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아동 어린이처럼
낙태와 동성 결혼에 관한 한국 교회 태도는 온당한가[어린이처럼 - 김유진] '첫사랑',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첫사랑',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박지니), 움직씨, 2018. (표지 제공 = 움직씨)

'첫사랑'은 제목처럼 작고, 얇고, 예쁜 그림책이다. 슬로베니아 작가가 글과 그림을 그렸고 ‘움직씨’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며 번역, 출간했다.

그림책의 주인공은 여섯 살 남자아이다. 엄마와 시골 할머니 댁을 떠나 도시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게 된 아이는 시골을 그리워하고 친구를 사귀지도 못한다. 그러다 드레이크라는 남자아이와 단짝이 된다. 감기에 걸린 주인공이 일주일 만에 등원하고, 반가운 드레이크가 주인공에게 뽀뽀하자 선생님은 “그 애는 여자아이가 아니”라며 나무라고, 계속 둘을 떼어 놓는다. 주인공은 “무슨 잘못 때문에 벌을 받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여긴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의 동성애 정체성을 따뜻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어린이문학에서 여섯 살 주인공의 동성애 정체성을 말하는 건 꽤 전복적인 일이지만 어린이에게 마냥 숨기고 쉬쉬할 주제만은 아니다. 바로 어제 뉴스에서는 미국의 아홉 살 어린이가 커밍아웃 후 친구들의 괴롭힘을 받고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만약 그 어린이 옆에 이 그림책이 있었다면....

'첫사랑' 그림책 일부.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박지니), 움직씨, 2018. (이미지 제공 = 움직씨)

국내 그림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또한 어린이의 동성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꽁치는 남자아이지만 치마를 즐겨 입는다. 꽁치의 아버지는 핑크색 셔츠를 입고 꽁치에게 아침을 마련해 주고, 어머니는 소위 여성적 옷차림을 하지 않는 등 남녀 성역할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꽁치 엄마는 꽁치를 붙잡고 엉엉 울며 “내일부터 치마는 입지 않기로 약속해 줄래?”라고 애원한다. 결말에서는 “치마 입은 꽁치가 제일 예쁘다”는 가족의 지지와 응원을 받게 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제 뉴스 중 또 놀라운 소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 정신과’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놀랄 만한 것이, 이는 동성애와 관련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뿐더러 평소 교황의 발언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글, 이한솔 그림, 리젬, 2015. (표지 제공 = 리젬)

교황의 발언 중 문제가 된 건 “자녀가 걱정스러운 특성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발언의 맥락을 살펴볼 때 이것이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오도하거나, 상담과 치료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한 반박을 교황청이 해명하고, 이 발언을 보도 자료에서 삭제했듯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분명하다.국내 기사를 찾아 종합해 발언의 전모를 살펴본 바로는 자극적으로 편집된 뉴스 제목에 상당 부분 왜곡의 소지가 있었다. 교황은, 자녀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부모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우선 기도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한 뒤 자녀를 비난하거나 그들의 성적 지향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비난하지 말고 대화하고 이해해야” 하며 “자녀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동성애 기질을 가진 자녀를 외면하는 것은 부모 자격이 결여돼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부모들이 침묵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황 “동성애 어린이, 정신과 도움 받을 수 있어”... 관련 단체 반발’, <연합뉴스> 8월 28일자 인용)

서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조차 최근 동성 결혼과 낙태가 합법화됐으며,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 둘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 특히 낙태 찬반 논의와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그림책 일부. (이미지 출처 = YES24 갈무리)

한국 교회는 이 논의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최후의 보루로 역할하고 있다. 낙태 반대는 교황청의 오래된 입장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사제들이 환히 웃는 얼굴로 생명 수호 캠페인을 벌이거나, 원론적 윤리신학만 되풀이하는 장면은 현실의 절절한 고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조소를 자아내는 게 사실이다. 성체 훼손이라는 엽기적 사건이 일어났듯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더욱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며, 가부장제 사회를 지탱하는 데 이바지하는 종교로 여겨진다. 동성애와 낙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 교회가 이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태도를 고민해 보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 교회에 교황과 같은 태도와 소통 능력을 바라는 건 무리일까. ‘로마 교회보다 더 로마적’이라고 비판받는 한국 교회의 보수성이 이 문제에서도 관철되는 한 사회의 약자인 여성과 동성애자의 눈물은 마냥 외면당하게 된다. 가톨릭 교회가 지금까지 고민해 온 윤리의 깊이와, 사랑에 기반한 사목적 배려를 더욱 상세히, 널리 알릴 의무가 한국 교회에는 있다. 가르치고 이끄는 태도를 버리고 더 섬세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려고 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의 발언에 귀 기울일 것이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