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존경하는 벗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부활 8부 축제 마지막 날인 부활 제2주일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날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을 본받아 우리도 자비를 실천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 뉴욕은 하느님 자비의 손길뿐 아니라 이를 본받는 인간의 자비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미 동북부지역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3개 주는 1일 생활권으로 중국식 표현으로 말한다면 '동북3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구의 6퍼센트가 약간 넘는 3080만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18일 현재 이 지역 확진자는 약 33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1퍼센트가 넘고 사망자도 2만 명을 넘겼습니다. 이 숫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진원지 중국 확진자의 4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75만에 달하는 미국 확진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이 지역에 몰려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대비 코로나 확진자 비율 0.02퍼센트에 비하면 코로나 지옥이라는 것이 실감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공식통계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공식통계보다 최소 10배 이상 사람들이 집에서 앓거나 죽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도 독감입니다. 과거 독감들과 다른 바이러스로 전염성이 매우 높고 치료기간이 길다는 것이 다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과 면역성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볍게 앓고 무사합니다. 검사를 받지 않으면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검사를 받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나마 의사들은 미국의 코로나 진단검사 정확성을 60퍼센트 정도로 낮게 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양로원과 요양원 실태는 더욱 끔찍합니다. 며칠 전 뉴저지 앤도버의 한 요양원에서는 시신 17구가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최근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중 요양원 입소자와 직원 수는 4000여 명에 달합니다. 한인 타운인 뉴욕 퀸즈의 한 요양원에서는 최소 60명 이상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어렵고 기저질환이 많은 노인이 집단으로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AP통신>에 따르면 뉴저지 요양원에서만 471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에서 장기 요양시설 입소자와 직원 2만 1000명 이상이 감염됐으며 3800명 이상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쟁이든 역병이든 최대 희생자는 노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매일 산책하는 공원에는 봄, 여름철 노숙자들이 침낭을 뒤집어쓰고 벤치에서 노숙합니다. 그중 한 분이 지난해 어느 날 묵주를 손에 들고 걷고 있는 저를 향해 “Hello, Rosario man!"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묵주를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 뒤 가끔 만나 그와 동료들까지 낯을 익혔습니다. 딱히 도와준 것은 없지만 지나칠 때마다 ”Hi" 하고 손을 흔들어 관심을 표했습니다. 며칠 전 그의 동료와 마주쳤습니다. 그는 저를 부르더니 “쟌이 죽었다. 며칠 전 실려 갔다”고 했습니다. 보호시설에서 죽은 것입니다. “왜, 어쩌다?” 하고 물으니 “코로난지 뭔지가 데려갔어”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사람이 죽어 계속 머물기가 무서워 이른 철이지만 공원에서 다시 노숙한다고 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안타깝고 슬플 뿐입니다. 

저와 미 동부에서 ‘진실 화해 평화’ 사회운동을 함께 하시는 여성 분이 하필 코로나 집중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환갑 가까운 연세라 걱정이 되어 저녁에 안부전화를 했습니다. 매일 시신이 10여 구씩 나간다고 합니다. 저도 모르게 “웬만하면 쉴 수 없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많은 간호사가 병에 걸려 못 나오는 상황에서 ”간호사가 돼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어떻게 쉴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그분 대답이 저의 양심을 후볐습니다. 이분들이 정말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서 실천하시는 분들입니다. 한쪽에서는 절망이 다른 한쪽에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구현되는 뉴욕입니다. 부디 5월말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코로나 지옥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벗님들도 미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4월19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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