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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피리의 노래[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루미(Jalaluddin Rumi, 1207-73)는 요한 타울러보다 100년을 앞선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으로 대표작 "마스나비"(The Masnavi)를 남겼습니다. 이슬람의 다른 종파는 예수님을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로 취급하지만 루미는 수피즘으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통 이슬람교가 전반적으로 율법적, 의례적인 종교로서 영혼의 만족이 없는 세속적 종교 형태에 머물러 있자,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이슬람 신학자들이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촉구하면서 신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을 연구하며 신비주의 종교로 창립한 것이 수피즘입니다. 2010년 모로코 정부가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하여 수피즘을 확산시키고 극단주의와 싸우게 하여, 극단주의를 물리치고 국교로 삼았습니다. 

수피 영성가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마(Sema)의식을 치르면서 죽음을 나타내는 흰 의상과 비석을 상징하는 긴 모자를 쓰고 머리를 비스듬히 하고, 한 팔은 하늘을 향하게 하고 다른 한 팔은 땅으로 향하게 한 채, 빙글빙글 돌며 회전무(whirling dance)를 춥니다. 그리고 ‘아인’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곡을 연주하는데 이 음악은 기악과 성악을 포함한 네 부분으로 구성되며, 최소 가수 1명이 노래하고, ‘네이젠'(neyzen)이라고 불리는 피리 연주자, 케틀드럼 연주자, 심벌즈 연주자가 연주합니다.

하느님을 갈대 피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갈대 피리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하느님의 호흡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슬플 때면 피리를 불지만 왜 슬픈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불태워 없애지 못해 매듭이 남아 있는 갈대 피리가, 피리를 부는 사람의 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노래할 수 없듯이, 환상에 빠져 있으면 하느님의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갈대 피리에 매듭이 남아 있는 한 비밀을 노래하는 피리의 친구가 되지 못하며 피리를 불지 못하게 됩니다. 과거와 미래에 붙들려 있고 인간의 겉모습에만 집착하게 되면 성령의 숨을 받지 못해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순례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자아를 갖고 돌아오게 됩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배우지 못하게 되고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므로 회개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과거에 대하여 회개하려고 하지만 이런 종류의 회개는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이나 하느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 비록 용서는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미 지은 죄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슬퍼하고 비명을 지르지만 하느님을 응시하는 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마음의 때 즉 마귀 때문에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을 구리거울에 슬어 있는 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성 작가였던 벨기에의 루이 에블리 신부(Louis Evely, 1910–85)는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La priere d'un homme modern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께 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빌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안하시고 다만 인간에게 호소하시며 은혜를 베풀고 계실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훨씬 더 열성적으로 우리를 찾고 계시며 훨씬 더 우리와의 만남을 기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만날 기회를 얼마나 제공해 드리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은 성령이 우리에게 호소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제안하고 하느님은 그것을 결정하신다’라든가 ‘인간은 보채고 하느님은 인도하신다’라는 따위의 말처럼 비 그리스도교적인 말은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인간을 하느님의 노리개로 추락시키고, 하느님을 제멋대로 횡포를 일삼는 폭군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사실은 하느님께서 제안하시고 인간이 그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제안하시고 다만 인간에게 호소하시며 은혜를 베풀고 계실 뿐입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제공하시고,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림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응답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간청한다고 해서 하느님으로부터의 은총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으로부터 어떠한 은혜를 어떻게 받고 있는가를 헤아려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높은 원의도 하느님의 계획에 동의하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 외로이 있는 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느님을 찾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훨씬 더 우리와의 만남을 기뻐하십니다.

하느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우리는 하느님께로 이르는 길을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갈대 (이미지 출처 = Pixabay)

 

'갈대 피리의 노래'

루미(Jalaluddin Rumi) -후고(後考) 옮김

 

갈대 피리가 이별의 상처를 슬프게 노래하는 것을 들어 보세요.
“내가 갈대 줄기에서 잘린 후 나의 노래는
이별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며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뿌리에서 멀리 잘려 나가면
누구나 하나였을 때를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만 기다립니다.
나는 슬픈 사람이나 기쁜 사람들 앞에서 쓸쓸히 나의 운명을 노래했습니다.
그들과 나는 함께 위로를 받았지만
아무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울부짖는 나의 노래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사람들의 눈과 귀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몸과 영혼은 하나를 이루고 있지만
아무도 영혼을 보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갈대 피리의 울음은 인간의 숨결이 아니라 불입니다.
이 불을 갖지 못한 사람은 아무런 하소연도 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불은 갈대 피리를 애타게 찾게 하지만
사랑의 열정은 포도주의 힘을 빌리게 합니다.
갈대 피리는 이별한 사람들을 위로하지만
갈대 피리의 노래는 우리 마음의 장막을 걷어 냅니다.
갈대 피리의 노래로 치유되거나 더 슬퍼하여,
영원히 그리워하는 절친한 친구가 됩니다.
갈대 피리는 광인(狂人)의 사랑 때문에 피로 물든 길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수난을 말함)
그리하여 몇몇 사람은 갈대 피리가 노래하는 사연을 알고는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 위안을 받지 못하고 몹시 아파하면서 슬픔 속에서 나날을 보냅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가 버려 당신과 함께 있었던 때를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를 빼놓고 모든 사람들이 물을 실컷 마셨습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었다는 것을 압니다.
철들지 않은 사람은 철을 모릅니다.
따라서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오, 아들이여! 굴레를 벗고 자유를 만끽하십시오.
얼마나 오랫동안 은과 금의 노예로 남을 참이오?
바닷물로 항아리를 채우면 얼마나 채우겠소?
고작 하루 분밖에 더 되겠소?
탐욕의 눈은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오.
조개가 좋아하지 않으면 진주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오.
사랑 때문에 옷소매가 찢어진 사람은 탐욕과 잘못으로부터 해방된다오.
오, 사랑하는 이여, 기뻐하시라!
그대에게 만병을 치유하는 의사같이 아주 큰 축복이 내리리라.
의사 플라토(Plato)와 갈렌(Gallen)처럼
우리의 교만과 허영을 낫게 해 줄 것이오.
사랑 덕분으로 이 땅의 몸은 하늘로 가고
산이 새처럼 춤추기 시작하고 바빠지기 시작했다오.
시나이(Sinai) 산은 취하고 모세는 넋을 잃었다오. 
갈대 피리처럼 절친한 나의 친구가 함께 있었더라면
그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을 텐데.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이야기꾼은 사라지는 법. 
장미가 시들고 정원이 황폐화 되면
더 이상 두견새가 장미를 사랑하는 노래를 듣지 못하게 된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못 보고 있다.
하느님은 살아 계시지만 사람들은 시체일 뿐이다.
사랑으로 하느님을 모시지 않으면 날개 잃은 새처럼 떠나 버리신다.
“내가 여기서 하느님의 빛을 발견할 수 없다면
이 쓸쓸한 밤을 어떻게 안심하고 보낼 수 있겠는가?”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를 바라시지만
우리들의 마음 거울은 햇빛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들의 거울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가?
거울의 표면에 녹이 슬어 있기 때문이다. 녹을 깨끗이 없애라!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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