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김연수]

한반도의 가을

2018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공식 발표 이후 남과 북 그리고 전 세계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위해서 숨 가쁘게 달려왔다. 특히 최근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북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전 세계의 관심은 최절정에 달하고 있다. 교회 안팎으로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북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이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남북 관계의 현재 상황과 국제사회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고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10월 1일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주변과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지뢰를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비무장화되면, 조만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남쪽, 북쪽 구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된다. 국방부는 다음 달 중, 아니면 연내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남, 북, 유엔사는 민간인 관광객 자유왕래를 대비해 신규 초소를 설치하고 감시 장비를 추가할 예정이다. 남북이 9.19 군사합의에 따라 진행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한반도 내 전쟁 위험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도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서 북한과 교류를 넓혀 갈 방침을 세우고 있다. 김포시는 한강하구 공동조사와 농산물 종자 교환, 재배, 청소년 수학여행, 말라리아 공동방역 등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남북이 평화 체제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신뢰를 가지고 공동번영을 목표로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북악산을 등반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남한 방문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일정과 장소는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두 정상이 약속한 연내 방문인 만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북미관계가 답보 상태에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어느 특정한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남북 주도형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만약 김 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고 한라산을 가게 된다면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두 정상이 파격적 행보를 걸어왔듯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멈춤 없이 앞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남한 정치권에서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데 김정은에게만 올인한다.’는 비판이 있다. 남한의 경제 상황은 1997년 IMF 이후 계속 어려웠다.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의 길을 모색하고 상호 번영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하고 장거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였다.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까지 영구 폐기하기로 하였으며,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서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등 추가적 조치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육성으로 전 세계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갈 것”을 확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스의 <르피가로>와 서면 인터뷰를 가지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그 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두 매체는 모두 보수성향의 언론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영향력 있는 보수의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가졌다는 것은 각국의 보수층들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해 달라는 제스처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고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도 국제적으로 여전히 불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으로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바쁘며 한반도 내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관세 폭탄으로 긴장을 조성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이익을 최대한 이끌어 내고자 하는 노림수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정치유세에서 “나는 핵실험이 없는 한 얼마나 오래 걸릴지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속도 조절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고 미사일 시험장을 폐기하고 있는 과정에서 미국은 더 이상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듯이 다시 속도 조절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온전히 올가을의 결실을 보고 달려왔다.

교회의 역할

북미관계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불안한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많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의 예를 들고 싶다.

첫째, 한국천주교회는 교종의 방북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깊이 공감하고 평화로운 방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지지하고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북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남한 교회 안에 북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진정성 문제는 계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해방 전 그리고 1988년에 천주교가 북한에 재등장한 뒤에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들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해방 뒤 오랫동안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교종의 북한 방문은 북한 신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황님의 방북은 “평화의 사도”로 종교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교종의 방북이 이루어진다면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서구 사회의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그리고 미국도 북한에 대해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두 번째, 한국천주교회가 북한 실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안에 북한학을 전공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많다. 가능하면 각 교구 본당에서 대림절이나 사순절에 북한학을 전공한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초대해서 강의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분명 북한은 변하고 있지만 천주교 내 일부는 여전히 북한을 이념적 시선으로만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있다.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을 이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김연수 신부
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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