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2011년 3월 11일을 기억한다. 당시 CNN 뉴스 속보로 본 일본 동북부 대지진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진도 9.0, 태평양에서 시작된 지진은 40분 정도 지나 약 15미터의 거대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해안 마을을 덮쳤다. 2만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냈지만 비극은 이제 시작이었다. 다음 날 3월 12일 이어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과 오염.... 그리고 8년이 지났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상황은 어떨까. 가장 큰 문제는 방사성 오염수다. 사고 핵발전소로 흘러드는 지하수와 빗물, 냉각수 등 오염수는 약 108만 톤. 이를 담아 두는 900여 개 탱크로 핵발전소 부지는 물론 산을 깎아 만든 부지까지 가득 찼다.(2018년 10월 1일 기준)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벽(차수벽)을 만들고, 정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정화보다는 다만 막아 놓고 있는 모양새다. 녹아 버린 핵연료를 완전히 빼낼 때까지 도쿄 전력은 140만 톤의 오염수 보관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마저 2020년까지다. 2021년 1월 이후 계획은 없다. 결국 오염수의 태평양 해양 유출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장정욱 교수(일본 마쓰야마대학)의 이야기다.

방사성 오염수 탱크로 가득찬 후쿠시마 핵발전소 모습. (사진 출처 = 장정욱 교수가 만든 PPT 스캔)

2015년 3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일본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인간은 신이 정해 놓은 자연의 규칙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핵발전소를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에 비유했다. 신과 같아지려 하늘에 오르는 탑을 만든 인간의 오만이 결국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왔듯이 우리 시대 바벨탑은 바로 핵발전소라는 교종의 경고였다.

한국 교회도 이미 2013년 11월 핵 기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발표했다. 교회 구성원인 평신도, 사제, 수도자는 핵 기술의 영향 아래 놓인 현실에서 탈핵, 비핵의 길을 가려면 대안이 필요하고, 교회는 탈핵을 넘어 ‘대안’을 찾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57항) 교회 스스로 관련 시설에 자연에너지 설비를 만들고 전국, 지역, 교구, 본당, 가정, 개인 차원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생산하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각계각층 구성원들에게도 말한다. 정부는 국가주도형 핵발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하고,(159항) 기업은 에너지의 60퍼센트나 투입되는 산업에 적은 양의 에너지를 투입하고 같은 양의 산출을 찾아내는 가장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구조조정의 길을 찾아야 한다.(160항) 언론은 핵 정책의 홍보만이 아닌 핵의 위험과 사고 피해를 알려야 하고,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와 관련해 마치 그것이 다른 나라의 사고인 것처럼만 알리고,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관계없는 일처럼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161항)

2018년 3.11후쿠시마 행사 퍼레이드 모습. ⓒ맹주형

중앙의 몇몇 사람들을 위해 대량으로 생산해 싼값으로 소비하는 에너지 구조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값싼 전기는 결국 다수의 경제적 약자를 에너지 빈민으로 내몰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생산에 관심을 갖고 지지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에 다 있다. 그런데 생명존중을 교리의 핵심으로 여기는 교회가 어찌된 일인지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생명과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핵으로부터 근본적 방향 전환도 없이 살고 있다. 탈핵과 비핵을 이야기하면 -교회의 가르침인데도- 정치적 발언이라 혼내고, 비난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3월 9일(토) 후쿠시마 8주기 행사가 열린다. (이미지 출처 = 311준비위원회)

이 난국의 타개는 결국 신자 시민의 힘이다. 매일매일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기도하고, 착한 에너지를 쓰고, 걷는 시민들의 실천과 연대밖엔 답이 없다. 오는 3월 9일(토) 후쿠시마 핵발전소 8주기를 맞아 핵 없는 세상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가로질러’ 탈핵을 외치는 '311 나비 퍼레이드'가 국회와 광화문에서 열린다. 참여와 연대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를 좋은 기회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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