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텍 농성, 426일 만에 노사 합의
파인텍 노사가 11일 오전 극적으로 합의했다.
홍기탁, 박준호 씨가 고공농성한 지 426일, 차광호 지회장 단식 33일, 나승구 신부 등의 연대 단식 24일 만이다.
오늘 합의로 426일 동안 굴뚝에 있던 홍기탁, 박준호 씨가 내려왔고 단식 농성자들도 단식을 중단하고 건강회복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와 파인텍 대표를 맡고 있는 강민표 전무, 차광호 지회장은 고공농성 411일 만인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종교계 중재로 협상을 시작했다. 1월 3일 4차 협상까지 난항을 겪었지만, 1월 9일부터 시작된 협상으로 이틀 만인 11일 오전 7시쯤 합의점을 찾았다.
이번 합의로 그간 해고 상태이던 차광호 지회장, 홍기탁, 박준호, 김옥배, 조정기 씨 5명은 6월 말까지 유급 휴가 기간을 갖고 7월 1일로 업무에 복귀한다. 사측은 2019년 1월 1일부터 3년간 이들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했다.
회사의 정상적 운영 및 책임 경영을 위해 (주)파인텍의 대표이사는 강민표 전무가 아닌, 모회사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개인 자격으로 맡는다. 노조 측은 지난 협상에서 사측의 무책임한 경영과 노사합의 불이행을 다시 겪을 수 없다며 김세권 대표의 책임 명시를 요구한 바 있다.
공장의 소재지는 평택 이남 지역으로 하고, 생산 품목은 현재 생산품과 스타플렉스 물량 중 가능한 품목으로 하되, 신규 품목을 추가하도록 했으며, 원활한 생산 활동을 위해 적정 인원을 고용하기로 했다.
노사 단체협약과 관련해서 사측이 파인텍지회를 교섭단체로 인정하고,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1000원을 더한 금액으로, 노동시간은 주 40시간, 최대 52시간이며, 추가 연장은 합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또 노조 사무실 제공과 상급단체 회의 시간을 포함한 연간 500시간의 타임오프(근무시간으로 인정)를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노사는 민형사상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번 교섭의 전 과정에 배석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노사관계가 첨예하게 이익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같은 사안을 두고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른 것을 느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정 신부는 11일 “긴 시간 동안 미움과 불신이 너무나 크게 자리하고 있어 똑같은 단어 표현도 서로 오해하거나 의심하는 부분들이 많아 안타까웠다”면서 “앞으로 갈등이 치유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그는 이어 “미움과 분노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이 안 될 것”이고 “서로가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이제는 서로 좋은 몫이 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굴뚝에서 내려온 홍기탁 씨는 “20년 넘게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그걸 지키는 게 이 사회에서 왜 이리 힘든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배지만 달고 돌아다니는 국회의원, 재벌들 목구멍만 닦고 있는 권력기구”라며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고 외쳤다.
이어 박준호 씨는 연대자들과 밑에서 함께 싸워 준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씨에게 고맙다면서 “다시 시작이다. 현장으로 돌아가도 연대로써 함께해 준 동지들의 마음을 받아 안고 올곧게 나가겠다”고 말했다.
차광호 지회장은 많이 힘들고 참담했지만 연대자들이 있어 두 사람이 내려올 수 있었다면서 “이 세상에 비정규직, 영세노동자들이 쫓겨나도, 탄압 받아도 아프다 말 한마디 못한다. 그냥 쫓겨나도 옮겨 가서 먹고 사는 쳇바퀴 같은 삶이 이어진다. 이를 바로잡는 날이 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옥배, 조정기 씨도 연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편,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파인텍 교섭 보고 및 굴뚝농성 해단식’을 열고 “스타플렉스 직접 고용이 아니라 아쉽다”면서도 “김세권 대표가 2015년 합의에 따른 고용책임을 최소한 지는 것”이며 “이번 합의서에 파인텍지회의 인정과 단체협약 체결이 포함돼 부족하지만 노동자들의 3승계 요구가 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자리에서 11일 아침 마지막 교섭까지 함께했던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김세권 대표를 찾아가 “사람을 살려야 할 것 아닌가. 사장이냐 노동자냐를 떠나 사람으로서 같이 살리자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번 합의는 “온 국민 앞에 내놓은 것이지, 김세권 사장과 차광호 노동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앞에 한 약속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단식에 함께했던 인권재단사람 박래군 소장은 “헌법에 보장된 작은 권리를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게 서글프다”면서 “오늘 합의가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파인텍 굴뚝 농성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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