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No touch! 휴가 24시간을 준다면]
우리 협동조합에는 HBM협동조합연구소가 있다. 이곳에 에스파냐 몬드라곤 대학에서 작년에 파견 나온 마틴 교수가 있다. 마틴은 해마다 한 달씩 여름휴가를 쓴다. 연구소 1년차 때 실무자가 8월에 강의나 행사를 잡았는데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8월은 휴가 기간이니 강의나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도 며칠만 양보할 수 없느냐 부탁하니 이미 연초에 여름휴가 계획을 잡아 놓아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과 부활절 기간에도 열흘 이상 휴가를 써야 한단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부활절 휴가는 못 챙기니 슬프다고 했다. 성당에도 가지 않으면서 말이다.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마틴의 생각은 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차이가 많다. 휴가 때 뭐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고 한다. 책 읽고, 영화 보고, 충분히 빈둥거린단다.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휴가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쉬는 것'이란다. 한국 사회에서 쉰다고 할 때 두 장면이 떠오른다. 먼저, 정신없이 일하다 정신 좀 차리려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장면이다. 다른 한 장면은 그냥 푹 쉬는 것이다.
“나 요즘 쉬고 있어.” 하면 실직이 떠오른다.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휴식을 휴식답지 못하게 한다. 충분히 쉬면서 일하는 문화를 바라지도 않는 분위기다. 휴식한다는 것은 그나마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휴식은 뭔 휴식인가 하는 것이다. 줄곧 쉬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쉼이 별 의미가 없다. 쉼은 무언가 열심히 한 뒤, 잠시 머물며 다음을 위해 재충전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활동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쉼이다. 잘 쉬어야 더 잘 일할 수 있다. 그래서 몇몇 혁신적인 기업이나 집단에서는 일부러 쉬게 하고 놀린다. 그래야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 지속되니까. 문제는 요즘 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실업, 100세 시대의 조기 은퇴자들, 조기에 은퇴하지 않았더라도 한참 일할 수 있는 베테랑의 무직 상태, 경력단절 여성,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알바 인생에게 쉼이란 참 부질없는 이야기다. 하느님도 엿새 동안은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하루 쉬셨다는데... 사람은 일을 통해 재미와 존재감을 느낀다. 일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가치로 나아간다. 그 여정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낀다. 일을 통해 성취하고 형성한 무언가가 또 다른 '나'다. 쉼은 일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나를 바라보며 즐기는 시간이다. 그 즐거움을 누리는 쉼은 행복감을 느끼고 존재감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런 일자리가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은 쉼을 누릴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한 정도도 아니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
쉬면서 내가 한 일을 바라보고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려면 일거리가 좋아야 한다. 노예적 노동이나 기계적 노동이 되지 않으려면 그 일이 집단이나 사회에 가치가 있어야 한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돌을 쪼고 있는 두 석공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한 석공은 그냥 벽돌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다른 한 석공은 거룩한 성당을 짓기 위해 중요한 부분의 벽돌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혹은 주변에 어떠한 의미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손에 피멍이 들지만 벽돌을 쪼면서 아름답고 거룩한 성당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상상의 시간이 기쁘게 일하게 하는 휴식이겠다.
내게 24시간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내가 하는 일이 가족과 주변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상상하는 시간을 가지겠다. 그 의미와 가치는 좋은 일자리와 일감을 만들어 사람들이 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잠시 일의 가치를 느끼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다. 그러니 24시간이면 뜻밖에도 너무 긴 휴식이다.
문성환 / 해피브릿지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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