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삶 - 송승연]

미국의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27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이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하며, 2017년 10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트럼프의 정신건강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떠나서 이는 소위 '골드워터 룰'(goldwater rule)이라 불리는 미국정신의학회(APA) 윤리강령에 어긋나는 행위다. 골드워터 룰은 “정신과 의사가 직접 대면 검사하지 않았고 합당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특정 공인의 정신 건강에 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의미한다.

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신질환의 낙인(stigma)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보다 윤리적으로 더 선명한 선언은 없다. 그러나 때로 전문가들은 정신과 진단명을 꼬리표로 사용하여 불명예를 안겨 주는 무기로 쓰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17년 12월 N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경조증'(Hypomania)이 한동안 머무른 적이 있다. 배우 유아인이 SNS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는 활동에 대해 어떤 정신과 의사가 경조증이 의심된다고 지적한 것이 이슈가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아인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여부를 떠나서 본질적인 것을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권위가 주어진 한 사람이 다른 타인에게 진단명을 부여한 일련의 현상이 왜 이루어졌고 그 안에 내재된 속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다고 사회적으로 권한이 주어진 정신과 의사가 유아인에게 ‘경조증’이라는 진단명을 부여한 순간, ‘유아인’이라는 개인의 고유한 존재와 그의 언어에 담긴 정치적, 사회적 의미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안에 매몰되어 버린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에 따르면 트럼프는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들어 있는 다양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이견을 개인적 공격으로 받아들여 분노로 반응하고 대응하는 행동은 ‘소시오 패스’로, 버락 오바마가 트럼프 타워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주장하는 행동은 ‘편집증적 망상’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도 안 주고 혼자만 떠드는 행위는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진단된다. 트럼프의 교묘한 정치적 수사 및 행위가 정신과 진단명으로 환치되면서, 그의 말에 담겨 있는 정치적 의미는 어느 순간 진단명 뒤로 사라져 버린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와 정책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정치적 신념(좌파, 우파 등)을 주장하거나 반대자를 비판하기 위해 정신질환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없다고 본다.

트럼프는 이처럼 정신질환 낙인화에 당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또한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곤 한다. 최근 플로리다 고교에서 또 다시 가슴 아픈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났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트럼프는 지체 없이 '정신질환'(정신건강)이 끔찍한 비극의 원인이라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주장했다. “플로리다 총기난사의 범인(니콜라스 크루즈)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수많은 징후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나쁘고, 기괴한 행동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당했습니다.”(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중)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이미지 출처 = Pixabay)

미국총기협회(NRA)에 불똥이 튈까 두려워 서둘러 진화하는 모습이 대통령이라기보단, 총기협회 대변인인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러한 발언은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우선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심신상실'(mentally incapable)인 사람들에게 총기 판매를 차단했던 오바마 규정을 폐지했다. 이로써 총기난사 사건이 터지면,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책임과 원인을 정신적 문제로 돌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트럼프는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기 위해 명백하게 고안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는 지속적인 발언을 통해 특정 프레임을 형성했다. 예를 들어, 2017년 11월 텍사스 총격으로 26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정신건강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으며, 2017년 뉴욕에서 트럭을 자전거 도로로 돌진하여 8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트럼프는 이 운전자를 '매우 아프고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임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신건강에 관심을 두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정신건강사업에 100억 달러 예산을 책정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메디케이드(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보험제도) 보조금을 1조 달러 이상 삭감할 것을 제안하였고, 정신장애인 주거복지 예산도 삭감할 것을 촉구했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트 정부가 정신건강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신건강 예산은 줄은 것이다. 트럼프는 바보가 아니라, 너무나 영리한 정치인이다. 누가 봐도 황당한 물타기(총기규제에서 정신건강 이슈로)는 치밀한 정치적 계산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죽인다."(guns don’t kill people, people do.)고 미국총기협회(NRA)는 주장한다. 결국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비극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도 될까? 그렇지 않다. 관련 연구결과를 보면 정신건강과 총기 범죄 사이의 관련성은 적고, 심지어 대부분 총기난사 사건 범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총기난사 사건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인종, 민족, 사회적 계급, 정치와 같은 광범위한 문화적 통념들을 더 많이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기난사 비극을 멈추기 위해선 개인적 요소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전면적인 총기규제만이 비극을 멈출 수 있다.

정신질환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사례들을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정신과 진단이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스티그마라는 것을 반증한다. 앞서 언급한 ‘골드워터 룰’ 또한 정치적 사건이다. 1964년 <팩트 매거진>은 정신과 의사들을 상대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가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해 조사했고, 49.2퍼센트는 대통령직에 부적합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결국 골드워터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정신의학이 정치적 정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의 행위는 정신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도덕의 문제다. 플로리다 사건처럼 정신질환을 비극의 여파 속 정치적 논쟁으로 이용하는 것은 피해자, 생존자 그리고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트럼프는 어쩌면 자충수를 두었을 수 있다. 정치적인 논쟁으로 정신건강 이슈가 이용되고 있는 현상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자충수. 트럼프가 정신질환 무기를 과시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뒤에 숨겨져 있는 위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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