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억울한 죽음 없도록, 분향소 마련, 추모

쌍용차 해고자들이 6월 27일 세상을 떠난 동료 고 김주중 씨(47)를 추모하기 위해 5년 만에 다시 대한문 앞에 섰다.

김주중 씨는 2009년 파업에 참여하며 조립공장 옥상을 지켰고,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으며, 정부로부터 손해배상액 24억 원을 청구당했다. 해고된 뒤 그는 화물차 운전과 공사일을 하며 빚을 갚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지만 복직 시한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황에서 목숨을 끊었다. 

김주중 씨의 죽음으로 쌍용차 부당해고 사태 뒤로 목숨을 잃은 이는 지난 9년 동안 30명이 됐다.

마지막 분향소를 차린 2012년 이후 8명의 해고자가 세상을 떠났고, 30번째 희생자 김주중 씨의 영정이 다시 대한문에 돌아왔다. ⓒ정현진 기자

“국가폭력, 재판거래, 정리해고가 30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7월 3일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쌍용차 해고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를 차리며, “정리해고와 사법살인이 부른 희생자 김주중 조합원은 스스로 목숨을 던져 명예회복을 촉구했다”며,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유족의 뜻에 따라, 그리고 정부의 사과와 국가폭력 사업농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분향소를 다시 차린다”고 밝혔다.

“정리해고를 겪으며 내가 사는 세상을 봤다. 2009년 8월 5일의 옥상을 조용히 감당하며 살았다. 북받치면 뛰쳐나가 소리 질렀다.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압, 구속 뒤 10년 동안 실제 세계에 눈을 떴다. 시간이 갈수록 이 세상이 점점 빠듯해질 것을 안다. 내 아이들이 불쌍하다.” (고 김주중 씨의 마지막 메시지)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2012년 이후 8명의 동료와 가족을 떠나보냈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 달라는 고인과 그 가족, 남은 해고자들의 뜻으로 대한문에 다시 섰다며, “생존권을 지키려다 경찰특공대의 살인진압으로 쫓겨났으면서도 범법자, 폭력집단으로 낙인 찍힌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대했는가, 국가와 사회가 우리 노동자들을 안아 주었더라면 30명이 죽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많은 해고자들과 가족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어려운 것이 범죄자, 폭력집단 취급하는 차가운 시선이라고 토로한다며, “2009년의 살인진압과 손배가압류,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 사측의 합의 불이행이 김주중 동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복직 시기만 정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동료들이 고인을 생각하며 추모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해고기간 55개월. 가압류 상황 퇴직금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 경찰이 청구한 국가 손해배상 14억 7000만 원” (고 김주중 씨가 노란봉투 캠페인 기금을 신청한 이유)

쌍용차 해고에 저항한 101명을 대상으로 집단으로 청구된 24억 원은 그 뒤 1심에서 14억 7000만 원으로 결정됐지만 그 무게는 변하지 않았다.

2014년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한 시민들의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모은 돈을 해고자들에게 나눠 줬던 ‘시민모임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 씨는 “해고자들은 왜 쌍용차로만 돌아가려고 하는가”라는 시민들의 물음에, “해고한 쌍용차 사측, 해고자를 범죄자로 만든 경찰,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국가가 해고자들이 쌍용차가 아니면 돌아갈 곳이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주중 씨를 비롯한 101명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받고 가압류를 당해, 범법자가 되었다면서, “폭력진압을 당했으면서도 옥상에 있었다는 이유로 공동정범이 된 이들은 24억 원의 손배가압류 대상자가 되었고, 집과 퇴직금마저 빼앗겼다”고 말했다.

그는 “손배가압류를 당한 이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이들이 하루를 더 버티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며, “기다리라고 할 거라면,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만들고, 국가의 손배소부터 해결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는 특히 "쌍용차 사측은 손해배상 청구를 노조 간부들에게만 청구했지만, 경찰은 모든 조합원을 대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법률원장 김태욱 변호사는 쌍용차 대량 해고와 30명의 죽음은 2004년 쌍용차를 상하이자동차가 인수하던 때부터 시작됐으며, 그 뒤 길면 14년, 짧으면 9년간 해고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대량해고를 자행하고 이를 눈감아 준 기업, 사법부, 금감원뿐 아니라 이 사회의 잔인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최근 밝혀진 양승태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생산직 45퍼센트 해고를 가능하게 한 것은 대량해고에 대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판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자료에 따르면 쌍용차는 재판거래 내역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지적하고, “경찰의 폭력행사, 정부의 손배소, 사법부의 재판거래에 대한 분명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지만 이 과정에서 분향소 설치를 막으려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을 빚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기자회견과 분향소 설치를 막아섰고, 결국 충돌을 빚었다. ⓒ정현진 기자
기자회견 뒤 우여곡절 끝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김득중 지부장이 상주가 되어 고인의 영정을 지켰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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