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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의 고향에서는 예언자가 될 수 없다[구티에레스 신부] 7월 8일(연중 제14주일) 마르 6,1-6

우리들의 삶에서,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한다. 오늘의 복음은 하느님께서 보낸 몇 사람들의 경우를 보여 준다.

건방지고 고집 센 사람들

하느님이 보낸 사람들은 그들이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에제 2,4)을 만날 것이나, 적어도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2,5) 경고를 듣는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 이것이 히브리말 nabi의 의미인데, 우리는 “예언자”로 번역한다.

예언자는 낡은 안전과 그들의 길을 바꾸라고 초대하는 말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저항 속으로 달려간다. 하느님의 아들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그분의 고향”(6,1) 사람들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의 요구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여기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6,3) 그들은 그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없다.

푸에블라 주교회의는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하는 잠재력”에 대하여 말해 준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이들이 보여 주는 복음적 증언에 대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들 농민들은 스페인 말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불평만 늘어놓고 일도 하지 않으며 시간 낭비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예수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약함 속의 힘

복음선포의 진실함은 사람들 사이의 즉각적 반응과 받아들임에 따라 판단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파견되는 사람들의 충실성이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소에 관해 말한다: 에제키엘, 바오로 그리고 예수님의 성소에 관하여. 하느님은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사명을 맡긴다. 그러나 이 효율성은 놀라운 길을 취할 수 있다.

파견되는 사람들의 약함은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힘을 드러낸다. 주님께서는 바오로의 약함 속에서 그분의 권능을 보여 주신다.(2코린 12,9) 이것이 우리를 초대하지만 우리를 부숴 버리지 않는 사랑과 온유함의 하느님이 취하는 길이다. 파견된 사람들의 인간적 약점은 자유의 공간을 창조한다. 청중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청중들은 주님께서 오직 거대한 행동과 기적으로만 그분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파견된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쉬운 것이 아니다. “몸속의 가시들”(12,7)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파견된 유일한 사람들임을 환기시켜 준다. 우리 모두는 나쁜 때가 빨리 지나가기를 청한다. 그리고 그런 요청을 세 번 이상 한다.(12,8) 우리는 특히 우리의 증언이 -결함과 소홀함이 없는데도- 이해되지 못할 때 상처받는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맡겨진 과제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도와준다. 우리 행동의 동기들을 정화시키고 수정하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바오로가 말하듯이, 우리가 약하게 보일 때 오히려 우리는 강해진다.(12,10)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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