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주일 복음 묵상

ⓒSieger Köder


9월 6일 / 연중 제23주일 (마르 7,31-37)

귀머거리 벙어리의 치유


나의 예수님은 무엇보다 세상과 하늘을 향해 나를 열도록 가르치신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이 함께 사는 형제들의 마음과 합일케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주 예수님, 저는 무소유의 삶을 살자고 아침마다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제 자신은 누리고 싶은 소유욕과 명예욕에 자주 갇혀 삽니다. 나 혼자 결정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당연시 합니다. 내게 순종하는 이를 사랑하고 신뢰하는데 길들여져 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궁색과 결핍감과 또한 소외감의 두려움을 의식합니다. 그럴수록 아무렇지 않은 듯 할 뿐이니 위선까지 주렁주렁 합니다. 그것들은 나를 한 걸음 또 한 걸음 죽음의 병색으로 바꾸어 갑니다.

주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욕구 불만과 자기중심적 태도에 갇혀 살게 하는 귀머거리 벙어리 냉가슴을 풀어주십시오. 닫아 걸어 갇힌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당신의 기운을 함께 마시게 해주십시오. 긍휼히 여겨주소서.

창조와 생명, 사랑과 치유의 주 예수님, 저는 너무나 완고하여 하늘을 째는 청천벽력으로도 제 귀와 입과 마음을 열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당신의 손길과 “에파타!” 하시는 숨결이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내 영혼이 당신의 발치에서 얻은 영감에 따라 당신의 진리와 선을 이웃과 나누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9월 13일 / 연중 제24주일 (마르 8,27-35)

베드로의 신앙고백


내가 누군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다. 나는 그 분의 제자라고 여기고 있었으나 그 분은 내가 당신 일에 초치는 짓이나 말아줬으면 하신다. 그래서 내가 여쭈었다. 스승 예수님, 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던가요? 그 분께서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종종 너를 칭찬하는데 너의 껍데기의 무늬 때문이다. 들여다보이는 속과 행실은 내 일의 훼방꾼 노릇을 많이 해.” 어째 그렇습니까? “나는 아버지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만을 생각하는데, 너는 내가 보냈고 내 제자라 자칭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방식만 고집 하지. 그게 내 뜻인 양 말이나 말던가.”

주 예수님, 설사 그렇더라도 저는 당신의 제자임을 알아주십시오. 능력으로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당신의 제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가 당신의 일을 그르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목에서 당신과 동업하고 있다는 의식을 매순간 잊지 않으려 애씀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주 예수님, 종종 사탄이 제 주위를 어슬렁거릴 때 추상같이 꾸짖어 추방시켜 주십시오. 비록 제가 망령 든 죄를 지을지라도 저는 땅 끝까지 당신의 제자임이 분명합니다.
 

9월 20일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나를 따르려면


박해와 순교의 시대가 차라리 좋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오로지 하나의 믿음에 마음을 고정할 수 있었다. 신자냐 아니냐? 흑백이 분명하여 대답도 하나뿐이었다. 모든 신앙과 생의 교훈은 상선벌악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도덕과 가치의 추구가 본성의 욕구보다 월등했다. 일자무식도 정의와 정조를 지키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 시대에서 절대 진리의 발견이란 분명한 영생의 길이요 생명이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 예수님, 우리 시대 당신을 따르는 것은 왜 이다지도 힘겹고 혼란스럽기만 합니까? 흑백 사이의 회색이 너무 가득합니다. 진실이라 믿고 보면 거짓이었고 함께 심판하고 돌을 던지고 나면 진실이 나타납니다. 무엇이 나와 시대의 십자가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신앙보다도 내 생각의 실행, 감당해야 할 의무감과 두려움이 십자가보다 더 무겁습니다.

“너의 십자가를 일러줄까? 네 존재의 모든 것, 태생과 관습과 처한 환경, 역사와 삶의 그림자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삶의 검은 그림자다. 모든 것은 창조의 빛을 받아 존재하기 때문에 그림자가 따르고 그것이 살아있음의 징표다.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 심지어 평화와 행복한 이유까지도 그림자가 없다면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자기 십자가를 모르거나 외면할 수는 있어도 십자가 없는 생은 없다. 하늘의 그림자가 물상(物象)의 삶이다. 물상과 삶의 그림자가 십자가이고, 형체 없는 그림자였기에 부활이었다.”
 

9월 27일 / 연중 제26주일, 한가위 (루카 12,15-21)

욕심을 버리고


삶의 이면이 십자가였듯이 생명과 죽음도 한 쌍이니 나는 다만 그것을 존재케 하는 위대하신 분의 숨결을 영접할 뿐이다. 영혼의 뿌리는 창조의 숨결에 있고 육신의 뿌리는 조상님들의 역사에 있다. 이것이 지금 존재하는 ‘나’이니 보이는 것 너머의 영속을 바라보고 준비함이 백발의 삶이다.

예순 여섯, 나이 값 못하고 사는 게 몹시 부끄럽지만 그래도 신앙으로 얻은 깨우침의 편력들에 감사한다. 고전의 절구로 말하자면, ‘인명재천(人命之在天)’,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천유일존(人唯天尊 不如 天唯一尊), 그리고 ‘적지(適止)’이다. 천륜을 따름에 겸손하고 좋은 때에 물러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느님, 조개껍질 하나를 소중히 챙기는 아가의 손길처럼 작은 깨침들을 여생의 길잡이로 삼게 해주십시오. 저는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게 남다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제 젊은 날의 모든 욕심은 부질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착한 죽음을 맞고 싶은 욕심을 당신의 은혜로 채워주옵소서. 매일 밤 내 몸에 뿌리는 성수의 정화로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십시오. 소유욕을 버리고는 다른 욕심에 묶이지 않으며 아집의 돌마음을 유약케 하시고 마침내 만사여여로 죽음을 영접케 하소서.


박기호 신부 / 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마을 대표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