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란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의 깊은 속내와 생의 이면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또 한 사람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좋은 사람으로 서 있을 수도 없다. 어떤 한 사람이 좋은 민주 시민이었지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고, 가족 관계 안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웃과 타인에게는 냉정하고 박절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말, 태도와 자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그를 판단하고 평가한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최근 많은 언론 인터뷰에 등장한 문형배 판사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이고 이념적인 평가와 판단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공통된 견해와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드러난 문형배 판사의 신념과 생각, 그의 자세와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 판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과 평균 이상의 경제적 부를 추구하지 않은 삶의 방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좋은 사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좋은 신념과 좋은 품성은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자기 수련과 공부라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축조되는 것일까. 생의 여정 속에서 다양한 요소와 환경에 의해 키워지는 것일까. 한 사람이 지닌 신념과 품성은 순전히 자기 책임의 문제일까. 성장 배경과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받는 것일까. 교육과 문화를 통해 습득된 것일까. 무척 궁금하다. 한 사람의 신념과 품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결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열린 공부와 배움, 좋은 관계의 영향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환경과 교육과 문화가 그 사람의 신념과 품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사람의 주체적 내면은 단순히 외부적 요소에서 오는 영향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책임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태도다. 사람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이고 지속적인 배움과 공부를 통해 성장한다. 문형배 판사 역시 재판관으로서의 바쁜 직무 속에서도 계속 책을 읽고 성찰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알 수 있다. 읽고 공부하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변한다. 세월의 관성과 일의 익숙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배움과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타성에 사로잡히지 않고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참된 공부는 건강한 신념을 낳고, 좋은 신념은 올바른 행동과 선택을 추동한다. 좋은 사람은 건강한 신념을 통한 주체화, 내면화, 영성화가 이루어진 사람이다. 진정한 신념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물론 아무리 좋은 신념이라 할지라도 그 신념이 타자를 심판하고 혐오하고 배제하는 힘으로 작동된다면 그것은 이념일 뿐이다. 신념과 이념(이데올로기)은 구분되어야 한다.

사람은 관계의 존재다. 사람은 관계적 영향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부른다. 좋은 사람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문형배 판사에게도 김장하 선생이 있었다. 좋은 타자는 한 사람의 주체적 신념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관계의 선한 영향력은 상호적이다. 관계의 초기에는 일방적인 영향처럼 보이지만, 관계의 여정에서 영향은 서로 서로에게 미친다. 김장하 선생에게 문형배 판사는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김장하 선생 역시 문형배 판사를 보면서 좋은 배움을 얻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사람의 변화는 자율적이고 지속적이며 열린 공부와, 좋은 관계의 만남과 대화와 상호 배움으로 이루어진다. 공부와 대화와 수행이 사람을 성숙시켜 간다.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하고 있는 문형배 헌법재판관(왼쪽)과 그가 학생 시절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 김장하 선생. (사진 출처 = 헌법재판소 선고 영상과 넷플릭스 갈무리)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하고 있는 문형배 헌법재판관(왼쪽)과 그가 학생 시절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 김장하 선생. (사진 출처 = 헌법재판소 선고 영상과 넷플릭스 갈무리) 

좋은 신앙인

좋은 신앙인이란 어떤 모습일까? 단순히 성당 전례와 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이 좋은 신앙인일까. 교리적, 성경적, 신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좋은 신앙인일까. 신앙과 영성이 깊고 성숙한 사람이란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 신학적으로 건조하게 말하면, 하느님을 향한 앎을 사랑하고, 하느님 신비를 깊이 체험하려 애쓰고, 하느님의 뜻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신앙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한 사람의 신앙과 영성의 성숙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신앙과 영성의 깊이는 여러 차원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이 고백하는 신앙적 신념과 생각, 그가 보여 주는 신앙적인 자세와 태도, 그가 실천하는 복음적 삶의 방식으로 좋은 신앙인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복음적 신념과 가치를 실현하고, 한결같이 복음과 신앙의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이 시대에 얼마나 될까. 요셉의원을 세운 선우경식 선생 같은 참다운 신앙인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현대 사회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마음과 감정의 흔들림과 성취와 인정을 향한 세속 욕망의 유혹에도, 복음적 가치를 향한 신앙적 신념과 자세와 태도와 생활 방식을 꿋꿋하게 유지하는 좋은 신앙인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좋은 시민으로서, 좋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좋은 본당 신자로서 살아가는 좋은 신앙인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성사 생활, 본당 생활, 신앙 교육

성사 전례에 자주 참여하는 신앙인들은 많다. 예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활력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본당(성당) 생활에 진심인 신앙인들도 많다. 교회가 제공하는, 성경과 신앙에 관한 다양한 공부 여정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선한 지향과 선량한 태도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정직하게 오늘의 교회와 신앙인의 현실을 직시하면, 신앙이 교회의 담장 안에만 머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교회 밖 삶의 현장에서 신앙과 복음의 가치를 증거하는 신앙인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신앙적 신념과 복음적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신앙과 교리의 가르침은 중요하다. 하지만 교리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왜곡된 신앙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배제하는 태도와 행동을 신앙적 신념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신앙인들을 자주 발견한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복음적 신념과 태도를 지니고 복음화 사명 수행을 지향하면서, 겸손하고 열린 자세로 살아가는 좋은 신앙인을 오늘의 교회는 진정으로 양성하고 있는 것일까? 신앙은 좋은 사람을, 좋은 신앙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성사가 구원의 은총임을 우리는 믿는다. 성사의 집전자이든 참여자이든 성사 안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평화와 일치와 용서의 은총을 체험한다는 진실을 믿는다. 성사의 사효성을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 하지만 관성적으로 참여하는 성사 생활이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좋은 신앙인으로 변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이 시대의 본당 생활과 신앙 교육의 방식이 우리를 좋은 사람, 좋은 신앙인으로 양성하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성사에 대한 이론적 설명보다는 성사가 거행되는 현장의 실제가 어떠한지 정직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 시대 본당의 현실이 어떤지, 본당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신앙 교육의 현실이 어떠한지, 세례 이후 신앙생활의 여정에서 신앙이 어떻게 양성되고 성숙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 백성 모두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촉발하는 성사 거행,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적으로 작동하는 본당 생활, 일방적 가르침의 방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방식의 신앙 공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요청된다. 신앙인을 좋은 사람, 좋은 신앙인으로 변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례 쇄신, 시노달리타스, 자율적이고 공동체적인 신앙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면 너무 뜬금없는 결론일까.

정희완 신부

안동교구 사제.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오래 강의했고, 지금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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