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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원하시는 일[구티에레스 신부] 8월 5일(연중 제18주일) 요한 6,24-35

하느님을 알아 가는 것은 두려움과 끝까지 가고 싶지 않은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진지한 충실성을 요구하는 긴 과정이다.

생명의 빵

요한 복음의 6장은 빵의 기적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늘의 말씀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의 깊은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요한이 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빵의 기적은 보다 더 보편적인 실제들을 가리키는 “징표”다.(요한 6,26) 주님의 행위는 하느님의 무상의 사랑을 표현한다. 오늘 복음의 전체 구절은 일의 주제에 초점을 둔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지만, 주님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정해 준 그분의 메시지의 전체성을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요한 6,27) 사람들은 이 가르침에 열려 있다.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필요한 빵을 주었기 때문에 따랐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하느님이 요구하는 일들을(6,28) 기꺼이 하고자 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느님이 보낸”(6,29)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는 일이다. 즉 그리스도께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으로부터 다른 모든 일들은 충만한 의미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그분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제시한다.(6,35) 모든 생명의 빵이다.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6,31-32)와 예수님의 손에서 받아먹은 빵은 일들이며,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을 표현하는 “징표들”이다.(6,33) 우리는 그분을 믿어야 한다. 6장의 나머지 부분도 이 주제에 관련된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두려움 없이 자유와 생명의 약속으로 가는 여정을 계속 하는 것. (이미지 출처 = Pixabay)

자유의 두려움

생명의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우리는 가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들 때문에 의기소침하기도 한다. 약속된 땅으로 가는 길에, 어느 시점에서 유대 백성들은 모세에게서 돌아섰다.(탈출 16,2)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진부하지만 익숙한 생활을 다시 원하게 만든다. 자유가 그들을 두렵게 한다. 그들은 억압과 착취의 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것이 모든 믿는 이들의 유혹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되풀이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두려움은 “낡은 자아”(에페 4,22)의 특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은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의 발이 짚고 있는 땅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죽음의 힘이, 성서가 말하는 것처럼, 우세하게 보여서 우리들은 사악한 사람들이 바야흐로 의인들을 질식시킬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스로 파멸의 길을 원하지 않는다면,(4,22) 우리는 성령 안에서 쇄신된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4,23) 비록 우리가 그 길을 분명하게 볼 수 없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자아”(4,24)의 옷을 입고 계속 희망을 가지도록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일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생명이심을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의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자유와 생명의 약속으로 가는 여정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알도록 해 줄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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