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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인간성[구티에레스 신부] 8월 12일(연중 제19주일) 요한 6,41-51

오늘의 복음 말씀은 요한 복음 6장에서 예수님의 인간성에 관한 구절을 뽑아낸다.

모든 사람은 제자가 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카파르나움의 담화-논쟁-는 계속된다.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예수님은 당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드러내신다. 이 말씀은 그분의 메시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는, 그래서 얻기에 매우 힘든 생명을 표현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그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감히 크게 떠들지 않는다: “수군거리고, 불평하기 시작했다.”(요한 6,41) 그들은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던 조상들이 사막에서 그런 것처럼,(탈출 15-17장) 수군거린다. 여기에서 수군거리다라는 단어는 불신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유대인들이 중대한 논쟁을 펼치는 주제는 예수님의 인간성에 대해서다. 즉 예수님은 단지 요셉의 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요한 6,42) 요한은 이 주제에 관해 주장한다: “말씀이 살이 되셨다.”(1,14) 하느님이 보내신 자는 사람으로서 역사에 속한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가졌던 불신앙은 아직도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세계에 속하는 하느님을 더 믿고 싶어한다. 혹은 우리의 내면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하느님, 그래서 다른 이들을 통하여, 특히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통하여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하느님을 더 믿고 싶어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수군거림을 거부하지만, 당신의 근원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결국 하느님의 은총인, 그분에 대한 믿음의 길과 의미를 명료하게 말씀하신다. 믿음의 충동은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믿음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인 부활이다.(6,43-44) 믿음의 길을 가면서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구절들은 이사야서 54장 13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구절을 인용한다: “너의 모든 자녀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요한은 “너의 자녀들”이란 단어를 삭제한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인 제자들은 어떤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요한 6,45) 이것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지닌 보편성을 다시 확인하는 구절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넘기는 것은 모두 그분이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6,46)

빵 (이미지 출처 = Unsplash)

사랑 안에 머물기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버지(성부)를 아들(성자)과 일치시키는 친교의 생명이다.(요한 6,47) 예수님은 그 생명의 빵이다.(6,48) 예수님은 그분의 증언, 가르침, 죽음으로써 이 생명을 비옥하게 만드신다. 죽음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으나 죽었던 사람들의 경우와 달리, 예수님의 이 생명에 종지부를 찍지 못한다.(6,49-50) 생명의 빵은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킨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살이다. 그분의 몸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이겨낼 것이다. 이처럼 유대의 대표자들에게 불신앙을 가져왔던 예수님의 인간성은, 신앙의 주제가 되고 생명의 원천이 된다.

예수님의 인간성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선물 안에서 굶주림과 갈증이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을 깨닫도록 이끌어야 한다.(1열왕 19,4-8) 예수님의 지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는 우리를 모든 사람의 형제자매가 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생명을 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에페 4,30-32) 만일 우리가 생명을 준다면, 온갖 형태와 표현의 생명을 준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은 “하느님의 모방자들”이 될 것이다. 요즈음 페루와 남미 교회에서, 우리는 생명을 주는 것이 우리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경우들을 보고 있다.(에페 5,1-2)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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