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고통은 왜?]
연말과 연초 두 번에 걸쳐 오체투지를 했다. 1차 오체투지 행진은 기륭전자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섰다. 50일간의 공장점거 농성, 구속, 세 번의 고공농성, 94일에 이르는 집단무기한 단식, 국회 원내대표실 점거, 삭발, 3보 1배 등 ‘죽는 것만 빼놓고’ 다 해보았다는 10여년에 걸친 정규직화 투쟁의 끝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측은 공장부지를 재개발하고, 신사옥을 팔고, 중국공장을 위장 매각하는 과정에서 1000억대의 회사를 6000만원자리로 거덜내놨고, 급기야 밤도망을 쳤다. 그리고 이런 사례가 기륭전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960만 비정규직이 있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이런 ‘고통’이 뒤따랐다. 이 모든 게 ‘비정규직 법제도 합법화’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춥고 외로운 길이었다. 눈이 녹으며 온갖 오물이 섞인 차가운 물들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왔다. 구토가 날 것처럼 힘든 길이었다. 그 길을 5일동안 지렁이들처럼 기어 국회와 청와대로 향했다. 한국사회 고통의 바닥이 어떠한지를 함께 보자는 행진이었다. 이 바닥에서 한국사회 민주주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간절한 소리없는 외침이었다. 느리지만 온몸이 비수나 화살촉이 되어 평범한 이들의 고통을 먹고사는 이 구조의 상층부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눈물겨운 결의였다.

현대인들의 고통의 뿌리는 다양할 수 있다. 유한한 존재가 갖게 되는 근원적인 고통에서부터, 생로병사에서 오는 거부할 수 없는 고통들 등. 하지만 현대인들이 갖게 되는 수많은 고통의 뿌리들은 인위적이고, 사회구조적인 것들로 실제 치유가 가능한 것들이다. 일례로 작년 신문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당시 평범한 한국 서민들의 가계부채가 750조 수준이었는데, 작년 2014년엔 1050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한국 대표 재벌자본들의 사내유보금은 800조 가까이로 늘었다고 한다. 한국의 서민들은 6년여 동안 죽어라고 일해 350조의 빚만 더 늘린 셈이다.
현대판 노예제에 다름없는 960만 비정규직들은 어떤 미래도 없이 일상이 세월호를 덮친 그 고통의 바다와 다를 바 없다. 수많은 현대의 고통들이 이렇게 무한한 자본의 이윤만을 위한 독점 체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사회적 가치들이 골고루 나눠질 수만 있다 해도, 우리 사회의 고통의 그늘들은 많은 부분 걷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근원적인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고통은 늘 반복될 것이고, 더 커지고 넓어질 것이다. 더 흉폭해지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이제 그만 끝내자고,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등 가장 낮은 곳에 있던 해고노동자들이 먼저 새로운 삶을 위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그 길에 함께 하자.
송경동/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