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8월 19일(연중 제20주일) 요한 6,51-59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선물은 우리가 요즈음 주일에 읽고 있는 요한 복음서 6장 앞 구절들을 밝혀 주고 있다.

회당에서 가르치기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빵의 주제로 되돌아가고 그분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제시하신다. 논쟁은 계속되고, 예수님은 가르침을 확장시킨다. 그분을 따르고자 하고 생명의 선물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분과 가까운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표현하는 징표와 일치되어야 하고 그분의 생명을 전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징표는 효과적인 징표이기 때문이다.(요한 6,51-53) 그리고 이 일치와 친교 때문에, 주님은 “마지막 날에”(요한 6,54) 그들을 살릴 것이다. 성사를 통한 결속이 개인적 차원의 일치를 가져올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이 말들은 요한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썼던 말들을 연상시킨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일치가 우리들 사이의 일치에 기반이 된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그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빵과 다르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요한 6,58)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 안에 일치한다는 것은 주님이 그분의 생명을 바치고 승복하는 의미를 우리 자신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그분의 결단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다.

시간을 잘쓰기

우리는 “현명함, 혹은 지혜”의 잔치에 초대받고 있다. 지혜는 매우 적극적이다. 지혜라는 여인은 초대할 뿐만 아니라, 자기 집을 짓고 상을 차린다.(잠언 9,1-2) 지혜는 조심스럽게 계획된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잠언 9,5-6) 이 길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정의로우며 현명한 것을 분별하도록 해 주는 길이다.

우리는 지혜서들에서 발견되는 관점이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에 강력하게 제시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에페소인들이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에페 5,15), 성숙함과 예지로 살아갈 것을 경고하는 구절이다. “지금은 악한 때”이지만, 지혜는 그 악한 때와 대면하는 것이며, “시간(kairos)을 잘 써야 한다.”(에페 5,16) 이 카이로스는 믿는 이들에게 가능성으로 가득 찬 순조로운 때, 은총의 때를 의미한다. 악한 날들이 우리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순조로운 날들을 분별하고 그 때의 가치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kairos)은 일정한 때를 말한다. 그때가 요구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면 때는 지나간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시간을 잘 쓴다”는 의미는 시간을 “보상한다, 구원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의 시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잘 쓴다는 표현이 콜로사이서 4,5에도 보이지만, 우리가 어떤 해석을 내리건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즉, 예수님의 추종자들에게는 좋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에페 5,17)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의 반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며, 잠언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것은 “어리석은 여인”(잠언 9,13-18)의 잔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잔칫상은 시간을 구원한다. 그것은 이기심, 죄악, 희망없는 죽음에 매몰되는 것으로부터 인류역사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 잔칫상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자신의 상황 속에서 생명의 의미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성령으로 가득 차기”(에페 5,18)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게 되는”(에페 5,20) 또 한 가지 이유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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