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42명 공동 소송

경찰서 유치장 개방형 화장실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피해자들이 승소했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하헌우 판사(민사25단독)는 “(개방형 화장실 사용이)인간으로서 수치심과 당혹감, 굴욕감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이러한 불쾌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가급적 용변을 억제하는 등 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가능성도 크며, 아울러 다른 유치인이 용변을 보는 경우에도 같은 공간에 노출되어 불쾌감과 역겨움을 느꼈을 것임은 일반인의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품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인격권의 침해에 해당한다. 국가가 피해자 42명에게 각각 위자료 1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2001년 현재의 '인격권 침해' 판결에도 경찰의 개선 노력이 부족한 가운데 2013년 3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제기됐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한미FTA 시위, 2010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집회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0년 4대강 반대 시위, 2011년과 2012년 강원도 골프장 반대 활동 등 15개 사안으로 연행됐던 42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소송 대상 경찰서는 서울청 산하 12곳을 비롯한 전국 21곳이다.

피해자들은 유치장에 수용된 당시, 유치실 구석에 설치된 화장실이 밀폐형이 아니라 여닫이문만 있는 개방형임을 확인하고, 용변을 보는 상황이 다른 유치인과 경찰에게도 노출돼 수치심을 느꼈다는 입장이다. 또 이들은 유치실을 향해 설치된 CCTV로 용변을 보는 모습이 감시, 녹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 결과에 대해 천주교인권위원회, 환경운동연합 등 5개 관련 단체는 논평을 내고, “경찰은 판결의 취지에 따라 즉시 개방형 화장실을 밀폐형으로 바꾸고 불필요한 CCTV를 철거하는 등 유치장 환경 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 부산 서부경찰서 유치장 화장실. 실제 수용되었던 원고 중 한 명이 기억에 따라 그린 것이다. (사진 제공 =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 결정과 스스로 세운 방침조차 지키지 않고, 개방형 화장실을 유지하고 있는 경찰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또 판결 중 특히 화장실 개선에 대한 경찰의 예산 부족에 대해 “헌재 결정과 경찰청예규 개정 이후에도 시설 개선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단지 예산상 문제가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 “예산 부족이 아니라 경찰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들은 유치장 CCTV 감시에 대해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서 객관적으로 그 정당성을 잃은 위법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분은 납득할 수 없다며, “대다수 경찰서의 유치장 CCTV는 자살 우려 등을 따지지 않고 유치실 내부의 모든 유치인을 감시하도록 설치돼, 자살 등의 큰 우려가 있을 때로 제한하는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치장 화장실 설치와 관리에 대해서는 이미 2001년 7월 헌법재판소가 “인격권 침해”로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일반적으로 유치인들의 동태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감시가 가능하면서도 덜 개방적인 다른 구조의 시설 설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런 헌재의 결정에 따라 경찰청은 2006년 1미터 높이의 차폐막만 있던 개방형 화장실을 밀폐형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지만, 6년 뒤인 2012년까지도 유치장이 있는 112개 경찰서 화장실 중 42개만이 밀폐형으로 개선됐다. 모든 화장실이 밀폐형으로 개선된 경찰서는 2012년 당시 전국 6곳이었다. 이번 소송에서 경찰은 2013년 12.5퍼센트의 화장실을 개선했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모든 화장실을 개선하는 데는 10여 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헌재 판결뿐 아니라 유치장 화장실 설치와 관련해서는 이미 경찰청 예규 중 ‘유치장 설계 표준규칙’에 “화장실 벽은 천정까지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편, 유치장 화장실을 맡고 있는 경찰청 수사기획과 관계자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아직 판결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판결문을 받고 난 뒤, 검토해 방침을 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2001년 헌재의 판결과 경찰 내부 규정에 따른 개선 절차와 진행 정도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번 소송에 앞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도 유치장 내 개방형 화장실 개선 권고를 낸 바 있다. 국가인권위는 2013년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연행돼 유치장에 입감됐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양운기 수사가 제기한 인권침해 진정에 따라 조사한 뒤, 2014년 8월 1일,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 화장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이번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이 기금은 인권변호사였던 유현석 변호사(사도요한)의 뜻을 기리고자 5주기인 2009년 유족이 낸 기부금으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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