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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살아남은' 우리가 할 일[어린이처럼 - 김유진] 영화 '살아남은 아이'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2018. (포스터 제공 = 아토ATO)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초반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를 상기시킨다. 준페이라는 청년은 10년 전 여름, 물에 빠진 소년 요시오를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고 만다. 가족들은 1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준페이의 기일에 모여 그를 기린다. 이 자리에는 요시오 역시 줄곧 초청된다. 10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요시오는 그만 참석해도 되지 않느냐는 준페이 동생의 질문에 어머니는 대답한다.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 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 않아. 그러니까 내년 내후년에도 오게 만들 거야.”

준페이의 어머니에게 요시오는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에서도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던 은찬은 친구 기현을 구하고 죽는데, 은찬의 엄마는 기현이를 “은찬이 죽인 애”라 칭한다. “걔, 물에 빠지지 않았으면 우리 찬이 아직 살아 있어.”

그 말을 들은 은찬의 아버지가 물놀이를 허락한 건 자신이었다고 자책하듯 불행이든 행복이든 인과 관계를 따지는 일은 사실 무의미하다. 하지만 고통은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때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과거의 가정법을 수없이 되뇐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과거의 시간을 가정대로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지나간 불행의 고통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밖에 없다.

내 아이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구한 다른 목숨은, 내 아이를 앗아간 목숨인 동시에 내 아이 대신 살아가는 목숨일 수 있다. ‘살아남은’ 그 목숨이 인간답게 잘 살아야, ‘살아남지 못한’ 내 아이의 목숨이 더 의미 있어질지 모른다. 은찬의 부모가, 부모 없이 혼자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기현을 자신들의 일터인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 고용하고 도배 일을 가르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은찬의 죽음으로 예전과 똑같은 ‘집’은 결코 될 수 없겠지만 기현과 함께 새로운 ‘집’을 만들어 나간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아토ATO)

하지만 은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은찬의 부모는 또 다른 상황 앞에 서게 된다. 은찬은 기현을 구하다 죽은 게 아니라 기현과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기현의 고백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은찬의 부모는 사건의 진상을 법적으로 밝히기 위해 가해 청소년들을 고소하고 이미 수개월이 지난 사건의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기현을 제외한 아이들의 거짓 증언으로 불기소처분을 받는다. 은찬의 부모에겐 기현과의 관계가 남아 있다. 내 아이를 죽인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뒤늦게 밝혀진 죽음의 진상에 따르면 영화는 '걸어도 걸어도'가 아닌, 다르덴 형제 감독의 '아들'(2002)과 유사하다. 소년원 출소 뒤 사회 적응 과정인 직업훈련센터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 프랜시스를 가르치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와 '아들'의 끝은 물론 용서와 화해이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소년원에서 죗값을 다 치렀다며 당당해 하는 프랜시스, 은찬의 부모를 줄곧 속이고 자백 이후 용서받은 양하는 기현, 두 어린 살인범과 화해가 가능할까. 영화가 제시하는 건 윤리적 상황이지 그 해답은 아닐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아토ATO)

용서와 화해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덕목이다. 본당 강론에서도 종종 듣는 내용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들어 왔던 이 가르침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 부당한 현실을 그저 수용하라는 주문이 될 위험이 있다. 그 주문으로 현실의 부당함은 묻혀 버리거나 영구히 지속된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 은찬이는 의사자로 인정되어 군청에서 정식으로 의사자 증서와 보상금을 받는다. 수여식장에 걸린 플래카드에 적혀 있는 수여식의 날짜는 4월 17일. 누구나 기억하는 4월 16일 바로 다음 날을 영화는 끄집어냈다. 불의한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인적 용서와 화해가 전부일 수 없다.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죽음과 관련한 진상을 규명하는 일, 그것은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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