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일주일 전에는 뉴욕에 때 아닌 눈이 내리더니 2-3일 전부터는 한여름입니다. 거리 두기는 여전하지만 해변에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하고 아이들은 모래성 쌓고 물장난이 한창입니다. 그러나 뉴욕은 아직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한 달 전보다는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루 700명에 달했던 뉴욕주 사망자도 요즘은 130명대로 줄었습니다. 정상생활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뉴욕에서도 청년들이 곳곳에서 성조기 흔들면서 트럼프 지지와 주지사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광화문에서 보았던 태극기부대와 비슷한 광경입니다. 한국은 노년층, 이곳은 문신투성이의 젊은 층이라는 것이 다릅니다. 5월18일 뉴욕주 코로나 확진자는 35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2만 3000명에 달합니다. 제가 사는 롱아일랜드 2개 카운티 인구는 대구보다 약간 많은 270만 명입니다. 이곳에서만 8만 명 가까운 확진자와 4500명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지금도 매일 수십 명씩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 같으면 사회활동 재개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 상황입니다. 주지사가 'Re open'을 경계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설상가상 뉴욕주에 코로나바이러스 어린이 괴질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괴질을 앓는 어린이들은 고열과 피부발진, 심한 경우 심장동맥 염증까지 동반한 '독성 쇼크'(toxic shock)도 나타납니다. 뉴욕주는 어린이 괴질환자 백여 명 중 60퍼센트가 코로나 양성반응, 40퍼센트도 코로나 항체반응으로 나타나 100퍼센트 코로나 관련 질병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어린이 환자 절반 가까이는 중환자입니다. 어린이 괴질 또한 전염력이 강해 자식을 둔 부모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괴질은 이미 미국 15개 주와 유럽 6개국에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대비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지금껏 어린이들은 코로나에 비교적 안전하다는 속설이 무너진 것입니다. 뉴욕이 코로나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외칩니다. 경제도 살리고 생명도 살리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때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인동포들의 ‘더불어 살기’ 운동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복지의 사각지대로 굶을 수밖에 없는 일용직 서류미비 체류자들을 위한 도움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작은 단체나 개인들이 알음알음 모금운동을 펴 식품을 사서 배달해 주기도 합니다. 또한 한인2세들이 설립한 자선재단 ‘내일재단’은 뉴욕 뉴저지 일대 한인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병원과 요양시설에 약 2만 벌 방호복을 기부했습니다. 전량 모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50만 달러에 해당됩니다. 2세 젊은이들이 국위선양까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앞서 뉴욕총영사관과 한인 관련 재단들과 한인기업과 지역단체들도 수십만 불에 달하는 마스크와 방호복 등 의료용품을 뉴욕과 뉴저지의 병원과 요양원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이민사회에서 샘솟는 온정들입니다.

열흘 전에는 지난 4월 중순 세상을 떠난 안젤라 할머니의 뒤늦은 묘지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그분 생전 발자취에 비해 너무 단출했습니다. 장례미사는 물론 하관식 주례사제도 없는 가운데 가족 친지 10여 명만 지켜보았습니다. 하관도 인부들이 작업을 끝낼 때까지 참석자들은 먼발치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상주인 큰아들은 식사도 대접할 수 없는 상황이 못내 아쉬운 듯 코로나가 해결되면 성대하게 추모의 밤을 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행복한 편입니다. 관도 장지도 없어 시체가방에 담겨 매장을 기다리는 사망자도 무수합니다. 넓은 가톨릭 묘역에는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방금 매장한 흙더미가 사방에 쌓여 있습니다. 인생이 갑자기 허무해지는 느낌입니다. 너무 주위에서 많은 분이 사망하다 보니 갑자기 저에게도 죽음이 엄습해 오는 느낌에 요즘은 죽음에 대한 묵상을 자주하게 됩니다. 미지의 사후세계보다는 남은 생을 정말 부끄러움 없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미국에 “힘든 시간은 오래 가지 않고 강한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당장은 손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코로나 지옥을 견디어 낼 것입니다. 

벗님 여러분 밝은 소식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5월18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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