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일 탈핵 평화순례

핵이 없어야 진정한 평화와 생명 존중 세상을 이룬다는 믿음으로 핵발전소 관련 지역을 돌며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한일 가톨릭 신자들의 ‘탈핵 평화순례’가 13-16일 열렸다.

이들은 한빛 핵발전소가 있는 전남 영광을 시작으로 에너지자립마을인 전북 부안의 등용마을,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순례하고, 성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를 거쳐 서울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한일 참가자들은 영광 성당에 도착해 먼저 순례의 시작을 알리는 미사를 봉헌했다.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와 나고야 교구장 마쓰우라 고로 주교가 집전한 미사에는 영광과 광주 지역의 신자와 활동가들까지 함께했다.

강우일 주교는 강론에서 지난해 후쿠시마 인근 지역을 둘러보며 “충격적인 장면” 두 가지를 봤다면서, 방사능에 오염된 흙이 담긴 1톤짜리 포대가 2200만 개가 나왔고 여기저기에 “시커먼 언덕처럼 쌓여 있는 포대를 보면서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고 뒤 주인을 잃고 떠돌던 소들이 “고준위 방사능에 피폭되어 털이 빠지고 피부가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강 주교는 고리, 한빛 핵발전소 점검 과정에서 발견된 철판 부식과 콘크리트의 구멍을 언급하며 “고준위 방사능이 언제라도 뿜어 나올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비용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 반해 신재생에너지 생산 단가는 기술이 좋아져 떨어지고 있어 “(핵발전을) 지금 그만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인간의 얄팍한 지식으로 제어가 안 되는 위험한 장난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회주교회의 위원이자 난민과 이재민을 위한 사목활동을 하는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축사에서 “핵은 국가를 넘어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한국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활동하는 힘이 일본인들에게도 자극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마쓰우라 주교는 앞서 강 주교가 언급한 오염토를 거둬 내는 작업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데 일본인들은 방호복을 입지만 외국인들은 무방비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 마쓰우라 주교는 “외국인 노동자는 베트남 사람”이며 “그가 노동조합에 고발하면서 일본 사회에 알려졌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고로 주교는 이어 “정부가 돈을 하청업자에게 주면 하청업자가 노동자를 모집하는데, 하청업자 외에도 돈을 떼어 가는 이들이 여럿이라 정작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아주 적은 돈밖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오염된 흙뿐 아니라 오염수도 계속 나오는데 일본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오염수의 (정제를 해도 없어지지 않는) 삼중수소라는 무서운 성분을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한일 양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영광성당에서 탈핵 평화순례를 시작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김수나 기자

미사를 마친 뒤 순례단은 영광군 홍농읍에 있는 한빛 핵발전소를 둘러봤다. 농사를 지으며 20년 넘게 영광에서 탈핵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용국 대외협력실장(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은 한빛 3, 4호기 건설 당시 부실공사에 대한 제보가 잇따랐고 연인원 10만 명이 모여 끈질기게 핵발전소 반대를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로 밝혀진 원자로 건물 내 38센티미터-1미터 7센티미터에 이르는 철판의 구멍들과 녹을 방지하기 위해 바른 구리스가 다량 새어 나온 것, 콘크리트의 깨짐 등이 부실공사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만약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고 지금껏 사고가 안 난 것은 천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진 탈핵간담회에서는 김용국 씨가 영광 지역의 탈핵운동의 역사를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3, 4호기 건설 반대투쟁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황대권 대표(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가 2011년 후쿠시마 폭발사고를 기점으로 활발하게 펼쳐지는 영광의 탈핵운동을 소개했다.

황 대표는 영광에서는 “반핵, 탈핵”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면서 “(그) 용어를 쓰면, 중립이나 찬핵인 주민을 배제하고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도 포괄할 수 있는 명칭으로 핵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거부할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안전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탈핵이지만 주민과 함께한다는 의미”라면서 이름 덕분에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5개 지역에서 영광이 가장 강고한 주민조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가장 중요한 사안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소를 반대하는 것”이며 그 이유로 “임시 저장시설을 짓게 허용하면 정부의 핵확산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탈핵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저장소를 짓지 못하게 압박해 조기 탈핵 로드맵을 국민에게 제시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가자인 야나가와 도모키 씨(예수회 도쿄 사회센터)는 “일본은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맞았고, 후쿠시마 사고도 있다 보니 핵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느꼈다”면서 “일본이나 한국 모두 핵을 가진 이상 서로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탈핵간담회를 마친 뒤 'Laudato Si'노래를 함께 부르며 순례단이 음악에 맞춰 몸짓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순례단은 핵발전의 위험성이 크다고 걱정하는 만큼 대안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전북 부안의 등용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집집마다 태양열발전기, 태양열온수기로 마을에서 쓰이는 전기량을 자체 생산하고 있어 에너지자립마을로 불린다.

이곳에서 사는 문규현 신부는 “2004년 부안군 위도 핵폐기장 반대운동부터 탈핵운동은 주민들의 뜻”이 되었고 “그 뜻을 이어받아 이곳에 햇빛발전소를 세워” 부안의 에너지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문 신부는 “우주 모든 생명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에 “생태운동이야말로 우리의 신앙고백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우주 만물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자”고 강조했다.

등용마을을 거쳐 순례단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서 ‘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한일반핵활동가 전국 순례단’, ‘핵재처리 실험 저지 30킬로미터 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핵 발전 당장 중단”과 원자력연구원이 “탈핵 시대에 맞는 연구기관으로 신설”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핵 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그 어떤 수습도, 처리도 할 수 없다”면서 연구원은 “연구원이라는 포장 너머 핵폐기장이자 노후한 원자로가 있는 핵시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연구원 반경 1.5킬로미터 안에 3만 8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도 “27년 동안 몰래 1699봉의 고준위핵폐기물”을 반입하고 “핵재처리 실험”, “핵폐기물 불법 매립과 무단 소각, 방류”를 해 왔다면서 이에 대해 원자력 연구원에 “명백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과 “자본의 이익이 아닌 생명과 윤리의식에 기반한 새로운 연구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에너지자립마을인 전남 부안 등용마을에서 문규현 신부가 순례단에게 태양광 발전설비에 대해 설명했다. ⓒ김수나 기자

한편 16일에는 서울에서 일본의 원자력 행정을 되묻는 종교인 모임의 나이토 신고 목사의 ‘탈핵과 미래의 대처’, 에너지전환연구소 이성호 박사의 ‘재생에너지가능성과 추진방향’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한일 탈핵 평화순례’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돼, 2016년부터는 일본 주교회의 정평위와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가 공동으로 주관해 매해 한일 양국을 번갈아 가며 열렸다.

2016년에는 한국이 주관해 부산을 시작으로 동해안에 있는 핵발전소들을 순례하고, 2017년에는 일본이 주관해 히로시마에서 열린 바 있다.

대전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연구원 앞 기자회견 뒤, 동래학춤 명인 박소산 씨가 탈핵 평화를 기원하는 학춤을 공연했다. ⓒ김수나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