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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세 탄생[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사회와연대, 46-54쪽.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성탄절 교회는 세 탄생을 기념하게 되는데 모두 다 기쁨의 원천이므로, 우리는 기뻐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장 숭고한 첫 번째 탄생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신성과 거룩한 인성을 가지신 외아드님을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두 번째 탄생은 처녀였던 마리아를 어머니로 만드시어 가장 순수하고 존경스러운 분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세 번째 탄생은 매일 매 시간 하느님께서 은총과 사랑으로 우리 영혼 안에 영적으로 주님을 태어나시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 탄생은 성탄절의 세 미사로 봉헌되는데 첫 번째 탄생 기념은 자정 미사에서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성가로 불리며 ‘영원히 계시게 될 것’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우리도 모르게 이루어진 주님의 영적 탄생이 접근할 수 없는 신성의 어둠의 신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두 번째 미사는 “오늘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는 말로 시작하는데,(이사 9,1) 이는 ‘말씀’과 하나가 되어 인간의 본성이 신성을 갖게 된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 미사는 밤에 기념되기도 하고 낮에 기념되기도 하는데 탄생의 일부는 우리가 알고 있고 일부는 우리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미사는 낮에 불려지며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는 말로 시작하는데,(이사 9,5) 이는 신비스러운 탄생이 우리 영혼 안에 매일 매 순간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깊게 바라보고 진심으로 사랑하면 알 수 있게 되지만 전력을 다하여 묵상하지 않으면 이 탄생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탄생을 통하여 하느님이 우리의 것이 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우리에게 완전히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소유물이 되었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태어나셨고 외아드님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말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의 것입니다. 주님은 어디에서나 완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 안에서 태어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탄절의 세 번째 미사로 찬양하고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떻게 우리 안에서 가장 완전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합시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영원히 탄생시키심으로써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음을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주체하시지 못하고 당신의 신성에 따라 당신을 우리에게 쏟아부으시어 당신을 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당신을 쏟아부으시는 것이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두 거룩한 사람 즉 성모님과 우리에게 쏟아부으신 후 당신을 피조물들에게 알리려고 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한 것은 하느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 본래부터 선하셨기 때문에 피조물이 모두 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거룩하게 탄생시키신 분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내면과 당신의 지혜를 보시고 당신을 보시고 당신께서 거룩한 본성을 가지신 것을 아신 뒤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시고 아신 것처럼 당신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즉 아버지께서 스스로 아시게 된 행동과 아버지께서 스스로를 드러내신 말씀대로 아버지께서 외아드님을 영원히 탄생시키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잃지 않으신 채 당신 안에 계시면서 사람과 구분하시기 위하여 당신 밖으로 나가셨다가 다시 당신에게도 되돌아오셔서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쉬고 계시는데 기쁨이 흘러 넘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변하여 성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안에 계시면서 당신 밖으로 나가셨다가 다시 당신 안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따라서 밖으로 나가신 것은 다시 돌아오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세계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완전한 하늘나라와 같은 움직임이 있게 되는데 끊임없이 처음 나온 원천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완전하게 만들어졌던 인간의 과정도 그러한데 자신이 나온 원천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면 나는 수동적이 되고 주님께서는 능동적이 됩니다.
이미 하나가 되었다면 내 눈이 어떤 모습을 보아도
내가 생각하던 모든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므로
다른 것을 볼 수 없으며 다른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어떠한 것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가 받은 모든 힘을 빼야 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그대가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자신을 비우십시오. 그대가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바깥으로 나가십시오.”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인은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하느님께서 만드신 고귀한 영혼이여, 항상 그대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찾아 그대 바깥으로 어디로 가든 그대에게 신성을 주신 분을 통하여 나가야 하지 않겠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세상 것들에 집착하고 있소?”

이와 같이 우리가 마음을 비워 영혼을 깨어 있게 하면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텅 빈 마음을 채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빈 곳이 없게 하늘나라의 것들로 채워 주시는데 당신께서 빈 곳을 남겨 두시지 않는 것은 당신의 뜻에 어긋나고 당신의 의로움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말씀이신 주님께서 그대 안에서 말씀하시고 들으시게 됩니다. 그러나 그대가 말을 하면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침묵하고 듣는 것보다 말씀이신 주님을 잘 모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대가 자기를 버리는 만큼 주님께서 틀림없이 그대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버린 만큼 들어오시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미지 출처 = Pxhere)

아브라함(Abraham)

대니얼 베리건(Daniel Berrigan, 1921-2016)/ 후고(後考) 옮김

 

나는 어린 아들이 앞서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꽃밭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무력함만 느끼며

애꿎게도 잡초만 뽑아 내며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아들은 젊음을 과시하듯이 재빨리 죽음으로 내닫고 있다.

 

나는 여러분이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내 마음은 팀파니처럼 경적을 마구 울리고 고동치며

마치 하느님을 거스를 듯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마치 “나는 아들보다 먼저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듯이

지금 내 마음은 마구 고동을 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아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지금 누가 아이이고 누가 늙은이인지를 모르겠다.

나는 하느님의 손으로 무자비하게 일으키신 먼지 때문에 몹시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라”고 천둥을 치시지도 않았을 뿐더러

새벽이 되어 칼을 내려놓게 하실 때까지 

내 아들의 눈은 “제발 저를 사랑해 주세요” 하고 하소연하며 울지도 않았다.

 

대니얼 베리건 예수회 신부는 창세기(21,1-18)를 읽고 묵상하면서 이 시를 썼습니다. 요즘처럼 믿음이 약한 세대에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깊었지만 아들 이사악도 아버지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순종한 것은 요즘엔 보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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