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복음 묵상-김유철]

맑고 향기롭게
2월1일 연중 4주일 마르 1,21ㄴ-28
우리가 오래도록 마음속에 기억하는 분들은 한마디로 ‘맑고 향기롭게’ 세상에 머물렀던 분들입니다. 계급을 나타내는 의상衣裳에서 오는 맑고 향기로움은 결코 없습니다. 세상에 머무는 동안의 소임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권위’에 대한 것을 다시 생각하는 예수님의 몸짓과 말씀을 듣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율법학자들 앞에서 보잘것없는 목수의 아들이며 시골출신의 젊은이가 더러운 영이라 표현되는 환자를 치유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치유사실보다는 예수님의 몸짓과 말씀에서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사람들의 가슴에 그런 느낌을 전해 주었던 것일까요? 해방이후 숱한 민족적 굴곡 속에서 사람들에게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느낀 적이 있을까요? 지금 여기서 맑고 향기롭게 사는 것이 예수의 현재화입니다.
일과
2월 8일 연중 5주일 마르 1,29-39
여러분의 일과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일과라면 삶은 팍팍할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생각하는 대로와 사는 대로가 조화를 이룰 필요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일상의 일과를 아름답게 채우고 살아야 합니다. 수도원의 일과표는 참으로 단순합니다. 그러나 수도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안고 있는 단순함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뜻은 그런 단순함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일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웃들과 더불어 지내는 그 분의 일과 역시 단순합니다. 영화 <쿼바디스>에 나오는 종교 상인들은 치유의 기적이니 복음전도니 하는 말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겠지만 복음사가는 그저 그 분의 일과를 담담히 전합니다. 아픈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어 위로하여 주시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마음 아파하는 것 그리고 돌아가 혼자 기도하는 것. 그것이 그분 일상의 일과였듯이. 우리도.
손가락
2월 15일 연중 6주일 마르 1,40-45
선가에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끝을 쳐다보나”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손끝에서 달의 진면목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복음의 손가락은 늘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합니다. 내어주고 베풀어주며 용서하는 하느님을 예수님은 거듭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깨달음을 실천합니다. 오늘날에도 천형이라 불리는 나병에 대한 인식은 이천 년 전 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불결한 사람이며 죄인으로 취급받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회복시켰습니다. 오늘 복음처럼 치유된 사람은 단순히 질병에서 완쾌된 것이 아니라 공민권을 회복하고 무엇보다 성전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의 회복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가장 큰 질병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관계의 장벽이 가장 큰 질병입니다. 종교, 사상, 직업, 재산으로 쌓아놓은 높은 장벽 너머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길이 있습니다.
본래진면목
2월 18일 재의 수요일 마태 6,1-6, 16-18
수도원에 하루 묵기로 하고 방에 들어서자 침대 곁에 책상이 있었습니다. 겨울 볕이지만 온기서린 햇살이 비친 책상 위에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무심히 성경을 열어보니 지혜서가 펼쳐졌습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지혜6.10)라는 말씀에 다다르니 머리 위로 재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재의 수요일은 전년도 성지주일에 사용한 성지가지의 재를 머리에 얹습니다. 우리는 그 날 사람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감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 흙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숨결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흙속에 담긴 것, 지금 나의 전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사랑의 재를 받으십시오.
Wind of Change!
2월 22일 사순 1주일 마르 1,12-15
교종 프란치스코는 지난 성탄절을 앞두고 교황청에 일하는 모든 성직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성탄선물(?)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교황청의 성직자가 앓고 있는 열다섯 가지의 질병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교종은 목자이며 동시에 의사였습니다. “불멸의 존재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병, 일만 열심히 하는 병, 영적∙정신적으로 경직된 병, 과도한 계획으로 자율성을 옥죄는 병, 협업 없이 일하는 병, 신과의 만남을 잊은 영적치매, 출세가 목표가 되는 병, 존재론적 정신분열증, 가십에 몰두하는 병, 보스에 대한 지나친 찬미병, 다른 이에게 무관심한 병, 겸손∙열정∙행복∙기쁨 없는 장례식에 간 듯한 얼굴, 물질적 욕망병, 전체보다 이너서클을 추종하는 병,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병”이 그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 나타난 사탄의 유혹이란 그런 것입니다. Wind of Change라는 음악을 들어보렵니까?
김유철/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