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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Sis! Did you hear me? (수녀님, 내가 하는 말 들었어요?)[신학 오디세이아 2 - 박정은]

대학가의 축제는 무언가 저항하는, 그리고 도전하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던 문사(counter narrative)가 어엿이 등장하는 그런 아찔한 충격. 시대에 대한 비판, 지식인으로서의 결단, 그리고 그 꿈을 살아 내지 못하는 비겁함 등을 표현하며, 거부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그런 행위를 우리는 축제 혹은 향연이라 부른다. 그래서 축제가 없는 삶에는 리듬이 없고, 또 새로운 것을 향해 도약하는 긴장이 없다.

사뭇 다른 축제의 분위기로 문화 충격을 경험한 것은 내가 이곳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던 첫해였다. 학기를 9월에 시작하고 한 달여 만에 축제를 한다고 했는데, 그 축제는 짜인 각본대로 아주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그저 점심시간에 캠퍼스에서 바베큐를 즐기며 보는 하와이안 클럽 학생들의 훌라 공연. 그것이 다였다. 나는 속으로 ‘에게~ 달랑 이거야?’를 외쳤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가면서 학생들의 사정- 6과목 이상을 수강하며,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또 운동부 학생들은 훈련과 경기, 그리고 수업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인 시간을 가지기가 힘든-을 알게 되면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그런 축제 같은 것은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축제가 학생들이 무언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공론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 학생회장이 된 라틴계 여학생 모니카가 나를 찾아와서는 이번 축제의 주제는 “탈식민하기”여서 학교 교목 신부님의 시작 기도는 없을 거라고 했다. 이미 교목실과의 갈등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하며, 신부님과 이야기해 보았냐고 묻자, 그는 “신부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대화를 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글썽했다. 자기는 신부님께 무례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었고,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신부님은 자신을 피하시더라 했다. 사실 교목 신부님이 무척 마음이 상하신 것을 알지만, 그를 나무랄 마음은 없었다.

요즘 탈식민주의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벽에 그린 벽화. 캘리포니아의 원주민-네이티브 인디언, 멕시칸들이 유럽 이민자들에게 땅을 빼앗기는 과정을 담은 벽화. (사진 제공 = 박정은)

자기의 주장을 펴고 싶어 하는 열정으로 발그레한 뺨을 연신 부비며 말을 이어 가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그런 저항은 젊은 날의 특권일 테니까. 그의 논리는 원래 멕시코 땅인 캘리포니아를 유럽에서 이민 온 백인들이 빼앗았고, 특히 가톨릭 교회가 그 과정의 중심에 있었으니, 수녀님들이 얻은 땅도 결국 빼앗은 땅이 아니냐는 거였다. 논리는 비록 정연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미션에 원주민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일단 긍정한 뒤,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런데 그는 자세한 역사를 알지 못했다. 우리 수녀님들이 정확하게 어떻게 이 땅을 샀는지, 또 처음에 이 땅이 얼마나 불모지였으며, 수녀님들이 어떤 노동을 했는지도 전혀 몰랐다. 

150년 동안, 억눌리고 가난한 젊은이들이 온전히 자기들 기량을 다 펼 수 있도록 힘을 주기를 꿈꿔 왔던 우리 학교. 만일 우리 학교가 중산층, 혹은 상류층 학생을 받은 학교였다면, 150년 동안 늘, 재정난에 허덕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난 속에서도 (지금도 우리는 엄청난 적자다) 우리는 이 여정을 계속해 왔고, 그 미션의 결과 오늘 우리 학교의 대다수 학생은 미국의 가장 억눌리고 가난한 젊은이들- 그들은 흑인들이고, 남미 계열 이민자의 자녀들이며, 또 불법체류 신분으로 내일을 꿈꾸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탈식민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사실 박수를 쳐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탈식민주의가 갖는 의미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전통을 부정하는 것일지, 아니면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거기 혹시 새롭게 찾아낼 의미는 없는 것인지 깊이 연구하고 더 고민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는 열려 있었고, 놀라워했으며, 새로운 질문을 가지고 돌아갔다. 교수들은 내가 학생들을 설득해 주제를 바꾸고, 늘 하던 대로 신부님의 기도로 시작되게 하기를 기대했지만, 정작 나는 축제의 프로그램을 바꾸게 할 맘이 없었다. 축제는 그들의 것이기에.

그리고 마침내 축제의 날이 되었다. 학생들이 준비한 축제는 잘 짜여지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어설픈 구석이 많았으며, 많은 학생은 축제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축제에서 학생들은 소수자로서 자기들이 느끼는 사회 문제를 토론했고, 자기들이 고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축제 마지막에 그 대표 학생이 연설을 했다. 이 학교 학생의 대다수는 유색인종이며, 우리는 백인 중심의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않겠다며, 교과과정의 개편을 요구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주장은 150년 지속된 우리 학교의 이념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의 시작이라며 말을 마쳤다. 몇몇 교수들은 불쾌해 하며 자리를 떠났고, 남아 있는 교수들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축제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 (사진 제공 = 박정은)

하지만 강한 부정의 담론 속에, 학생들의 사고가 한층 깊어 가는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긍정의 담론만 있다면, 그건 축제가 아니다. 축제가 끝나고, 복도에서 다시 마주친 그녀가 “Hey, Sis! Did you hear me?”(수녀님, 내가 하는 말 들었어요?)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그녀가 내었을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생각하며, “그럼, 잘 들었어. 축하해!”라고 격려해 주었다. 

사실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 그녀의 연설이 내게는 150주년을 맞는 우리 학교에 성령께서 보내 주시는 메시지로 들렸다. 왜 90퍼센트가 소수민족인 우리 학생들이 거의 90퍼센트의 유럽 중심의 교과과정을 배워야 하느냐는 불편한 메시지를 들으면서 축제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 메시지는 나의 교수법 전체에도 적용된다. 사실 이번 학기에 나는 교수법을 완전히 바꿔, 학생들이 올린 질문들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들이 올린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바 없으므로, 함께 자료를 찾고, 가장 그럴듯한 정보에 점수를 주며 공통의 담론을 만들어 간다. 내가 가르치고 싶은 내용을 포기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지만, 지식을 만들어 가는 공간을 학생들과 나누면서, 단순히 소극적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기쁨이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저녁처럼 마음이 가볍다.

우리의 일상은 축제이어야 한다. 축제처럼 서로 다른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그러면서 현재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의 춤사위에 춤을 추는 그런 축제여야 한다. 물론 나와 다른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 내가 알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야기는 나를 불편하게 하고, 거부하고 싶어지지만, 그런 이야기 속에, 내가 그리고 네가 생생한 새 생명을 간직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축제에는 노래와 춤이 있고, 눌렸던 이야기가 있고, 새로운 희망이 있게 마련이다. 일상은 축제다.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주제가 있는 나의 일상은 축제다. 이 미션의 끝은 나의 음을 비워 내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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