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모세의 장인 이드로 시대에 살던 한 사람이 말했다. “저가 그렇게 죄를 많이 지었는데 (*주: 모고해를 일삼고 있는 우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드로가 그에게 많은 금언을 말해 주자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
3만 2000 이상의 절로 이루어진 교훈시 "마스나비"는 “나는 사랑 외의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은 사랑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고백한 루미의 위대한 영적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교훈시는 그의 제자들에게 더 높은 정신철학을 소개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 2600여 개의 교훈시는 이슬람 출현 이후 초기 6세기 동안에 이슬람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신비적 사고의 모든 기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우화, 일화, 격언 그리고 신화로 된 불멸의 보배로 가장 높은 신비적 지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마(Sema)의식을 치르면서 부는 갈대 피리인 ‘네이젠'(neyzen)은 애달픈 음색이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닌 천상의 세계입니다. 루미는 갈대밭을 그리워하는 ‘네이젠’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영혼이 잊고 살아가던 이별의 찢어지는 상실감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마스나비"를 '갈대 피리의 노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스나비"는 바리사이와 같은 성직자들과 믿음이 부족한 신자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학자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나 어리석은 자와 논쟁하기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지식을 구하는 자는 하느님께서 그를 지옥 불에 보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교리로 시작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있으며 어떤 종교는 깨달음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불행하게도 교리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종교의 현실입니다. 그리하여 성직자들이나 신자들은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고 깨달을 생각은 하지 않고 외면적인 기도나 금식과 같은 수행에 치중하며 내면 생활을 게을리하여 영성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면 종교적 신앙은 없는 편이 있는 편보다 낫습니다. 맹신과 광신은 신앙 없이 상식만으로 사는 것보다 더 훨씬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세력을 과시하는 종교라도, 비록 한 사회의 이른바 ‘주류’를 점하는 종교라 해도 비판적 사고를 허용하지 않고 ‘묻지 마’ 신앙을 강요하고 주입한다면 존재 가치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 어떤 종교도 계몽주의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종교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맹목적 욕망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기복신앙과 기적신앙이 판치고 있는 우리나라 종교계가 정말 최근의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행실은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무신론자입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성 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베두인(Bedouin) 족의 수사인 카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가 여러 해를 사하라 사막에서 지내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영성적 고백서 "I Sought and I Found"(DLT, 1984)를 썼는데 그의 여행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하느님과의 싸움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 보내는 연애편지로 책을 끝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을 따로 하지 말고 교회를 변화시키려고 애써야만 하지만 평신도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서두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 나의 교회를 얼마나 비난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나를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당신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비난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이 성스러움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태까지 더 개화를 반대하고, 더 타협을 많이 하고,
더 엉터리인 것을 보지 못했지만,
더 순수하고, 더 관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면전에서 내 영혼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것 같은 느낌을 수없이 받았지만
매일 밤, 나는 당신 품 안에서 죽고 싶다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완전히 당신은 아니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하나이므로 나는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내가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다른 교회를 지으려 한다고요?
그러나 같은 결점이 없다면 다른 교회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 결점이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다른 교회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교회일 것입니다.
아니, 나는 더 좋은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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