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삶 - 송승연]

‘정신건강’ 혹은 ‘정신질환’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치료’의 이미지가 따라온다. 치료와 관련된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치료 후의 일상으로 복귀한 정신장애인의 ‘평범한 삶’에 대해선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이 거주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취미와 여가를 즐기고, 친구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원하는 직장을 얻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이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기본 ‘권리’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시민권에 대해서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자주 놓치게 된다. 예를 들어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의 목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법이 제정된 배경과 목적은 ‘치안유지’였다. 1991년 10월 세상에 분노를 품은 20대 젊은이가 서울 여의도에서 차를 몰고 질주하다 2명을 죽게 한 ‘여의도광장 질주사건’. 그리고 대구에서 30살 영농후계자가 술을 안 주고 무시한다는 이유로 나이트클럽에 방화를 저지른 ‘거성관나이트 방화사건’. 이 두 사건 모두 정신질환과 무관한 사건이었음에도, 김기춘 당시 법무장관(지금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 비서실장)이 늘어나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격리 입원을 핵심으로 하는 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물론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를 사회적 위험요소로 보고 ‘격리시키는 정책’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책’ 또한 포함시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강제입원에 따른 정신의료기관 병상의 급격한 증가, 장기 입원, 입퇴원 및 치료 과정과 관련된 정신장애인 인권의 문제 발생 등이 ‘격리’ 정책으로 수렴되었다. 어쩌면 사회적 통제와 치안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 제정된 배경에서부터 정신장애인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신장애인을 한 명의 ‘사람’보다는 일종의 ‘객체’로 취급하였던 사건이 있다. 바로 우생학에 근거를 둔 정신장애인 불임시술법이다. 20세기 초반 열등한 사람들의 출산을 억제함으로써 더 나은 부류의 번식을 장려하려는 ‘우생학’이 존재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우생학 프로그램을 합법화한 곳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으로, 정신장애인의 결혼금지뿐만 아니라 자녀의 출산을 예방하고자 강제불임까지 허용했다. 버지니아 출신의 1906년생인 젊은 백인 여성 캐리 벅은 17살에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딸인 비비안을 출산했다. 의사들은 캐리에게 ‘간질발작’과 ‘정신박약’ 진단을 내렸고, 캐리는 정신이상자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1924년 캐리 벅(왼쪽)과 그의 어머니 엠마 벅. (사진 출처 = Flickr)

이후 캐리가 수용소를 나가려 하자 버지니아주는 1924년 불임시술법을 근거로 강제불임시술을 시행하려 했고, 결국 1927년 벅 대 벨(Buck v. Bell) 사건이 미국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8대1 다수로 미국 시민인 캐리에 대한 버지니아의 강제불임시술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당시 재판관인 올리버 웬들 홈스 2세는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퇴폐한 자손이 범죄를 저질러 사형되거나, 아니면 그들의 저능으로 인해 굶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차라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의 출산을 막는 것이 온 세상을 위해 더 낫다. 강제 예방접종을 지탱하는 원리는 나팔관 절제에도 충분히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저능아는 삼대로 충분하다.(당시 그녀의 어머니 엠마 또한 정신이상자 수용소에 수감 중이었다)”

“저능아는 삼대로 충분하다.” 참 무서우면서도 서글퍼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우생학은 골동품이 되어 박물관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의 성적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는 여전히 정신장애인이 결혼하여 자녀를 가지는 것에 대해 암묵적인 압박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유전학적 가설에 기반한 논리는 정신장애인을 사회적 거세, 심리적 거세에 머무르게 한다. 유전학적 가설은 근거가 있을까? 이에 대해 토리(Torrey)와 욜컨(Yolken)의 연구(2009)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정신장애인 대량학살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조현병이 있는 정신질환자(나치 용어로 ‘쓸모없는 식충’)를 몇 군데 정신병원으로 보냈고 그들을 ‘살균’, 즉 몰살시켰다. 확인된 수치로 22만 2000-26만 9500명이 죽었는데, 이 통계는 당시 1939-45년 독일에 사는 조현병 환자의 73-100퍼센트 정도로 확인되었다. 유전학적 가설이 만약에 옳다면, 조현병 환자가 거의 사라졌으므로 독일의 조현병 발생률은 제로에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의 조현병 발병률은 다시 증가하였다. 이 연구자들은 나치에 의한 대량학살은 잘못된 유전학 이론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거대한 범죄행위였으며, 대량학살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조현병 발병률에 명백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제 우리는 조금 관점을 변화할 필요가 있다. 1978년 ‘자유가 치료다’라고 주장한 이탈리아의 바자리아는 혁신적이었다. 이제는 이를 넘어서서 ‘복지가 치료다’ 혹은 ‘권리보장이 치료’라는 관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여성 정신장애인 당사자활동가 주디 챔벌린은 회복을 ‘정신질환 증상관리’로서만 규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거를 마련하고, 교육을 받고, 그리고 일자리를 찾는 능력과 같은 더 거시적인 사회적 지원과 구조에 관심이 있었으며, 이를 ‘정신장애인 인권’의 핵심 구성요소로 보았다. 챔벌린은 실제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주거 및 사회서비스 보장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장애인단체들과 협력하여 연대체를 구성했다.

국내의 경우 미약하지만 긍정적 변화의 움직임이 조성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선언적 규정이라는 명백한 한계는 있지만 ‘복지서비스’ 관련 조항이 새롭게 신설되었고, 헌법재판소가 강제입원 시 정신질환자의 절차적 권리가 부재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신장애인 권리옹호를 위한 서비스(절차보조인 등)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진전되었다. 작지만 사회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장애인의 권리보장은 ‘목소리’의 복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엄연히 한 사회의 구성원임에도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고, 투명인간 취급은 당연시되고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권리’에 중점을 두고,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은 지금까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해 주는 확성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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