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오디세이아 2 - 박정은]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고, 9월을 맞는다. 달력 속의 9월은 새로운 학기의 시작이고, 설레임과 기대로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같은 과목이라도 수업은 늘 새롭고 또 경쾌한 긴장을 동반한다.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이제 새로 만난 학생들과 일 년간의 엄숙하고 진실을 탐구하는 노동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는 또 다른 9월이 시작된다. 이 마음속의 9월이란 내 나이 같은 거란 생각을 한다. 햇살의 결도 한결 부드러워졌고, 나뭇잎이 투명하게 빛을 발할 때 즈음, 가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가 내 맘을 설레게 한다.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 본다. 

내가 사는 알라미다(Alameda)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해군기지였기 때문에 양철로 지어진 많은 막사들이 그냥 텅 빈 채로 삭아져 내린다. 부식이 진행되는 그 양철 벽에 기대어 피어난 들꽃들이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난다. 부식된 양철 막사, 그리고 그 벽에 기대 활짝 핀 꽃들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오늘 참 잘 어울린다. 둘 다 역설적으로 생명을 이야기하기 때문일까. 서서히 낡아져 가는 것, 그리고 순간의 찬란함— 잠깐 그저 피었다 진다 해도 억울할 것 없을 만큼의 찬란함, 그것이 생명임을 내게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이럴 때면, 시간이 천천히 흐름을 감지한다. 그때를 나는 기도가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이른 아침 아직 충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간, 하루를 완전히 닫기 전, 일상의 거센 물결 속에 들어가기 직전, 혹은 잠시 빠져나오는 그런 시간. 이 시간을 티베트 불교에서는 바르도(bardo)라고 하는데, 틈새의 시간이다. 그럴 때면, 사물도, 자연도,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네고, 그 말을 들으며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다. 그때 나도 아주 조용히 하느님 하고 부른다. 그리고 하느님 품 안에 쉬는 내 맘속 그리운 사람들을 불러 본다.

함께 학교에서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고, 늘 같이 이야기하던 수녀님을 잃고, 처음으로 맞는 학기. 수녀님이 쓰던 사무실을 지나칠 때마다 울고 싶은데, 늘 따스했던 그 수녀님을 그리워하는 동료 교수들을 달래느라 나는 아직 보고 싶단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거리를 산책하다, 기도의 순간이 올 때는 이제는 아프지 않냐고, 거기서 행복하냐고 묻게 된다. 아마 이런 게 9월의 기도일 것 같다.

기필코 하느님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날 선 의지로 수도원 경당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애를 쓰던 어느 오뉴월의 그런 기도가 아니라, 나도 보이고 세상도 보이고, 그리고 하늘도 보이는 그런 약간 게으르고 따스한 기도. 나는 부모님을 벌써 여의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셨던 어머님의 치매가 시작되고, 조금씩 은퇴 계획을 해야 하고, 또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가게 되는 이 즈음의 기도. 그런데 9월의 기도는 아직 그리 깊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된다. 포도 알이 까맣게 익어 가듯이, 아직은 꿈을 담을 수도 있고, 아직은 좀 까불어도 아주 주책맞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어느 시인의 말처럼, 9월이 오면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낡고, 서서히 부식해 가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양철 막사 벽에 기대어 누군가가 찬란한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 그저 처연히 사라져 가는, 그런 9월처럼. 그리고 감히 우리 교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한다.

ⓒ박정은

어제 신비주의 수업 말미에, 나는 학생들과 영성(Spirituality)과 종교(Institutional Religion)의 차이에 대한 토론을 했다. 한 학생이 아주 재미있는 발언을 했는데, “종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침을 주지만, 사람들이 변해 가는 것에 비해 늘 늦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세상의 변화만큼 빠르게 반응할 수 없음과 종교가 주는 안정감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농담처럼, “거기다 교회는 묻지도 않는 거에 대해서는 답을 주고, 진짜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에 대해 양심적이고 신중한 결정을 하고 있는데, 교회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내가 보기에 미국의 가톨릭 교회는 한국보다는 훨씬 덜 성직자 중심이다. 모든 것을 신자들과 결정하고 본당의 사목회의를 보아도 사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제가 없는 본당도 제법 있다. 그럴 경우 은퇴한 신부님들이 가서 미사를 드려 주고, 본당의 운영 자체는 사목회의에서 한다. 그럼에도, 신자들은 성직자 중심의 가톨릭 교회의 구조를 비판한다.

이런 와중에 이번에 다시 한번 사제들의 성추행(sexual abuse) 논란이 불거졌다. 펜실베이니아 교구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청소년들을 성추행한 사제들을 보호하고, 은폐하려 했던 사실이 세간에 발표 되었다. 물론 이 성직자들의 추행은 미국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더 충격인데, 이 문제는 사제가 아동 혹은 청소년을 성적으로 추행한 것, 그리고 이 성범죄를 은닉한 교회가 가진 도덕적 결함이라는 이중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다. 각 교구의 교구장들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오클랜드 교구는 no tolerance policy(조금도 참아 주지 않는다는 방침)를 계속 유지하며,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감사기관을 만들 계획이라는 발표했다. 

이번에 내놓은 여러 가지 결정 중 내 눈길을 끈 것은 미국 주교회의 의장인 대니얼 디나도 추기경의 발언이었는데, 디나도 추기경은 신자들에게, “사제단은 신자들을 실망시켰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한 적이 없으니, 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미국인 특유의 경쾌한 동작이었지만, 무언가 비장한 느낌을 주는 말씀이셨다. 결국 이젠 목자가 신자들에게 교회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할 때가 된 걸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분명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모든 신자는 사제직, 왕직, 그리고 예언직을 가진다고 천명했지만, 아직 교회는 사제 중심이며, 중세의 봉건제도에서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현재 교회가 겪는 이 혼돈과 어두움이, 사제에 대해 가졌던 신뢰를 허무는 이 일련의 사태들이 어쩌면, 성직자 중심이 아닌, 새로운 모습의 교회, 어쩌면 더 나아가 초대 교회의 그때,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신앙을 고백하고, 빵을 나누며, 서로를 돌보던 그때로 돌아가라는 초대가 아닐까. 그래서 신자들의 삶에 정해진 답을 주거나,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내모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보듬는 그런 정다운 공동체가 되라는 초대가 아닐까.

9월이 찾아왔고, 새 학기는 시작되었다. 햇살은 점차 넉넉해지고, 그 넉넉한 오후의 빛살 아래 보여지는 사물들이 정겹다. 나도, 또 우리가 담겨진 교회도 이 9월에는 부식되어 가는 쓸쓸함을 고스란히 품은 채 생명을 말하는, 새로 피어나는 꽃송이가 기대는 벽이 되길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이 아픈 교회가 어느 사이엔가 혹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남겨 줄 절절한 선물이 되어 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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