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원, 의정부, 인천교구 정평위 등 "민주적 사법개혁 촉구 미사"

“재판관은 재판받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 알라,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한꺼번에 집적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뤄지는 일은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합니다. 그런 자리가 흔들렸다는 것, 그런 자리가 짬짜미로 이뤄졌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입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사법농단 척결과 민주적 사법 개혁을 위한 미사’가 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봉헌됐다.

이 미사는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위원회, 빈민사목위원회와 수원, 의정부,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한국남자수도회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가 공동 주관했으며, 사제 20여 명과 수도자, 신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너희는 재판할 때 가난한 이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탈출기 23,6-7)

의정부교구 정평위원장 상지종 신부는 강론에서 “사법적폐를 청산하고, 피해자 원상회복을 위한 싸움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싸움이 아니라, 우리와 대한민국을, 민주주의를 살리는 싸움이며, 쓰러져 신음하는 사법부를 다시 일으키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상 신부는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기에, 오늘 이 엄중한 현실 앞에서 당사자 못지않게 분노를 넘어 당혹스럽고 절망스럽다며, “추악한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데도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저 대통령과 덕담을 나눴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정녕 그러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법부는 참회와 속죄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고, 여전히 국민들은 사법부와 모든 법관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싶다”며, “사법부 당국자들에게 엄중하게 말한다. 이 귀중한 기회를 헛되게 하지 말고 거듭나라”고 촉구했다.

6월 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농단 철격과 민주적 사법개혁을 위한 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사법농단, 그들은 이익을 위해 사법권을 갖고 놀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덕우 변호사는 미사에서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또 한 가지 배워야 할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이며, 사법부라는 기둥이 좀먹어 집이 쓰러지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라는) 집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그에 동조한 판사들은 대부분 힘없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법원으로 달려갔던 이들의 사건을 ‘상고법원’을 얻기 위해 엉터리로 판결하고 정부의 입맛에 맞게 판결문을 써 줬다며, “설사 천국행 티켓을 주고 거래하자고 해도, 민주공화국에서 사법권을 두고 거래하는 것은 결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 검찰수사 적극 협조, 일부 법관 징계와 재판 배제, 자료 영구보존을 약속한 지 두 시간 만에, 일부 대법원 판사가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공범이라고 보기에 충분한 이들이며, 이들은 의혹이 근거 없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무엇을 알고 있기에 의혹이 없다고 단정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변호사는 “역사상 5번의 사법파동과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사법부의 개혁을 그 내부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스스로 정화하고 개혁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는 민주공화국의 주인, 주권자의 의무다. 줄탁동시와 같이 양심 있는 법관은 안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밖에서 썩은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사법부를 탄생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날 미사에는 ‘사법농단’ 피해자들도 참석했다. 사법농단 의혹이 드러난 이후 쌍용차, KTX 승무노조, 콜트콜텍, 전교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강정마을 주민 등 20건에 달하는 재판 당사자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노조, 민청학련유족회 등 과거사 사건 관계자들도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미사에는 법원 앞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한 (왼쪽부터) 민변 이덕우 변호사와 재판 피해자 KTX승무노조, 콜트콜텍 노조원 등이 참석해 발언했다. ⓒ정현진 기자

“싸우면 정의가 이긴다는 사실을 끝내 여러분께 말할 수 있도록”

이 가운데 발언에 나선 KTX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카타리나)은 “사법농단이 알려졌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2015년 2월 대법원에서 복직 무효 판결 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얼굴이었다”며, “그 친구의 목숨과 그토록 힘들었던 시간이 뒷거래 판결 때문이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제는 부당함을 외칠 수 없는 그 친구의 목숨과 13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상받을까 원망과 분노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사회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이들은 사회가 그 잘못을 바로잡아 주기 전에는 치유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사법부, 철도공사 사장, 정부는 이 일에 대한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옳았기 때문에 결국 힘들어서 흩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13년을 싸웠다. 그리고 오늘 사법농단 의혹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안전을 담당하는 승무원으로 일하려는 신념을 잃지 않도록, 싸웠던 세월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싸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앞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을 거래한 사태에 “헌법 모독에 대한 사과와 사법적폐 청산, 피해자 구제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6월 5일부터 14일간 철야농성을 벌였다.

민변은 18일로 철야농성을 정리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농성을 접는 것은 싸움을 접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리된 진영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