을 위한 시위 캠프를 세웠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대학 당국이 즉각 휴전 및 독일 무기 수출 중단을 위해 힘쓸 것, 그리고 이스라엘 대학들과의 학문적 공동작업 및 문화교류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학 당국은 항의하는 학생들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경찰을 동원해 시위 캠프를 철거하려 했다. 그러자 베를린 내 대학들의 교수 및 강사 100여 명은 학생들과의 연대를 표명하며 평화적 시위를 할 권리를 옹호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시위 캠프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우리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할 권리를 학생들 앞에 나서서 지켜 주고자 한다.... 우리는 베를린의 대학들이 시위 학생들에게 경찰을 투입하는 일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 학생들과의 대화, 그리고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장소로서의 대학을 지키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6월 중순까지 1400명이 넘는 학자가 이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그러나 저항운동에 참여한 학생들뿐 아니라 그들을 옹호했던 교수들도 언론과 정치인들에게서 거센 비난을 받으며 ‘반유대주의자’로 몰렸다. 교육부 장관은 교수들이 하마스의 테러를 문제 삼지 않고 ‘반유대주의 선동’과 이스라엘 혐오를 무시해 버린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관은 해당 교수들의 연구비를 박탈하거나 이미 받은 연구비를 환수할 가능성도 검토했다. 그러자 독일에서 2800명이 넘는 학자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교육부 장관의 이와 같은 시도를 비판하며 두 번째 공개 서한을 발표해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베를린 시위 캠프를 둘러싼 사건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독일에서 가자 전쟁과 관련한 친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비판 성명, 시위, 집회 및 행사가 ‘반유대주의’로 분류되고 금지된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에 거리를 두고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표명한 수많은 언론인, 예술가, 학자가 이에 포함되었는데, 이들 가운데는 유대인과 이스라엘 시민도 다수 있었다. 눈에 띄는 사례는 2024년 2월에 열린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로, 여러 수상자가 이 중동 분쟁에 관련해 팔레스타인 측과의 연대를 표명하고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한 바 있다.

수상자 중에는 이스라엘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유발 아브라함(Yuval Abraham)과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실 알 아드라(Basil al-Adra)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인 추방 및 서요르단 남부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노 아더 랜드’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 연설에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인인 자신과 팔레스타인인인 알 아드라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사법 시스템과 삶의 조건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간 분리)’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가자지구의 휴전을 촉구했다. 알 아드라는 가자지구에서 수만 명이 “이스라엘에 의해 학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 중단을 독일 정부에 촉구했다. 이러한 발언은 독일 언론과 정치인들 사이에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두 사람은 ‘반유대주의자’이며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맞서도록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발언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가족은 이스라엘 우익 폭도들의 위협을 받았고 그 자신도 살해 협박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독일 정치인들을 향해, 그들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인 자신에게 ‘반유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특별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아브라함과 알 아드라는 둘 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온라인 잡지 <+972 매거진>에 오래전부터 기고해 왔다. 유발 아브라함은 지난 4월 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조종하는 데 사용한 인공지능 기술 ‘라벤더’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노 아더 랜드'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노 아더 랜드'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독일이 지닌 ‘박해망상’의 또 다른 희생자는 독일-이스라엘 이중 국적을 가진 학자이자 폴란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인 모쉐 추커만(Moshe Zuckermann)이다. 추커만은 텔아비브 대학에서 철학 및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은퇴했으며, 이스라엘 정부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학자다. 3월에 그는 독일의 어떤 폴크스호흐슐레(시민교육기관)에서 강연을 하기로 했지만, 이 기관이 혹시나 해서 독일연방정부의 ‘반유대주의 담당국’(독일에는 연방 15개 주에 이른바 ‘반유대주의 담당국’이 있다)에 조회해보니 추커만은 ‘반유대주의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학자이며 독일에서는 반유대주의로 분류되는 국제 BDS 운동(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 보이콧, 투자회수, 제재)의 지지자다. 그러자 폴크스호흐슐레는 초청을 철회했다. 추커만은 자신에 대한 그러한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발 아브라함처럼 그도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두 가지 별도의 사법 시스템이 있는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간주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 사회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차별받는, 두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로 특징짓는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이자 뉴욕 뉴 스쿨 철학과 교수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2024년 5월부터 쾰른대학교에 객원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2023년 11월 유럽과 미국의 400명이 넘는 교수가 서명한 공개 서한 ‘팔레스타인을 위한 철학’에 프레이저 교수도 서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이 보고서는 이스라엘을 ‘인종우월주의 국가’로 칭하며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대량학살’을 언급했다. 쾰른대학교 당국은 공개 서한 작성자들이 이스라엘의 존립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2023년 10월 7일에 일어난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축소해 해석했다고 비난하며 프레이저에게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결국 쾰른대학교는 프레이저의 해명에 불만을 품고 초빙을 철회했다. 유대인인 프레이저 교수는 이런 반응을 ‘유대인 우호적 매카시즘’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사건의 빈도를 고려하면 독일의 ‘반유대주의 히스테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는 2016년에 만들어진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 연합(IHRA)’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실무적 정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 50곳 이상의 국가와 수많은 비정구기구(NGO)에서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반유대주의란 “유대인 혐오라고 표현될 수 있는 특정한 유대인 인지 방식이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개인 및(또는) 그들의 재산,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 기관이나 종교 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종종 ‘이스라엘과 관련한 반유대주의’라고 불리는 11가지 예가 제시된다. 예를 들면 여기에는 이스라엘 국가 존립권을 부인하거나 이스라엘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에 비교하는 것을 포함한다. 요즘은 이스라엘과 관련한 ‘아파르트헤이트’, ‘집단학살’과 같은 용어도 반유대주의로 간주한다. IHRA의 정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억압하고 반시온주의를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많은 학자에게서 비판을 받아 왔다. 2021년에는 20명이 넘는 학자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반유대주의에 관한 예루살렘 선언(JDA)’ 초안을 작성했고, 모쉐 추커만도 여기에 서명했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