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과 삶 - 송승연]

A씨는 50대 초반이며, 독립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17년 전에 정신과적 어려움으로 보호의무자에 의해 첫 입원을 하였지만 그 이후 한 번도 입원하지 않고 일상을 지내왔다. 그러던 중 작년 말 가족과 집주인에 의해 위기상황(집의 청결상태, 건강상태 등)이 포착되었다. 이들은 동주민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A씨의 집을 방문하여 면담한 결과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결국 가족들은 사설 응급환자이송단에 의뢰하였고, A씨는 집에서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B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이 되었다.

이는 최근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에서 접하게 된 강제입원 사례다. 인권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안타까운 사례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를 단순하게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 또한 정신건강전문가로서 이 상황에 접근하게 되었다면 아마도 위와 같이 사설이송단의 강제입원으로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존하는 정신장애인 위기개입 프로토콜에서는 강제입원밖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 개인은 매몰될 수밖에 없다.

정신장애인 인권과 지역사회통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정신장애인 위기개입과 관련된 상황이다.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일상생활영위 과정에서 위기가 생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신체장애인이 활발히 활동하다가 욕창이 심해질 수 있다. 그럴 땐 병가를 내고 입원치료를 받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처를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은 컨디션이 나빠져 정신건강이 취약해진 위기상황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찰이 출동하여 응급입원 등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위의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영역이 아닌 민간영역에 있는 사설 응급환자이송단을 통해 위기상황에 대처하기도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찰 혹은 응급이송단에 의한 위기개입 후 대다수의 경로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위기는 사전적으로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의미한다. 즉 단기간의 위기상황만 극복하면 일상생활 복귀는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국내는 위기 발생시 정신병원으로 강제입원되는 것이 대다수이며, 게다가 폐쇄병동에 들어가게 되면, 가족과의 면회, 외부와의 소통 등은 단절되고,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수가 있다.

핀란드의 위기개입대응책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que, 열린 대화)는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준다. 특히 정신장애인 위기상황 대응책은 획기적이기까지 하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하루 안에 회의가 이루어진다. 당사자와 가족 구성원, 관련된 사회적 관계망(직장 동료, 친구, 이웃, 심지어 경찰까지) 모두가 첫 회의에 참여하도록 초대되고, 치료 과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참여가 가능하다. 이 가족과 접촉한 모든 관련 전문가들(정신의학, 임상심리, 간호, 사회복지 등)은 이 회의에 참석하도록 초대되고, 위기상황에 대한 그들의 모든 생각과 의견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논의한다. 그리고 정신과 약물에 대해서 최소한의 사용을 지향한다. 모든 토론과 치료 결정이 환자와 가족 구성원이 참석하는 동안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대안적 위기개입 프로그램 오픈다이얼로그 모습. (사진 제공 = 송승연)

어떻게 이와 같은 실천이 가능할까? 그리고 실제로 오픈다이얼로그는 정신장애인 위기상황에 효과가 있을까? 실제 오픈다이얼로그 전문가인 핀란드 ARCADA대학 유카 피포(Jukka Piippo)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피포 교수는 먼저 전통적 정신의학과 오픈다이얼로그 접근법이 바라보는 ‘정신과적 어려움’의 차이점을 설명하였다. 기존의 전통적 접근은 정신과적 어려움을 병리적 증상으로 라벨링하면서 의료적 관점으로 바라보았지만, 오픈다이얼로그는 정신과적 어려움을 질병의 증후가 아니라 ‘힘든 경험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관점이 전환되면 ‘위기상황’을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오픈다이얼로그는 ‘대화’의 증진을 강조한다. 이는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이 말한 대화주의(dialogism)에 철학적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바흐친은 “삶은 본질적으로 대화다.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다는 걸 의미한다. 묻고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고 동의하는 것이 삶의 본성이다. 하나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종결시키지 않으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최소한 두 개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오픈다이얼로그는 독백이 아닌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관계적이며 역동적인 새로운 이해를 구축하고, 당사자, 가족, 사회적 관계자, 전문가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받아들여지는 민주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바흐친에 따르면 삶의 방식은 ‘대화’와 ‘독백’으로 나누어지는데 독백은 대화처럼 보여도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들리는 관계를 뜻한다. 권력으로 인해 모든 관계에서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억압과 고립으로 가는 ‘독백’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서 배제되기가 쉽다. 이러한 측면에서 피포 교수는 위계적 정보구조와 권력구조(e.g., 전문가 → 가족 → 환자)를 수평적이고 공평한 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이 오픈다이얼로그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기존에 전문가들끼리 치료미팅을 가졌던 것과 달리 당사자와 가족, 사회적 관계자가 참여하여 주체적 대화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오픈다이얼로그가 중점을 두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오픈다이얼로그의 효과성을 평가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 추적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놀랍게도 서비스를 받은 정신장애인의 항정신병 약물사용, 재입원율, 재발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고용률, 학업 복귀는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분명 오픈다이얼로그의 효과성을 증명해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론 오픈다이얼로그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기존의 관점에서는 너무 급진적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핀란드도 과거엔 자의입원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시기도 있었으며, 1950년대 선진국들이 탈원화를 시작했지만 핀란드는 1970년대까지 대형정신병원 중심의 시설화 구조가 지속되었었다.(1978년 당시 유럽에서 핀란드는 아일랜드 다음으로 정신과 병상이 많았다) 그리고 핀란드도 즉각적 개입과 더불어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지속적인 문화적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핀란드의 탄탄하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실업, 질병, 노후에 대비한 사회보험제도, 자녀수당, 육아수당 등 사회수당제도, 무상 공교육 등 공공사회서비스제도 등)도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안정감을 촉진하여 위기개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위기개입의 대안이 없는 이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를 과감히 도입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 영국에서도 오픈다이얼로그가 시범 운영되고 있으며 정신과 의사 라자크(Razzaque)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반적 치료에서는 위기로 이어진 것을 탐구하고, 이후 대처는 대개 약물을 처방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픈다이얼로그에서 서비스 이용자는 자신들을 현재 위기상황으로 이끈 요인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습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치료적인 것입니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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